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조폭까지 5·18 보상금 받다니”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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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단체, 가짜 솎아내기 자정운동 선언
광주 민중항쟁 20주년인 올해 5·18 피해자에 대한 국가유공자 예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광주 5·18 묘역에서 거행된 20주기 기념식 현장에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5·18 희생자들을 민주화유공자로 예우하고 5·18 묘역을 국립 묘지로 승격시키겠다”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거나 받게 될 모든 5·18 희생자를 민주화유공자로 예우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말한 대로라면 연내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현재까지 보상을 받은 3천8백60명은 물론 올해 4차 보상을 신청한 8백68명 가운데 심사를 통과하는 사람 모두가 국가유공자가 되는 셈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5월16일 광주를 방문했을 때 5·18 피해자 국가유공자 예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때문에 지난해 6·25 관련 단체의 반발과 독립유공자 등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무산되었던 5·18 관련자 국가유공자 예우 법안은 연내에 여야 합의를 거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5·18 유공자 예우 문제가 급류를 타는 한편에서 가슴을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검찰이 한창 색출하고 있는 ‘가짜 5·18 보상자’들이다. 이들은 유공자가 되기는커녕 감옥에 가게 될 처지이다. 가짜 피해자를 만들어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5·18 단체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5·18 관련 단체 내부에서는 ‘가짜와 사이비 피해자들이 보상금은 어찌어찌 챙겼지만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는 것까지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만큼 5·18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해 5월 단체 내부에서는 국가유공자 예우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 대대적인 자정운동과 함께 ‘가짜 솎아내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어 주목된다. 1990∼1998년 세 차례 보상금이 지급되는 과정에서 허위로 서류를 조작해 보상금을 타낸 가짜 피해자를 가려내고 처벌해야만 진짜 피해자가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5월 단체의 ‘양심 고백 운동’으로 평가되는 가짜 피해자 솎아내기 작업은 최근 5월 단체장 중 한 사람인 이무헌 전 ‘사단법인 5·18 민중항쟁 구속자회’ 이사장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5월 단체 내부의 소장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짜들이 국가유공자 대우 받는 일 막아야 한다”

현재 ‘5·18 민중항쟁 구속자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구속자회비대위·위원장 양희승)는 회원들의 제보를 받아 가짜 보상자를 가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5·18 가짜 부상자 수사를 요구하며 검찰에 탄원서를 낸 강상원·김태호 씨도 ‘5·18 민중항쟁 부상자회’ 회원과 접촉하며 가짜 보상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 ‘5·18 민중항쟁 청년동지회’(회장 강구영)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짜 보상자 고발 접수와 병행해 ‘5·18이라는 특권 의식을 바탕으로 관련자나 비관련자를 상대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힌 사례‘에 대한 고발 접수를 받고 있다. 5월 관련 단체장이나 단체의 이권 개입·청탁으로 피해를 본 민원 사항이 있으면 기업체나 관공서, 일반 시민 할 것 없이 주저하지 말고 알려 달라는 것이다. 20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5월 단체장들의 ‘5·18 사업’을 수수방관했거나 단체장들의 위세에 눌려 비판을 삼가던 5월 단체 청년층 회원들이 공식으로 자정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구속자회비대위 관계자는 “5·18 항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강도·폭력 등 일반 범죄 혐의자들과 1980년 5월25일 도청내 ‘독침 사건’ 당사자들도 보상금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구속자회 회원으로 행세하고 있다”라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인터뷰 박스기사 참조). 구속자회비대위가 <시사저널>에 밝힌 바에 따르면 1980년 5·18 항쟁 기간에 광주 시내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과 관련해 군 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은 네 사람이 당시 2년 동안 실형을 살았는데, 상무대 영창에 구속되어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관련 기록을 근거로 1990년과 1993년 5·18 관련자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타낸 뒤 5·18 구속자회 회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구속자회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1980년 7월 상무대 영창에 함께 있었지만 총을 들고 다니며 강도짓을 한 혐의로 붙잡혀 왔다는 것은 당시 구속자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숭고한 항쟁 기간에 나쁜 짓을 했다고 다른 구속자들에게 뭇매를 맞았어도 이들은 혐의를 부인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계엄 치하의 공포 분위기였다고 하지만 아무 근거 없이 4인조 강도라는 강력범죄 혐의를 뒤집어씌웠을 리 없다. 대부분의 5·18 항쟁 참여자들이 내란 음모 가담이나 내란 실행, 계엄법 위반, 특수절도(차량 탈취) 등의 큰 죄목으로 구속되었거나 재판을 받고 1980년과 1981년에 대부분 풀려난 데 비해 이들은 군사재판 1심에서 강도·강간 혐의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만큼 항쟁 참여자들과는 죄질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구속자회비대위의 주장을 근거로 <시사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관련자 박 아무개씨(당시 28세) 등 4명은 모두 1990년과 1993년 1·2차 보상 시기에 상무대 영창 생활 때 입은 부상과 구속·수형을 근거로 각각 1억원대 보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5·18 구속자회 회원 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이들은 대법원 판결에서 10∼20년을 선고받고 2년여 동안 옥살이를 한 뒤 1982년 12월 전두환 정권 때 ‘5·18 광주사태 관련자’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정동년(현 광주남구청장) 김종배(현 민주당 의원) 씨 등과 함께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판결문 기록은 개인 사생활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때문에 확인하지 못했다. 보상 당시 조사가 보증인들의 주장을 근거로 국방부나 교도소에 질의해 구속과 수형 일수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았던 만큼 ‘진상 규명’을 위해 당시 군사재판부의 판결문과 광주시의 보상 과정에 대한 정밀한 재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군 편에 선 ‘독침 사건’ 주역도 피해자 둔갑

