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바뀐 안기부...컴퓨터 모르면 간첩?
  • 김 당 기자 ()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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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홈페이지 개설하고 정보화 거듭나기 박차
지난 1월22일 공식으로 문패와 심벌 마크를 바꿔 단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의 요즘 화두는 정보화이다. 새 심벌 마크의 횃불은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정보의 빛’을 상징하고 나침반은 ‘국민의 올바른 정보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뜻한다.

누구보다도 이종찬 국정원장이 앞서서 정보화를 독려하고 있다. 이원장은 하루 일과를 전자 결재로 시작한다. 이원장은 또 주로 매주 금요일에 이루어지는 청와대 주례 보고 때마다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간다. ‘쇼맨십’이나 ‘폼’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노트북을 켜놓고 보고한다. 이원장은 유일하게 대통령 앞에서 문서 대신 노트북을 사용해 보고하는 국무위원급 인사이다.국회 529호 사건이 계기 제공

직원들 모두에게도 이미 노트북이 지급되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요즘 지급된 노트북을 가지고 컴퓨터의 세계를 배우는 데 열심이다. 통상 IO (Intelligence Officer)라고 부르는 정보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사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이미 컴퓨터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뼈 아픈 실책을 경험한 바 있다. 국정원은 이른바 총풍 사건의 주인공인 한성기씨에 대한 압수 수색을 통해 한씨의 컴퓨터를 확보해 놓고서도 한씨가 비밀리에 작성한 이회창 후보에 대한 대선 지원 관련 문건을 찾지 못했었다. 한씨가 이후보 관련 문서는 파일의 확장자를 다른 일반 문서와 다르게 해 놓았는데 수사관들이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 송치 이후 검찰이 한씨의 컴퓨터에서 비밀 문서를 찾아냄으로써 국정원은 ‘눈뜬 장님’ 꼴이 되고 말았다.

국회 529호 사건 또한 국정원에 컴퓨터 붐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529호 사건은 국회 연락관 안철현씨(5급 정보사무관)가 ‘주변 정리’를 제대로 못해 오해가 증폭되었다는 것이 국정원의 판단이다. 안씨가 연락관실의 사물함과 가방에 쓸모 없는 자료와 해묵은 문서까지 잔뜩 넣고 다닌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안, 특히 컴퓨터 보안이 강화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529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그 흔한 컴퓨터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용 LAN(근거리 통신망)이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용 LAN은 본부와 직원들이 상근하는 지부와 분실에만 깔려 있다. 529호실에 국정원 LAN이 깔려 있지 않은 사실은 바로 이곳이 한나라당 주장과 달리 국정원 분실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오히려 이 방에는 국회 LAN이 깔려 있다. 이 방의 주인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회(정보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29호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에는 다시 한번 ‘꺼진 컴퓨터도 다시 보자’는 풍속도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감찰실 직원들이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다. 틈만 나면 컴퓨터를 켠다. 물론 다른 직원들의 컴퓨터이다. 숨겨진 파일을 찾아내고 손상된 파일까지 복구하는 감찰 활동의 일환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보안상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문서를 보관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대다수 직원들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파일과 백업파일을 지우거나 ‘휴지통’에 버려 왔다. 물론 그렇다고 파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휴지통을 비워야 없어지고, 또 최근 버전의 윈도 프로그램에서는 휴지통을 비워도 리센트 파일을 누르면 최근 한달 동안 작성한 파일이 뜬다. 이런 ‘이치’를 뒤늦게 터득한 감찰실 직원들이 요즘 컴퓨터에 들어가 ‘지운 파일도 다시 보는’ 재미를 붙인 것이다. 이래저래 ‘컴맹’은 이 조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 정보 등 일반에 판매 예정

국정원 출범과 동시에 국정원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nis. go.kr)가 개통됨에 따라 이제는 ‘넷맹’도 발 붙일 곳이 없게 되었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국정원으로 개명한 변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국정원은 청와대 출입 기자단을 초청한 1월25일 리셉션에 앞서 22일 과학·정보통신 담당 기자들을 먼저 초청해 인터넷 홈페이지 개통식을 가졌을 정도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일단 국정원 인터넷 홈페이지는 ‘인기 캡’이다. 개통 이후 1월 말 현재 조회 수가 수만 회에 이르고 있다. 처음으로 문을 연 정보기관에 대한 호기심 때문도 있지만 내용도 알차다는 평을 듣는다.

우선 그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북한 정보·해외 정보 등 12개 메뉴로 구성된 자료와 동화상 4천여 건이 눈에 띈다. 관련 사이트와 연결되는 ‘사이트 링크’ 메뉴와 아이들의 참여를 유인하는 ‘어린이 마당’ 코너도 있다. 특히 그동안 국정원이 독점했던 북한 정보 보따리에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급 정보가 꽤 들어 있다.

국정원은 앞으로 산업 경제·미래 정보 같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내실을 기하고 유료 사이트를 지정해 판매용 정보 자료 목록·가격·판매 방법을 게시할 예정이다. 국정원은 이와 별도로 세계 각국의 해커가 침투하는 데 대비한 정보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공 안보·북한 정보·산업 경제·국제 범죄 분야 종사자들에게 별도 ID를 부여해 고급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급하는 등 정보 자료 불법 유출을 차단할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국정원은 또 이미 지난해 4월 대한무역공사(KOTRA) 등 16개 민간기관과 정보교류협의회를 구성해 대외 정보 서비스 지원 체제를 구축하고 각종 정보 지원을 확대해 왔다. 이원장이 취임 초기에 밝힌 대로, 대통령 1인을 위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이다. 국정원 출범에 맞춰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보 지원을 청와대 위주에서 행정기관 및 민간 기업체 등에 확대해 98년 한 해에 총 22만5천7백여 건을 지원했다. 이중 정보 보고서는 1만4천2백여 건이고, 간행물 등 정보 자료는 21만1천4백여 건이다. 거기에는 〈21세기 새로운 위협, 국제 범죄의 실체와 대응〉 〈위조 미화 식별 자료집〉 〈북한 지역 정보 총람〉 같은 요긴한 책자도 포함되어 있다.

대국민 언론 홍보 및 공보 지원 체제도 대폭 보강했다. 국정원은 최근 황재홍 공보보좌관이 주도해 공보관실에 과를 하나 더 신설했고 그만큼 인원도 늘렸다. 과거의 오욕에 주눅들지 않고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라는 영문 명칭대로 ‘정보 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다시 태어난 국정원의 모습을 적극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열린 국정원’ 실험이 어떤 성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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