“가자, 양심수 없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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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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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가족 등 선별 사면 반대하며 ‘고난의 행진’ 나서
한가족이 있다. 아내는 병원에 있고, 남편은 감옥에 있다. 아내 김소중씨(37)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자궁암으로 투병중이다. 남편 하영옥씨(41)는 1999년 8월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3년7개월째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하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8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3월21일. 그날 오전, 김씨는 대전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그녀는 “다른 양심수 가족들과 함께 전국 교도소를 순례하는 도보 행진에 참가하겠다”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하씨는 아내에게 건강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씨는 건강에 이상을 느껴 1주일 전에 검진을 받은 터였다. 자궁경부암 판정. 병원에서는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3월22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열린 ‘고난의 행진’ 출정식. 양심수 가족들과 자원자들이 ‘양심수 석방과 한총련 정치 수배 해제를 위한 고난의 행진’에 나섰다. 전국에 있는 18개 교도소를 도보로 순례하며 양심수들을 면회하는 ‘3천리’ 행진이다. 하루 평균 33㎞씩 강행군을 한다. 김소중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출정식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 이 자리에서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 하정연양(14)은 울음을 터뜨렸다.

순례단은 ‘선별 사면 반대’ ‘하영옥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유독 하영옥씨를 거명하는 것은 기결수 가운데 하씨의 잔여 형량이 4년7개월로 가장 많이 남아 ‘선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기 때문이다. 최진수 순례단장(41)은 “잔여 형량이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 하영옥씨 등을 사면에서 제외한다면, 이번 사면은 형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3월25일, 국립암센터에 입원한 김씨는 담당의사로부터 ‘1기말 이상 암이 진행되었고, 전이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4월 초에 수술을 받을 계획이다. 김씨는 “암에 걸린 것보다 양심수인 남편을 구출하는 행진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더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라고 말했다. 민가협에 따르면, 3월5일 현재 한국의 양심수는 60명이다. 참여정부 들어 양심수 석방 문제가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27일,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양심수 박경순씨(47)가 ‘새 정부 양심수 사면’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면서부터이다. 간경화 중증 환자인 박씨에게 단식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양심수 48명도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박씨는 1998년 7월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5년째 복역중이다.

정부는 시국 사범에 대해 4월 중 특별 사면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 깊게 팬 사회적 갈등의 여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사법 처분의 존엄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통합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가치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심수 석방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 정부의 사면 방법과 대상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자는 3월28일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법무부나 검찰이 판단하기로는 대한민국에는 양심수가 없다”라고 발언해 새삼 ‘양심수 존재’에 대한 해묵은 사회적 논란까지 재연될 듯하다.

국제사면위원회 한국 지부는 인사 청문회 다음날인 3월29일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지난해 12월에 낸 보고서 <대한민국:양심수, 강요당한 침묵>에서 박경순·하영옥 등 수십 명이 한국의 대표적 양심수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지부 김철효 간사에 따르면, 국제사면위원회는 ‘폭력을 사용하거나 주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 인종, 성별, 피부색, 언어,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구속·수감된 모든 경우’를 양심수로 규정한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투옥된 사람과 종교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유로 구속·수감된 사람은 당연히 양심수에 포함된다.

민가협 채은아 총무는 “시민·사회 단체가 반전운동에 집중한 틈을 타 공안 검찰이 양심수 문제를 좌지우지할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결수이든 미결수이든, 감옥에 있는 양심수를 조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한총련 수배자들에게 캠퍼스는 창살 없는 감옥이다. 5기 한총련 지역 간부로 활동했던 송용한씨도 7년째 ‘캠퍼스 투옥’ 생활을 하고 있다. 7년 동안 각 대학 ‘생활방’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해온 송씨는 자기 집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 사이 본가는 세 번 이사했는데 부천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오랜 수배 생활로 한총련 수배자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다.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박제민·주진완 씨는 각각 시력을 점차적으로 잃는 선천성 고도 근시, 청력을 상실하는 이명증을 앓고 있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총련의 고난은 1997년 법원이 한총련을 ‘이적 단체’라고 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각 대학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학생회장은 당선되는 순간 이적 단체에 가입한 용의자가 되었다. 검찰은 탈퇴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 가입·구성죄로 전원 기소하고 수배했다. 2001년 한총련이 ‘연방제 통일 방안’을 강령에서 삭제하며 변신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적단체 규정은 변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한총련 대의원 가운데 수배된 숫자는 1천5백명. 이 중 7백87명이 구속되었다. 한총련 정치 수배자 모임에 따르면, 3월6일 현재 수배자는 1백82명이다.

‘한총련 관련 정치 수배자 모임’의 유영업 대표는 “양심수 문제와 한총련 문제는 함께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총련 문제를 풀지 않으면 양심수를 전원 석방해도 소용없다. 한총련 대의원은 ‘예비 양심수’이고, 해마다 4백여명씩 새로운 예비 양심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최근 한총련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26일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수배자 문제와 관련해 “이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들이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수배자 가족을 만나 “단과대학 학생회장 이상이면 자동으로 한총련 대의원이 되는데 그것만으로 수배 대상이 된다니 이는 국제적인 망신이다. 다만 절차가 필요하니 같이 고민해 보자”라고 말한 바 있다.

수배 학생들은 이러한 발표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유영업 대표는 “법무부 수사 지침을 통해 한총련 수배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탈퇴서나 반성문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요구하는 행정 절차에 협조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준비위측이 밝힌 세계의 추세는 한국의 현실을 되짚어보게 했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은 물론 갓 독립한 동 티모르에까지 청소년 대표 기구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 자치단체의 자문 기구에서 활동하면서 성인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청소년도 많다. 미국 토렌스 시는 ‘토렌스 2010 프로젝트’에서 기획진 70명 가운데 20명을 청소년으로 구성하고 있다. 미국 유타 주는 청소년에게 직접 또래의 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청소년 법정을 운영하는데, 그 결정은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청소년 의회의 원조 격인 유럽은 일찍이 197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 복지와 정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의회나 자문 기구, 청소년 NGO 등 다양한 장치를 개발해 왔다.

토론에 참여한 고등학생 임인호군(안양고 3년)은 시행 세칙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정치적 허무주의를 일찍 경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군은 학생 아닌 청소년과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 소외될 가능성을 우려했고, 진학에 도움이 되는 가산점 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단기간에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려운 만큼 지역 대표 제도는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실행 세칙보다는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일 것이다. 청소년 의회 준비위원회 홈페이지는 4월 중순 개통될 예정이다. 문의 02-2294-9372.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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