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마지막 보상에 몰린 한맺힌 사연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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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추가 심사에 신청자 ‘밀물’… “공무원 조사 잘못됐다” 재심 요구도 많아
광주민주화운동 보상에 관한 법률’(광주보상법)에 따라 현재 제4차 추가 보상 심사를 하고 있는 광주시청 5·18 지원과는 보상 신청이 쇄도해 몸살을 앓는다. 보상 신청 기간마다 신청했다가 5·18 관련자로 인정되지 못한 신청자가 추가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을 적시한 신청 서류와 인우보증인을 내밀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재신청하는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신청인들은 5·18 보상 심사의 구조적인 공정성 문제를 들먹이기도 하고, 행정기관이 무성의하다면서 5·18 심사에 대한 행정소송까지 벌이는 일도 있다. 5·18 관련자가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보상 신청자들은 그만큼 현재 4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5·18 심사에 문제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에는 검찰이 허위 보상자 43명을 밝혀내기도 했다. 때문에 1990년·1993년·1998년과 올해 4차 추가 보상에 이르기까지 5·18 보상 심사는 항상 말 많고 탈 많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5·18 보상 신청자들이 주장하는 현행 보상 심사 과정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보상 신청자들은 광주시가 기초 사실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공무원들의 사실 조사 관련 서류가 심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데도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들이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주장이다.
1993년 5·18 보상을 신청한 뒤 올해 다시 신청한 이문선씨(73·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부부가 그런 사례이다. 1980년 둘째아들 이옥섭씨(당시 20세)가 5·18과 관련해 행방 불명되었다며 보상을 신청한 이씨는 1993년 심사에서 ‘5·18 관련 행방불명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당했다.

멀쩡한 아들이 5·18 때 광주로 간 뒤 지금까지 행방 불명되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씨는, 광주시의 보상 신청 기각에 행정 소송으로 대응했지만 번번이 패소했다. 법원이 광주시의 심사가 부당하다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문선씨가 처음부터 문제 삼은 것은 광주시가 5·18 관련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여러 차례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은 둘째아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인데도 공무원들이 ‘둘째아들 이옥섭씨가 정신 질환을 앓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마을 주민의 말을 조사 서류에 삽입하는가 하면, 마을 주민들이 진술하지도 않은 사실들을 기록하는 등 공무원의 조사가 실수투성이였다는 것이다. 이문선씨는 “사망자들은 눈물을 흘릴 무덤이라도 있지만 여태까지 자식의 생사를 모르고 지내는 행방불명자 가족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공무원들이 실수를 인정하고 재심사해야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일부 조사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심사위원회 상급 기관인 법원으로부터 ‘5·18 과 관련되어 행방불명되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행정 소송에서 광주시가 승소한 만큼 재심사하더라도 5·18 관련자로 인정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5·18 관련자로 보상을 받았지만 마을 주민과의 갈등으로 투서에 휘말리는 바람에 5·18 허위 보상자로 낙인 찍힌 이계순씨(68·서울 서초구 방배3동)의 사례는 더 기막히다. 전남 강진군 동면 장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이계순씨는 아들 김종석군(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 5·18 때 광주에 간 뒤 머리를 다쳐 돌아왔지만 천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끝내 숨지고 만 ‘5·18 상이후 사망자’ 가족이다. 당시 관련 서류와 병원 기록 등을 토대로 1억3천만원을 보상받았지만, 아들을 잃은 이계순씨의 수난은 정작 보상을 받은 뒤부터 시작되었다. 1993년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 이장 김 아무개씨(53)가 “중학교 때 시름시름 앓다가 병으로 사망했는데 5·18 때 사망한 것처럼 꾸며 보상을 받았다”라며 정부에 허위 보상자라고 신고했던 것이다. 투서에 휘말린 이계순씨 가족은 수사 과정에서 5·18과는 상관없는 다른 토지 사건과 관련된 혐의가 드러나 이씨가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살았고, 5·18 보상금 역시 국가에 반납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계순씨의 딸 김안숙씨는 “5·18 당시 동생(사망한 종석군)이 강진농고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는 학적부 기록을 찾아냈고, 중 2·3학년 때도 축구부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아무 탈없이 건강했다고 담임 선생님들이 진술했다”라며 5·18 허위 보상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시 마을 이장 김 아무개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는데, 김씨는 “망자가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5·18과 관련된 사망은 절대 아니다”라며 완강히 맞서고 있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태이다.

이계순씨 가족은 다시 5·18 보상 심사를 해달라며 광주시에 신청했지만 광주시는 ‘이미 보상이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 다시 보상 심사를 해줄 수는 없다. 법원이 허위 보상이라고 판결한 만큼 광주시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잘못된 기초 사실 조사가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신청인 이문선씨의 사례는 물론 5·18 보상금을 환수당할 처지에 놓인 이계순씨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5·18 4차 추가 보상 신청자들에게는 이처럼 곡절도 많고 사연도 많다.
사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5·18 보상은 광주지역 변호사·학계·언론계·의료계 인사 10명으로 구성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여부 심사분과위원회’(위원장 김동원)가 매주 2차례씩 회의를 열고 4차 보상 신청자 8백68명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심사는 심사위원 10명의 투표에 따라 결정되는데, 과반수인 6명 이상이 동의하면 5·18 보상자로 인정된다. 형사 재판의 배심원 제도와 비슷한 성격이어서 심사 판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각 사유를 기술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게다가 심사위원의 심사도 행정기관과 공무원들이 사실 조사·현장 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하는 서류 심사인 만큼 애초부터 완벽히 심사하기가 어렵다.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수사권을 갖고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말 그대로 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허술한 틈을 노리고 1993년과 1998년에 5·18 보상 심사위원인 5·18 관련 단체장이 인우보증인의 진술을 조작해 허위로 보상받은 사례도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잘못을 줄일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조사와 심사가 가능하느냐 여부이다. 이와 관련해 줄곧 5·18 보상 심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김정길 5·18 행불자회 총무는 심사 기록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행정 정보 공개라는 맥락에서, 기각된 경우라도 사유를 공개해야 신청자들이 납득하고, 공무원들의 사실 조사도 검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참고인과 인우보증인 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며, 이미 기각된 사건이 공개될 경우 재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태웅 5·18 지원협력관은 “심사 결과를 공개하면 행정기관에 협조한 참고인과 인우보증이 들이 신청인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많다. 그러나 신청인 개인이 원할 경우에 한해 열람만 할 수 있도록 보완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5·18 4차 추가 보상 심사는 올해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러나 심사에 불복하는 재심 신청 사례도 있을 것으로 보여 내년 상반기까지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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