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항 삼천포 ''고무줄'' 환경법에 몸살
  • 부산/박병출 (pbc@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력발전소, 탈황 시설없이 오염 물질 배출 심각"… 환경부 개정안 '특례 조항'에 원인
진주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벗어나 남으로 50여 리, 곧게 뻗은 외길을 따라가면 남도의 미항(美港) 삼천포에 닿는다. 인접한 사천군과 통합하면서 사천시로 이름이 바뀐 지 여러 해지만, 아직도 삼천포항이나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사(修辭)가 더 익숙한 곳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낀 청정한 바다와 그 물빛으로 푸르름을 더한 하늘, 공해라고는 없을 법한 이 곳 삼천포항이 공해 시비로 들끓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삼천포 화력 발전소 때문이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는 1984년 1·2호기 건설을 시작으로 1998년 5·6호기를 증설해 설비 용량이 국내 총발전량의 8% 선인 3,024MW에 달한다. 문제는 이처럼 대규모 용량인 발전소가 유연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연탄은 연소 과정에서 아황산가스(SO₂)와 이산화질소(NO₂) 등 심각한 공해 물질을 배출한다. 더구나 삼천포 화력 발전소는 두 공해 물질을 걸러낼 탈황·탈질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가동해 시민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 공해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단체는 사천시 환경운동연합(의장 김점세). 1996년 ‘사천 환경을 지키는 시민연합’으로 발족해 지난 2월 환경운동연합으로 재창립한 이 단체는, 처음부터 삼천포 화력 발전소의 공해 배출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했다. 1997년 벌인 첫 사업도 발전소의 대기 오염이 미치는 사천 인근 지역 산림 생태계 조사였다. 그 결과 사천시의 주산(主山)인 와룡산의 이끼류가 죽어가고 소나무가 퇴색하는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지형이 비슷한 다른 지역 산들에 비해 이끼류뿐만 아니라 부채손 군락까지 완전히 고사하는 등 아황산가스로 인한 피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 의사들도 인구 12만인 소도시치고는 기관지 계통 질병이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민간단체의 능력으로는 발전소의 공해와 생태 피해 간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이상언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말했다.

사천환경운동연합은 시민토론회·규탄대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삼천포 화력 발전소에 탈황·탈질 설비를 설치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발전소측은 공해 피해 여부에 대한 시민단체와의 공동조사 제의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전소측은 한마디로 ‘발전소 배출 가스가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는 입장이다.

허점 많은 배출 가스 허용 기준치

탈황 시설도 없이 가동하는 발전소가 환경 문제에 대해 이처럼 당당한 것은, 배출 가스가 단 한 차례도 법에 정해진 허용 기준치를 넘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삼천포 화력 발전소가 배출한 아황산가스는 평균 농도 167ppm으로 허용 기준치 270ppm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같이 ‘양호한’ 배출 가스 관리가 특혜에 따른 숫자놀음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주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1월1일 대기환경보전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의 아황산가스 배출 허용 기준치를 종전 500ppm에서 설비 용량 500MW 미만 발전소는 270ppm, 그 이상 규모에 대해서는 150ppm으로 강화하면서, 설비 용량이 기준의 6배가 넘는 삼천포 화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소규모 발전소와 같은 270ppm을 적용하는 특례 조항을 두었던 것이다.

주민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 환경부가 내놓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서이다. 2003년부터 시행할 이 개정안 역시 삼천포 등 일부 화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500MW 미만과 같은 150ppm(500MW 이상은 100ppm)을 적용한다는 특례 조항을 살려 두었다. 이에 대해 사천 환경운동연합과 사천 YWCA, 공해방지 고성군 대책위원회 등 사천시와 고성군의 30개 시민단체는 지난 2월 말 삼천포 화력 발전소에 대한 특혜를 철회하라는 공동선언문을 내고 환경부와 법제처에도 같은 내용의 입법 의견서를 제출했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소원과 시민의 단체행동을 통해 계속 항의할 계획이다.

3월21일에는 경남도의회가 사천시에서 ‘화력 발전소 주변 지역 환경 오염 실태 설명회’를 열고 한국전력에 공해 저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 날 설명회에서는 박정호 교수(진주산업대·환경공학과) 나기환 박사(해양환경산업기술 대표) 등 환경 전문가 4명이 삼천포 화력과 하동 화력 주변 공해 실태를 공개했다.

