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둑 터진 탐진댐
  • 전남 장흥·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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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 “아스팔트 잠겨 수질 오염 우려”…수자원공사 “걱정 없다”
아스팔트는 탄화수소화합물인데, 방수성과 접착성이 커서 도로 포장과 건축재료로 주로 이용된다. 원유를 정제한 뒤 남은 찌꺼기가 주재료인 아스팔트 혼합물로 표면을 덮고 로울러 작업을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말끔한 아스팔트 도로가 된다. 그런데 이 아스팔트 도로가 잠겨 있는 물을 식수로 사용해도 몸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페놀 등 독성 물질을 함유한 석유화학물질이니 시나브로 수질을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지역 환경단체들 “무해하다는 주장은 난센스"

최근 전남 장흥에 건설되고 있는 탐진댐과 관련해 아스팔트 도로를 제거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몰 지역에 아스팔트 도로를 그대로 두면 수질 오염 물질이 용출되기 때문에 담수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단체와 주민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기우(杞憂)’라고 반박하면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자원공사와 주민 간의 보상 공방(43쪽 상자 기사 참조)으로 바람 잘 날이 없던 차에 아스팔트 제거 논쟁까지 불붙은 것이다.

수몰 지역 아스팔트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환경부는 외국 연구기관의 자료들을 토대로 ‘아스팔트가 수질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공식 결론을 내놓은 상태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미국 아스팔트 연구소 등 여러 기관의 연구 결과, HMA(Hot Mix Asphalt) 포장 도로에서는 중금속 및 다환 방향족탄화수소물질(PAHs)이 거의 용출되지 않아 안전성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환경부 평가분석과는 ‘설사 유해 물질이 남아 있더라도 정수 과정에서 모두 걸러지므로 문제가 없다’며, 세계적으로도 수몰 지역의 아스팔트 도로를 제거한 사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몰 지역 아스팔트 도로는 폐기물이므로 제거해서 재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광주·전남 발전연구원 김종일 책임연구원은 “폐아스팔트가 수질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더라도 페놀류 등 용출 물질에 의한 수질 오염 위험이 상존하는 데다, 건설 폐기물을 제거하지 않고 담수하는 것은 자원을 재활용하지 않고 폐기물을 무단 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공격했다. 유해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환경부나 수자원공사가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수몰 지역의 폐아스팔트를 제거해 주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환경 친화적인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푸른 전남 21 협의회’ 등 광주·전남 지역 환경단체들도 줄곧 수몰 지역 폐아스팔트를 제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푸른전남21협의회 서한태 이사장은 “석유화학물질인 아스팔트가 수질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환경부나 수자원공사의 주장은 난센스다. 아스팔트에서 용출되는 페놀이 암 유발 물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라며 마땅히 수자원공사가 책임지고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이처럼 탐진댐 아스팔트 제거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주요 식수원인 주암댐이 1993년 담수에 들어가기 전에 그곳에 있던 가옥·건물·분뇨 등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현재 3급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주암댐은 지금도 갈수기만 되면 물에 잠겼던 나무와 아스팔트 도로들이 보기 흉하게 드러나곤 한다. 주암댐에 수몰된 아스팔트 도로 전체 길이는 25.7㎞이다. 갈수기에 드러나는 아스팔트 도로는 경관을 해쳐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3급수로 전락한 주암댐 전철 밟지 말라”

주암댐 담수 당시 수자원공사는 수몰 지역의 가옥과 건물, 폐목과 분뇨 등 각종 잔재물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주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때문에 주암호는 현재 호소 내부에 수장되어 있는 물질이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오염의 비중이 축산 폐수나 생활 하수 등 외부 유입물에 의한 오염의 비중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전남 주민들이 주암댐 건설 과정에서 소홀했던 수자원공사의 책임을 탐진댐 건설 과정에서 단단히 묻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가 수질 악화를 내세워 댐 상류 주민의 재산권이나 영농권은 제약하면서도 정작 폐기물이나 마찬가지인 아스팔트 도로는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수자원공사도 예전과 달리 탐진댐 수몰 지역의 내부 잔재물 처리에 적극 나서고 있기는 하다. 수자원공사는 현재 수몰 지역의 건물 1천8백여 동과 축사 68동, 화장실 6백97개소를 제거하는 비용으로 100억원 가량을 책정해놓고 있다. 아울러 댐 건설 공사 때 발생하는 하천의 폐아스팔트나 아스콘도 잘게 부수어 도로 성토재로 재활용하는 방법도 적극 검토 중이다. 그러나 수몰 지역의 아스팔트 도로 제거만큼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탐진댐 아스팔트 제거 주장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주민의 정서적 불쾌감에서 비롯한 민원 사항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자원공사로서는 탐진댐의 아스팔트를 제거할 경우 다른 댐의 수몰 지역 아스팔트 도로도 제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예산 확보가 문제이다. 탐진댐 건설로 수몰될 아스팔트 도로는 길이 14.7㎞로 제거 비용만 30여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다. 현재 탐진댐을 비롯해 영월댐·밀양댐·횡성댐을 건설하고 있는 수자원공사로서는 선례를 남길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러나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는 수자원공사가 진정으로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을 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성기 교수(조선대·환경공학과)는 “수자원공사가 수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주민의 요구 사항을 수용해 맑은 물 공급을 위한 모범을 보인다는 전향적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1997년에 착공해 2003년에 완공될 탐진댐은 수자원공사가 6천3백10억원을 투자해 목포·장흥·강진 등 전남 서남부 지역 9개 시·군에 식수와 생활 용수를 공급하게 될 다목적 댐이다. 아스팔트 도로가 그대로 드러난 저수지의 물은 먹지 못하겠다는 수요자의 주장에 공급자인 수자원공사가 앞으로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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