구속자회비대위는 또 5·18 당시 ‘독침 사건’ 관련자들이 이제 와서 5·18 피해자로 보상받은 것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5·18 항쟁과 반대편에 섰던 독침 사건 관련자들이 보상금을 수령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들이 보상받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내세워 앞으로 민주화유공자로 예우받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침 사건이란 1980년 5월25일 아침 8시 도청 내에서 자칭 시민군 특공대장인 장 아무개씨(당시 24세) 등이 ‘독침을 맞았다’고 말한 후 쓰러져 전남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일을 말한다. 당시 광주항쟁을 고정 간첩이 사주한 폭동으로 몰고가기 위해 계엄사가 조작한 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침 사건 관련자 2명 역시 1990년과 1993년 상무대 영창 구속을 근거로 보상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해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5·18 구속자회의 한 회원은 “독침 사건 관련자 장씨는 계엄군에 붙잡힌 뒤 상무대 헌병대 영창에 복면을 쓰고 나타나 수사관들에게 도청내 항쟁 관련자들의 직위와 역할를 말해 주며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돌아다녔다. 그런 사람이 민주화유공자가 된다면 5·18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구속자회비대위는 이밖에도 당시 항쟁 기간을 전후해 검거된 조직 폭력배나 조선대 학내시위 학생 폭행 사건 연루자들도 상무대 영창에 구속되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내세워 보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구속자회비대위가 이처럼 20년 동안 묻어둔 사연들을 ‘양심 고백’하며 털어놓은 것은 더 이상 5·18 정신이 훼손되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보상 실태 조사 위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라”

검찰은 현재 1998년 제3차 보상 때 5·18 단체 간부들의 조직적인 가짜 보상자 조작이 있었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1990년과 1993년의 1·2차 보상 과정에 대한 정밀한 수사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짜 피해자 수사는 1차 보상의 경우 공소 시효가 지났고, 2차 보상도 올해 공소 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어 한시가 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5월 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가유공자 특별법 제정은 환영한다. 그러나 가짜를 밝혀내는 일이 공소 시효가 지나 수사가 어렵다면 5·18 관련 보상 실태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하는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공소 시효가 끝났다고 해서 가짜나 사이비로 의심되는 관련자를 그대로 놔둔 채 모두 유공자로 예우한다면 5·18 광주는 두고두고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뼈아픈 말을 남겼다.

이처럼 5월 단체 내부의 자정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한편에서 가짜 보상자를 수사하는 검찰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5월10일 이무헌 전 사단법인 5·18민중항쟁 구속자회 이사장 등 9명을 구속한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5월 <시사저널>을 통해 ‘가짜 부상자’를 고발한 5·18 부상자회 회원 강상원·김태호 씨의 협조를 얻어 1993년과 1998년 2.3차 보상 때 5·18 관련 단체장이 개입해 조직적 가짜 만들기를 벌였는지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5·18 관련 단체장이 보상 신청자에게 성공 사례금을 받고 사건 전말을 짜맞추어 조직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는지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5월 단체 핵심 간부들이 보상 신청자의 ‘인우 보증인’으로 나선 경우 5·18 단체 간부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특정 병원 의사의 진단서가 첨부되었는지 추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가짜 보상자 몇 명을 색출해 내기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고 말해, 수사 여부에 따라 또 다른 5·18 단체 간부들이 사법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 천년을 맞아 성년이 된 5·18은 지금 정부가 국가유공자 예우를 추진하고 검찰이 5·18 가짜 피해자를 무더기로 색출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20년 동안 곪은 상처를 스스로 터뜨리고 치료해야 할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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