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학원 `입시부정` 커넥션 추적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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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 입시 비리 커넥션 추적/학원과 시험 진행요원 ‘담합’ 성행
“이조는 왜 이렇게 산타가 많아.” 체육과 수험생 가운데 5명이 갑자기 빨간 모자를 쓰자, 한 진행요원이 이렇게 말했다. 빨간 모자를 쓴 수험생들은 모자를 벗고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1분에 63회. 만점이었다. 수험생들이 수군거렸다.

체대 입시에서 윗몸일으키기는 엄격하다. 엉덩이의 반동을 이용하면 안되고, 양 팔꿈치가 양 무릎에 닿아야 하며, 양 어깨 역시 측정 판에 닿아야 한다. 하나라도 위반하면 파울이다. 하지만 유독 산타 학생들에게는 파울 규칙이 엉성하게 적용되었고, 빨간 모자에는 특정 학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체대 수험생 사이에서 유명한 ‘빨간 모자 괴담’이다. <시사저널>이 확인해보니 빨간 모자 이야기는 괴담이 아니었다. 2003년 인천 지역 한 대학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었다. 이 학생들이 빨간 모자를 쓴 것 자체가 복장 규칙 위반이다. 수험생 유의 사항 가운데 하나가 특정 학원을 나타낸 복장이나 모자 등을 착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당시 빨간 모자를 쓰고 입시를 치른 5명 가운데 현재 재학하는 학생은 3명이었다(나머지 2명은 합격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빨간 모자 괴담이 다시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화여대 체육학부 입시 비리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빨간 모자 괴담은 묻혔을지도 모른다. 검찰은 지난 2월8일, 이화여대 이 아무개 교수(48)를, 돈을 받고 하 아무개양을 부정 입학시킨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하양의 학부모 김 아무개씨는 딸을 입학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5천만원 등 5천2백여만원어치 금품을 김교수에게 건넸다. 검찰이 압수 수색한 이교수의 집에서는 돈을 받을 때 사용한 고급 가방과 고급 스카프, 고급 위스키 등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대학측은 전체 심사위원의 채점 가운데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점수를 환산하기 때문에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해명이 화근이었다. 검찰은 이교수가 다른 교수들과 공모하지 않았다면 합격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반 학생들과 달리 체대 수험생이나 재학생 들은 이교수에 대해 ‘우호적’이다. 재수 없게 걸렸다는 ‘동정론’이 강하다. 체대 재학생이나 수험생 스스로 체대 입시에 불법 관행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체대 입시와 관련된 잡음 가운데 8할은 학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커넥션이다. 체대 합격의 모든 길은 학원으로 통한다고 하리 만큼 학원 과외는 당락에 결정적이다.

체육 관련 학과는 보통 수능 점수가 30∼40%, 실기 시험이 30∼40%, 나머지는 학생부 성적으로 평가한다. 수능과 학생부 성적은 지원한 수험생들이 엇비슷해 당락은 실기 시험이 좌우한다. 실기 시험은 기초체력시험과 전공 실기로 나뉜다. 기초체력은 윗몸일으키기·3단 뛰기·턱걸이 등 기록 측정이 가능한 종목이고, 전공 실기는 농구·배구·축구·핸드볼 등이다.
상대적으로 전공 실기에서 잡음이 심하다. 주관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화여대 하 아무개양도 핸드볼 전공 실기에서 뒷말이 나왔다. 드리블과 슈팅 자세를 보고 판정하는 핸드볼 실기에서 하양은 두 번이나 실수했다. 하지만 이교수는 최고점을 주었다. 하양이 합격하자 검찰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전공 실기 평가는 전적으로 교수들 몫이다. 학원 강사 경력 5년차 김 아무개씨는 “전공 실기는 100% 주관 평가다. 자세를 보면 거기서 거기다. 오판의 심증이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번에 구속된 이교수는 핸드볼과는 거리가 먼 스포츠의학이 전공이고, 취미는 테니스다. 이교수는 핸드볼뿐 아니라 다른 종목 평가에도 참여했다.