육상 생태계, 해양 생태계, 해양 수질·지질, 대기 등 4개 분야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생태계 변화이다. 현미경 사진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채취한 솔잎이 규칙적인 배열과 뚜렷한 형태의 기공(氣孔)을 지닌 것과 달리 발전소 주변에서 채취한 솔잎은 기공과 엽육세포가 훼손되고 배열도 불규칙한 것으로 관찰되었다. 발전소의 온배수(냉각용 바닷물) 취수구와 배출구 주변 바다에서는 동·식물성 플랑크톤 20∼60%가 감소했고, 적조 발생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 호르몬에 의한 바다 오염도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되었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 주변 표층 퇴적물에서는 내분비 교란 물질인 삼부틸주석(TBT)이 최고 353ng/g까지 검출되고, 패류에서도 324ng/g까지 나왔다. 석탄 하역장과 발전소 주변 해역에서 채취한 홍합에서는 다염화비페닐(PCB)도 5ng/g 수준이 검출되었는데, 이 성분은 자연 분해가 되지 않아 먹이사슬을 통해 체내에 축적되면 위험도가 훨씬 높아진다.
환경 호르몬 오염 ‘빨간불’… 발전소는 ‘배짱’

삼천포 화력 발전소는 조사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조사 내용은 물론 경남도의회 조사특위 구성조차 특정 인사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 환경관리 관계자는 “특위는 이번 조사에 참여한 민 아무개 교수(경남대)가 지난해 발표한 ‘삼천포 화력 발전소 주변 환경 오염 물질 배출’ 조사 보고서에 자극되어 구성된 것이다. 그렇지만 민교수는 환경 문제를 빌미로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다 입건되어 있는 사람이다”라며 극도의 불신감을 보였다.

민교수는 올해 초 속칭 ‘IMI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다. 국제종합경영연구원(IMI) 산하 환경연구소와 민교수는 어민들로부터 거제 삼성조선소의 어장 피해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고 삼성측에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조사 자료를 3억원에 사고, 6개월 혹은 1년짜리 (재조사) 용역을 맡겨 달라”고 협박성 제안을 했다가 삼성측이 대화 녹음 테이프를 공개하는 바람에 사건 내막이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경남도 특위의 조사 결과도 공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발전소측의 배짱 논리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는 반박 성명을 통해 ‘온배수로 인한 플랑크톤 시체는 오염 물질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 생물의 먹이원이 되어 자연 순환을 이룬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1998년에는 어민들과 공동으로 피해 조사를 벌여 1∼4호기 건설에 따른 어업권 보상금 2백69억원을 지급했고, 지금도 5·6호기 건설 이후의 추가 피해액 산정을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설마 피해가 없는데 피해보상금을 지급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천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삼천포 화력 발전소 회사장(灰沙場)과 취수로 인해 주변 바다 밑에는 두께 1m가 넘는 석탄재가 쌓여 있다. 발전소 인근 농민은 콩·참깨 농사를 포기했다. 공해에 약한 이들 작목은 수확이 60%까지 줄어, 대신 생명력이 강한 옥수수를 심고 있다. 삼천포 화력 발전소의 200m 높이 굴뚝 6개에서 연간 뿜어내는 대기 오염 물질 7만5천8백45t은 발전소의 대기 오염 영향권인 사천시와 고성군의 연간 총 대기 오염 배출량을 합한 7천5백81t의 10배가 넘는다.

발전소측은 주민들의 요구에 떠밀려 지난해 8월에야 탈황 설비 설치 타당성 및 최적 설치 방안 기술 용역을 발주했다. 부지난과 3천억원대의 예산 소요 등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어 연구 결과가 나와도 설치 여부는 미지수이다. 현재로서는 발전소의 탈황·탈질 설비 설치를 서두르는 것은 물론, 배출 기준을 더욱 강화해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것이 시급하다.

법에 설비를 맞추지 않고 설비에 법을 맞추는 숫자놀음의 환경 관리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특례 조항을 적용하는 일부 화력 발전소 주변 주민에게 전기는 문명의 불이 아니라 재앙의 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