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전철 노선 놓고 경주 사분오열
  • 경주·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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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치 4개 안 대립, 청와대에 진정서까지…개발 낙후 ‘한풀기’ 겹쳐 분쟁 가열
고도 경주가 고속 철도 노선 시비로 가마솥처럼 끓고 있다. ‘고속 철도 경주 와야 지역 발전 앞당긴다’ ‘고속 전철 원안 건설 경주 시민 사수하자’ 등 천장 이상의 현수막이 경주 전역을 도배질하듯 뒤덮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92년에 이미 서울 천안 대전 대구 경주 부산까지의 세부 노선을 확정 발표한 점을 상기하면, 경주 시민들의 이런 ‘현수막 시위’는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오래전에 확정된 고속 전철 노선의 경주 통과를 새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경주 지역에 산재한 신라 문화재와 불교 유적은, 시민들에게는 자랑거리이면서 골칫덩어리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경주가 ‘관광 한국’의 상징 도시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주민들의 피해와 생활 불편 ‘덕분’이었다. 웬만한 곳은 7~15m, 도심도 최고 25m의 고도 제한에 묶여 있고, 기거할 집마저 자신의 취향대로 지을 수 없는 곳이 경주이다. 지붕에 골기와를 얹으라면 얹어야 하고, 한옥에 재래식 화장실 생활도 군소리 없이 견뎌야 한다. 그렇다고 별다른 지원이나 세금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경주시의 건축 관련 조례는 시민들을 묶는 족쇄 노릇을 하고 있다. 건축업자들에게도 경주는 웃고 왔다 울고 떠나기 십상인 도박판이다. 공사장에서 토기 한 조각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몇년이고 발굴단의 ‘붓질’이 끝날 때만 기다리다 도산하기 딱 좋다. 개발 낙후는 정해진 이치이고, 당연히 땅값도 제자리 걸음이다.

따라서 경주 시민들은 경부 고속 전철 통과 계획을 그간의 희생이 물어다 준 ‘보은의 박씨’로 받아들였다.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은 쌓이고 쌓인 불만의 표출이자 보은의 박씨에 대한 어떤 ‘왈가왈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 여기에는 또 정부에 대한 불신도 크게 작용했다. 물론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속 전철의 경주 통과 계획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그런데도 지역 여론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경주 노선이 대선 공약 사항임을 들어 ‘대통령의 확약’을 요구하는 데까지 증폭됐다.

이같은 불신은 고속 전철 관련 부처의 안이한 자세에서 비롯됐다. 건설교통부는 89년 ‘고속 철도 및 신공항 건설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구에서 경주시 외곽 건천읍을 우회하는 기술조사 노선과 경주 도심을 지나가는 비교 노선을 ‘획정’했다. 건교부는 검토 끝에 경주 시내를 관통하는 비교 노선을 채택했으나, 이 과정은 경주의 관리자 격인 문화체육부를 완전히 배제한 채 진행됐다.
건교부·문체부 대립에 시민단체 가세

문체부의 대응은 더욱 한심하다. 문체부는 노선이 확정된 채 2년이 넘도록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야 건교부에 확정 노선을 기술조사 노선으로 바꾸거나 경주 통과 전구간을 지하화할 것을 제안하고, 아니면 아예 경주 통과 계획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확정 노선 구간의 문화재 발굴 허가까지 내준 후에야 현장을 둘러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학계의 반발에 등을 떼밀린 흔적이 역력했다. 문체부의 조사 결과, 확정 노선 주변의 문화재는 42개소이고, 2km 이내에는 국보·보물 등 지정 문화재만도 62개소나 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건교부는 ‘노선 5백m 이내의 유적은 돌무지 등 비지정 문화재 10점과 천연기념물(오유리등나무) 1점뿐’이라는 영남대 지표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워 문체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문체부안도 문화재 훼손이 예상되는 데다 불교 유적지인 남산 기슭을 지나가 학계와 불교계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후 한동안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던 문체부는 지난 9월부터 ‘통과 노선 발굴 허가 취소’라는 강수를 들고 나와 다시 건교부와 맞섰다. 이 역시 미술사학회·고고학회 등 16개 학술단체의 대정부 건의서, 대학교수 3천여 명의 진정서 등 학계의 반발에 뒤이은 조처였다.

