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도 '설계 변경' 백화점 선다
  • 광주·나권일 주재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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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 공공 목적 부지에 건설해 장기 임대…시민단체 의혹 제기
빛고을 광주에 ‘신세계’가 열렸다. 지난 7월25일 광주신세계백화점(대표이사 권국주)이 ‘빛고을 쇼핑 명가’를 내세우며 개점한 것이다. (주)금호고속 운수지점(대표이사 오세욱)은 최근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 지상 8층 지하 3층 연건평 8천평 규모의 매머드급 백화점을 완공해 지방 진출을 노리던 신세계백화점에 20년 장기 임대 조건으로 운영권을 넘겼다.

‘삼성의 호남 교두보’라는 지역민의 달갑지 않은 평을 피하기 위해 신세계백화점은 ‘광주 신세계’라는 현지법인으로 출발했다. 아울러 호남 지역의 문화 공간 확충, 낙후한 유통산업의 현대화, 품질 좋은 상품 제공과 한 단계 높은 고객 서비스를 내세웠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광주비엔날레 협찬금으로도 3억원을 출연했다.

광주 지역 백화점 업계의 시장 규모는 3천억원대(94년 기준)로 추산되는데, 도심 상권에 위치한 가든·화니 백화점이 지난해까지 이 시장을 둘러싸고 서로 쟁탈전을 벌여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금광기업이 송원백화점을 개장해 느슨한 백화점 경쟁에 불을 붙였고, 지방 진출을 노리던 신세계백화점이 가세했다.

신세계백화점 개점 이면에는 신세계백화점 건물 소유주이자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운영권자인 금호그룹의 두 얼굴이 숨어 있다. 금호는 88년 3만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터미널 부지를 도시계획 구역으로 지정 받아 종합 터미널을 신축했다. 그러나 터미널 운영상의 적자가 우려되자 백화점을 짓기로 하고 당초 주차장과 편의시설 용도이던 부지를 백화점 용도로 변경한 것이다.

지하 보도 건설 각서는 ‘공염불’

이 과정에서 백화점 건물은 두차례 설계 변경 되었다. 애초 시장 개설 허가(90년 4월)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였던 건물이 91년에는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그리고 93년에는 지하 3층 지상 8층으로 늘어났다. YMCA 등 시민단체들이 이같은 설계 변경 승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광주 시청측은 지하 3층 지상 8층의 규모는 최초의 설계변경 신청서에 이미 승인되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두차례에 걸친 설계 변경 과정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은 불안하다. 서울 삼풍백화점의 설계 변경 과정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백화점 개설에 따른 교통 영향 평가가 사업주인 금호의 자회사인 금호엔지니어링에 의해 실시되었다는 점도 이 영향 평가의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청은 평가 기관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백화점 앞 횡단보도 아래로 지하 보도를 뚫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애초에 금호는 백화점 승인을 받을 때 백화점 앞에 지하 보도를 건설하겠다는 각서를 시청에 제출했고 이 각서 내용은 승인의 조건이 되었었다. 그러나 백화점이 영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지하 보도는 착공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서 광주신세계백화점은 설계 변경 과정, 교통 영향 평가 과정, 그리고 지하 보도 미개설 등 시민들의 의혹의 눈길을 받아가면서도 합법적인 영업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광주시 남구의회 안원균 의원(당시 서구의회 의원)은 “교통 영향 평가를 담당한 회사가 최초 교통 영향 평가 때에는 지하 차도 설치를 건의하고도 2차 평가 때에는 지하 차도를 폐쇄해야 한다며 스스로 말을 뒤집었다”고 교통 영향 평가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신세계백화점은 금호그룹이라는 토착 대기업의 보호막에 의지해 광주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의 개점 과정은 적잖은 문제를 남겼다. 시민단체들이 이 백화점을 못마땅히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유지를 수용해서 조성한 터미널 부지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을 허가한다는 행정 행위가 아무리 적법성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시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토착기업인 금호가 외지 자본을 향토에 끌어들인다는 것에 대한 심정적 저항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광주신세계백화점은 화려한 소비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개설 과정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저항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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