일부 대학은 잡음을 없애기 위해 전공 실기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전공 실기뿐 아니라 기록 측정이 가능한 기초체력시험에도 구멍이 있다. 진행요원들이 학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경우다. 교수의 손발이 되어 실기 시험 진행을 맡은 이들은 대부분 대학원생(조교)이거나 고학년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학원 강사나 개인 과외를 한다. 문제는 이들이 진행요원과 감독관으로 시험장에 들어간다는 데 있다. 파울을 적발해내고 기록을 측정하는 이들이 수험생과 안면이 있다면, 공정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특히 ㅅ대·ㅇ대 재학생들은 대학 캠퍼스 내 체육관에서 개인 과외를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실기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개인 과외를 하는 것이다. 현직 학원 강사 이인서씨(가명·23·ㅅ대 체육학과)는 “시험장에서 몇 개월 동안 과외를 받고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백보 앞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번 입시 때 이씨는 ㅅ대 체육관에서 수험생들을 미리 훈련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마침 ㅅ대 재학생 개인 과외팀과 연결되어 그가 가르치는 학생이 시험장에서 미리 연습할 수 있었다. 실제 실기 시험을 볼 때 그 재학생 과외 선생이 기록 진행요원으로 들어왔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실기시험장 진행요원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교수들은 대부분 전체적인 감독 역할을 하고, 실무는 기록 측정 요원이나 파울을 잡는 재학생들이 맡는다. 어떤 진행요원은 파울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불공정한 시험일 수밖에 없다. 파울 하나는 등급을 한 단계 내릴 수 있어 점수 차가 크다. 진행요원들이 눈감아 주어 대리 시험을 치르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

지난 1월20일 서울지검 형사2부는 ㅈ대 체육학과 학생 김 아무개씨(22)를 구속했다. 학원 강사로 일했던 김씨는 수강생의 실기 시험을 자기 후배에게 대신 치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역시 실기 시험 당시 진행요원으로 뽑혔는데, 그가 맡은 일이 바로 신원 확인 작업이었다.

구조적으로 일부 체육대학은 신원 확인 작업이 허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전문대학은 수험표에 사진을 부착하지 않아 대리 시험 천국으로 유명하다. 한 체육대학 재학생은 “지방 사립 대학이나 전문대는 알면서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신원 확인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라고 말했다. 이 재학생은, 고액을 받고 대신 시험을 치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학원 선후배 사이에서 ‘봐주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특정 학원 출신들이 기록 진행요원을 싹쓸이하는 경우다. 지난해까지는 ㅇ대 체대는 실기 시험이 끝날 때마다 뒷말이 돌았다. ‘기록요원들이 모두 ㄱ학원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현직 교수와 특정 학원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대학은 올해 입시에서 ROTC를 진행요원으로 대체했다.
체대 입시 학원은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 비해, 오히려 맞춤 학원이 인기다. 대학마다 종목이 달라 특정 대학을 겨냥하는 특정 학원이 우세하다. 서울 ㅇ대는 ㅇ학원, ㄱ대는 ㅇ학원 식이다. 맞춤 학원은 그 학교 출신이 학원장을 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합격률이 높다는 것은 합격 노하우를 꿰고 있다는 뜻도 되지만, 교수들과의 안면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학원장들이 입시생들과 상담할 때 “내가 (그 대학)석박사 과정에 있어 주임교수를 잘 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체대 입시 학원가에서는 일부 대학 강사가 직접 학원을 차려놓고 후배를 동원해 얼굴 사장을 시킨다는 소문도 퍼져 있다.

체육 전문 입시 학원을 차리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별다른 시설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체육학원을 가보니 넓은 공간에 윗몸일으키기대와 철봉대, 멀리뛰기 충격방지용 매트가 전부였다. 일부 학원은 상담실만 있고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학원비는 보통 월 30만∼40만 원선. 수능이 끝나고 시작되는 집중 코스는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다. 학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집중 코스 학원비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였다. 교차 지원이 가능한 대학의 집중 코스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올해 ㅇ대를 지원한 김 아무개씨(20)는 “실기 시험 불과 2∼3주 전에 학원에 등록한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수능 점수를 받고, 교차 지원을 위해 부랴부랴 학원에 등록한 경우다”라고 말했다. 급행료를 지불하는 학생들의 학원비는 베일에 가려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화여대 역시 교차 지원이 가능한 대학 가운데 하나다.

이화여대 체육학부를 지원했다가 낙방한 이 아무개양(19)은 부정 입학 뉴스를 접하고 “이교수가 올해 입시 때도 심사위원이었다. 올해 입시에 부정 입학 잡음이 없었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이양의 부모는 대학측에 실기 점수 공개를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양은 자신의 낙방이 이해할 수 없다며 현재 인터넷에서 억울한 낙방자들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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