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논의, 30년 전에도 있었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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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때부터 ‘도입’ 주장 나와…1950년대에는 집총 거부자 편의 봐줘
‘한국적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입법으로서 대체 복무를 과하여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보다 민주주의 원리에 적합하리라고 본다.’

한자투 문체만 아니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하는 인권단체의 최근 주장과 똑같다. 그러나 위 글은, 30여 년 전에 발표된 논문의 일부이다. 1975년 2월, 당시 서울대 강사이던 김효전씨가 발표한 논문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거부’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읽는 <고시계>에 실렸다.

위 논문은 30년 시차를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담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개념과 근거, 법적 성격, 판례를 꼼꼼히 따지면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대체 복무제가 그 대안이라고 결론을 냈다.

현재 동아대 법학부에 재직하는 김효전 교수는 “유신 체제 때여서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헌법학자로서 연구할 만한 주제였다”라고 회상했다. 김교수뿐 아니라 다른 헌법학자들도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하지만 연구와 논문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처럼 잊혔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법학자들의 연구는 1959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가장 먼저 집총 거부에 대한 연구서를 펴낸 법학자는 고 최이권 교수다. 1998년 작고한 최교수는 자신 역시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제7안식교) 신자였다. 경희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최교수는, 1959년 <신앙의 자유>를 집필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근거해 집총 거부에 대한 법적 견해를 밝힌 저서인데, 김두일 대법관이 추천사를 썼다.

1950년대만 해도 제7안식교는 여호와의 증인과 함께 집총 거부의 양대 산맥이었다(제7안식교는 입영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아 스스로 양심적 집총 거부자라고 부른다). 1956년 7월 입영한 제7안식교도 3명이 집총을 거부해 구속 수감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 집총을 거부해 사법 처리된 1호였다. 교단이 대응에 나섰고, 최교수에게 법적 대응 논리를 만들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앙의 자유>다.

교단의 총력 대응에 정부는 한 발짝 물러섰다. 1957년 4월3일 김용우 국방부장관은 ‘재림교인 병무 소집 교육에서 토요일 예배를 허용하고 편의를 도모할 것, 재림교인 병사들을 위생병과 또는 기타 직접 무기를 휴대치 않는 병과에 가급적으로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근거해 집총 거부를 설파했던 최교수는, 1970년 삼육대 학생처장을 맡으면서 달라졌다. 유신 체제가 강화되고 삼육대학에서 교련 교육이 시작되자, 삼육대 신학과 학생들이 집총 훈련을 거부했다. 학생처장이던 그는 집총을 거부해 감옥에 간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총을 들게 했다. 결국 1970~1980년대 제7안식교는 집총을 거부하지 않았다. 제7안식교도들은 집총 훈련을 받는 대신, 토요일 안식일을 얻는 것으로 타협했다.
반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입영 자체를 거부했고, 감옥에 갔다. 법학자들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연구서를 계속 냈다. 1980년대는 주로 독일 유학파가 관심을 가졌다. 서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 기본법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연구 논문 가운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직접 기소해야 했던 법무관의 논문도 있었다. 1985년 군사법 연구 논문집에 실린 ‘양심상의 병역 거부에 관한 법적 고찰’이 현역 군 법무관이 발표한 것이다. 논문은 각국 대체복무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양심상 병역 거부 문제를 국가보안 위해 요인으로 단순히 일축할 수 없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끝맺었다.

현역 법무관 신분으로 논문을 쓴 주인공은 현재 서울행정법원 유남석 부장 판사다. 유판사는 “당시 여호와의 증인들을 내 손으로 기소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를 했다”라고 말했다. 대체복무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판사는 1988년 강금실(현 법무부장관)·김종훈(현재 변호사) 판사 등과 함께 ‘우리법 연구회’를 결성한 창립 멤버다. 지난 5월2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 역시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제를 두고 여론은 반대론이 우세하다. 반대론은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제가 될 수 있다는 시기상조론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미 30년 전부터 법학계에서는 대체복무제를 연구했다. 30년 전에 뿌리 씨앗을 이제는 키워 거둘 때다. 한국공법학회장을 역임한 김효전 교수도 “늦지 않았다. 1970년대나 지금이나 대체복무제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성숙한 사회라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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