건교부와 문체부 간의 대립은 경주 시민들의 불안감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다 시민단체들이 문화재 훼손 방지책으로 제3의 노선을 제안한 지난달부터 사태는 훨씬 더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단체 중 대안을 처음 제시한 곳은 신라역사과학관(관장 석우일)이라는 사설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석굴암 구조 분석과 모형 제작, 신라 시대에 관측된 별자리 재현 등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92년에는 문헌 자료와 2년간의 정밀 답사를 통해 신라 시대의 경주 일원을 그림으로 되살린 <신라 왕경도>를 완성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당시의 답사 내용에 경주박물관회(회장 김원주)와 ‘경주를 사랑하는 시민 연대모임’(대표 김덕수)의 자문을 얻어 10월 말 ‘고속철 경주 통과 제3안’을 내놓았다. 문체부 노선을 좀더 에둘러 건천-화천 방면으로 우회하는 이 안의 장점으로 연구진은 △문화재 피해 최소화 △기존 계획 노선 10㎞ 이상 단축 △경주 서부권 개발 촉진 △교통연계 용이 △남산 불교 유적 보존 등을 들었다. 석우일 관장은 ‘정부의 기술조사를 전제로 수립한 건의 차원의 제안’이라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석관장은 “문화재가 거의 없고 계곡으로 이어진 코스다. 하늘이 고속철을 위해 남겨 준 땅으로 여겨질 정도이다”라고 최적 노선임을 강조했다.
‘경주 내전’에 울산·부산·포항도 참전

11월2일 경주 경실련(공동대표 이성타·이종룡)이 개최한 ‘고속 철도 경주 통과에 대한 공청회’는 민간 차원의 대안 제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건교부와 문체부 관계자도 토론자로 참석한 이 날 공청회에서 강태호 교수(동국대·조경학과)는 신라역사과학관의 3안과 거의 동일한 대안 노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역사 건립 위치로는 건천지구를 꼽아 화천지구를 추천한 역사과학관측과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렇게 되자 대안은 검토도 되기 전에 주민들만 갈라놓고 말았다. 건천지구는 경실련 노선을, 화천지구는 역사과학관 노선을 적극 지지하며 서로 당위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경실련 김창선 간사는 “이런 결과를 우려해 내부에서도 논란이 심했다. 대안을 공개하지 않고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 노선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건천읍민들은 공청회 직후부터 역사 유치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백규태씨(64·농업)를 비롯한 주민들은 “건교부가 연간 5천억원 이상의 유지관리비 절감이 기대되는 건천 노선을 외면하고 있다”며 감사원에 탄원서를 내고 1천79명의 서명 날인을 받아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기로 했다.

또 경주 지역 자생 단체와 기업체 대표 70여 명은 ‘경부 고속 철도 확정 역사 사수 범시민단체협의회’(공동의장 최용환·김성수·한성근)를 결성해 세미나를 열고 정부 각 기관에 건의서를 발송하며, 건교부 노선과 북녘들(탑정동) 역사 건립을 조속히 시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건교부는 지난달 28일 역사 건립 위치를 당초 계획한 북녘들에서 남쪽으로 10㎞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주민 간의 갈등이 깊어진 가운데 시내 중심가에는 ‘국책 사업 대상으로 정치 장난 하지 마라’는 이색 현수막도 등장했다.

‘경주 통과 노선 사수’라는 공동 목표로 시작한 ‘서라벌 전투’는 집안 싸움을 거쳐 이제 지역갈등으로 번져 갈 조짐까지 비친다. 인근 울산시에서는 상공인들을 주축으로 아예 역사를 울산에 유치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경주 노선을 옹호하는 포항 지역의 건의, 대구-부산간 직선화를 요구하는 부산 지역의 건의 등 고속 전철과 관련해 정부 기관에 접수된 건의·탄원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현재 경주 지역 여론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은 경주에 역사만 유치되면 위치나 노선은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이다. 논란을 주도하고 있는 소수 여론 형성층이 사욕을 버리고 문화재 보호와 지역 발전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고속 전철을 유치하기 위한 싸움’은 오히려 ‘고속 전철을 내다 버리는 싸움’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시민들의 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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