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업체도 ‘갑론을박’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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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위즈 ‘완전 실명제’, 야후 ‘반 실명제’, 다음 ‘안티 실명제’
어떤 재소자는 쥐 목에다 끈을 묶어 운동 시간에 산책하듯이 끌고 다니기도 한다. 몸에 문신을 새겨 가며 세월을 보내는 이도 있다. 작고한 시인 김남주는 교도소에서 ‘땅탁구’의 챔피언 격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꽃을 가꾸며 수형 생활을 견뎌냈다. 신영복 선생은 옥담 안에서 서예를 연찬하여 독특한 서체를 완성했다.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황대권씨는 야생초들을 ‘옥중 동지’로 삼았다.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하게 가꾸어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야생초 편지> 중에서)고 했다. 황씨는 교도소 안에서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 종 가까이 풀들을 가꾸며 징역 생활을 견뎌냈다. 그는 지금 세계적인 야생초 전문가가 되었다.

국내 유명 포털 업체들의 실명제 정책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명제에 대한 인식과 방식 둘 다 제각각이다. 드림위즈는 1999년 사이트를 열 때부터 인터넷 실명제를 고수했다. 드림위즈는 한국신용평가를 통해 실명을 확인한다. 뉴스 콘텐츠의 의견 난에 댓글을 다는 경우와 채팅방에서 대화명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게시판에서 실명제를 운영하고 있다. 드림위즈 김정수 차장은 “자기 정체성을 밝히고, 상대를 배려하는 온라인 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이다”라고 말했다. 모니터링 방법도 철저한 편이다. 3명 이상 불량 게시물이라고 표시한 게시물은 내용을 즉시 모니터링한다. 김차장은 “아무래도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 적어지겠지만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회원들이 반긴다”라고 말했다. 야후코리아는 ‘반(半) 실명제’를 하고 있다. 회원에 가입할 때는 실명 확인을 하지 않지만 게시판을 이용하려면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음란물·폭언·욕설 등이 게시판에 올라와 지난해 10월부터 부분적으로 실명제를 도입했는데 이후 게시판 역기능이 약 20% 감소했다. 실명제에 관한 한 다음의 입장은 분명하다. 다음은 ‘안티 실명제’에 가장 가까운 포털 업체이다. 이재웅 사장은 여러 차례 실명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다음은 회원에 가입할 때, 게시판을 이용할 때 실명 확인을 하지 않는다. 금융 거래 서비스, 19세 이상 서비스에만 실명 확인을 한다.

다음은 익명 게시판을 운영하는 만큼 게시판 문화를 바로잡는 데도 신경을 쓴다. 경고를 세번 받으면 해당 섹션에 글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삼진아웃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한 예이다. 심한 경우는 아이디를 정지시킨다. 하지만 이런 제재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주목 전략’. 권경아 대리는 “잘 쓴 글을 상위에 배치해 다른 글보다 주목받게 한다. 제재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네티즌의 자정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1997년 국세청을 이용해 한나라당 대선 자금을 모금했다는 이른바 ‘세풍’사건의 주범 격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이씨의 소지품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철학 등이 담긴 책과 옥중 편지 모음집인<야생초 편지>가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현정부의 성격을 파악하고 수감 생활에도 대비한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교도소화(prisonization)라는 이론이 있다. 마치 어린이가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며 사회 생활에 적응해 가듯이 범죄자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수형 생활을 습득하고 적응하게 된다. 어린이가 사회의 행위 유형을 학습하는 것을 사회화라고 한다면, 재소자가 교정시설에서의 행위 유형을 학습하는 과정을 ‘교도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범죄사회학자 시크스는 수용생활의 고통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자유 박탈·자율성 박탈·이성관계 박탈·안정성 박탈·재화와 용역 박탈이다. 재소자는 수용으로 인한 고통과 박탈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수형자 문화를 계발하고 그 문화에 적응하는 등 교도소화하게 된다는 이론이 있다.

이러한 박탈의 또 다른 측면에 지위 강등(mortification)이 있다. 범죄자가 교정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그는 과거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신분 대신 숫자로 표현되는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된다. 과거의 자기 관념은 동일한 머리 모양·복장·이름 대신 주어진 숫자와 개인 물품 회수 등을 통해서 철저히 사라진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거 상실은 자기 증오와 자기 소외를 낳고 이는 곧 자기 훼손이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형자들은 교도소화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론들에 의하면 교도소화는 박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집합적 반응인 셈이다.

교도소를 ‘인생 대학’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감옥 생활을 하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고 인생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교도소는 ‘범죄 대학’이다. 교도소에서 잘못된 교도소화 과정을 통해 범죄 수법을 학습하고, 범죄 조직을 결성하기도 한다. <야생초 편지>는 이석희씨에게 수감 생활의 예습을 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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