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조사단을 조사하라"
  • 김은남 기자(ken@e-sisa.co.kr) ()
  • 승인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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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내용은 엉터리" 내부 전문가 반발··· 부실한 데이터 · 논리로 경제성 부풀려
자존심 높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것이 전문가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존심을 팽개치고 '나의 전문성을 검증해 달라'고 나섰다면? 지금 '새만금 환경영향 공동조사단'(새만금조사단)이 꼭 이런 형국에 휘말렸다.

새만금조사단은 해당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되었다(정부 추천 10명, 민간단체 추천 10명, 정부 관계자 10명). 이들은 '새만금 사업이 환경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조사 연구 평가해 필요한 대책을 정부에 건의'하려고 지난해 5월 출범했다.

이들이 평가를 수행하는 1년동안 새만금 사업은 중단되었다. 이미 1조3백억원을 들여 10년 가까이 진행해 온 대형 국책 공사를 전면 중단한 채 평가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 전무후무한 일이었던 만큼 새만금조사단이 발표할 보고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농지 아닌 도시용지 가격으로 가치 평가

그런데 올해 4월 말이면 공개되었어야 할 이 보고서는 석 달을 넘긴 7월 말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정부가 추천한 전문가와 민간단체가 추천한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 보고서를 만들기로 한 이상 조사단장(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은 "문구하나, 토씨 하나를 놓고도 조사단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이번 조사 결과를 다시 전문가 집단에 맡겨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조사단 내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지적은 경제성 분과 조사반에서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새만금조사단은 크게 세 분과로 나뉜다. 환경영향 ·경제성 ·수질보전 조사 분과가 그것이다. 이 중 경제성 분과는 말그대로 새만금 사업에 경제성이 있는지를 따지는 분과이다. 새만금 사업은 이미 1989년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끝났다. 그런데 당시는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 악영향과 개펄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 보지 않았으므로 이를 다시 돈으로 환산해 과연 개펄 파괴를 감수하고도 간척을 계속 벌여야 하리만큼 새만금 사업에 경제성이 있는지를 다시 가리자는 것이 경제성 분과를 설치한 취지였다.

이 분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쟁에 휩싸였다. 정부가 추천한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라도 이 사업의 비용/편익 비율이 1.25이무로, 이 비율로 계산했을 때 순수익이 2천9백82억원에 이르는 만큼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은 충분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이는 사업에 드는 비용에 비해 편익이 1.25배라는 뜻이다. 이론적으로 비용/편익 비율이 1을 넘어야 해당 사업은 비로소 경제성을 인정받는다). 이에 반해 민간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들은 이같은 수치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고 공격했다.
첫 번째 쟁점은 농지 가격이 아닌 도시용지 가격을 기준으로 새만금의 국토 확장 효과를 평가한 것이다. 정부가 추천한 조사 책임자는 일반 농지 가격(평당 6만3천7백50원)이 아니라,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했을 경우의 지대 차액(17만7천4백 원)을 토대로 새만금 가치를 계산했다.

이에 대해 민간 추천 전문가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새만금을 논으로 이용한다고 전제되어 있는 만큼 논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의 기회 비용을 적용해 가치를 계산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해마다 농지 약 3만ha가 전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장기간 사업을 실시해 2만ha(새만금 농지 면적) 정도의 농지를 창출하는 것이 무슨 경제성이 있느냐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 추천 전문가는, 새만금 지역에서 창출되는 토지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추정해야 하는 만큼 비록 농지를 조성할 목적으로 국토를 확장한다고 하지만 이 지역 가치는 반드시 규제에 의해 결정된(저평가된) 농지 가격으로 산정하기보다 자유 경쟁 시장의 토지 가격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는 식량 안보 가치를 주요 편익으로 분석한 조사 내용과도 상충한다는 것이 민간 추천 전문가의 지적이다. 식량 안보란 새만금을 반드시 농지로 사용했을 때만 발생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식량 안보 가치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했다. 지난 3월 이 문제를 놓고 환경 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유영성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경제학)는, 국제 가격보다 3~4배 높은 국내 쌀값에 이미 안보 가치를 따로 추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식량 안보 가치를 설정하는 것까지는 받아들인다 해도 이를 계산하는 방식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 경제성 분과에 참여한 한 교수의 지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 추천 전문가는 일종의 설문조사 기법인 가상시장평가법(CVM)으로 식량 안보 가치를 추정했다. 곧 식량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가정한 다음 설문 응답자에게 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만큼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묻는 것이 이 조사 방식이다(전국의 100가구를 상대로 한 이번 조사 결과 추가로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6.2%였고, 이들이 지불하겠다는 추가액은 연평균 5만2천여 원이었다.)

그렇지만 안보 가치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식량 안보를 위협할 만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각각의 확률에 따라 피해 정도가 얼마나 될 것인지 객관적으로 계량화한 정보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경제학자다운 접근'이 아니냐고 유영성 교수는 반문했다. 더욱이 이번 설문 조사는 문항 설계부터 식량 안보 가치가 터무니없이 크게 나오게끔 조작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설문 조사 문항은 이렇게 시작된다. '문제 1. 우리의 전체 식량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30%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식량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쌀 시장 개방에 따른 영향으로 인하여 국내 쌀 자급 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군산열도 개발로 인한 지가 상승을 경제성에 포함한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민간 추천 전문가는 새만금호가 만들어지면서 주변에 정미소 ·술집 ·노래방 ·목욕탕 따위가 들어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광객이 증가하는 데 따른 간접적인 편익이라며, '직접 편익' 아닌 '파생적 편익'을 경제성 분석에 포함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추천 전문가는 지가 상승이 반드시 관광객 증가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됨으로써 군산 지역과 고군산열도가 연결되어 접근성이 향상되고 농수산물 수송 비용이 감축되는 데 따른 것인 만큼 이를 경제성 분석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수질 개선 비용 제대로 반영 안돼

이번 경제성 분석에는 허무맹랑한 측면마저 있다는 것이 유영성 교수의 지적이다. 일례로 한 조사 단원은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면 차량 운행 거리와 시간이 단축됨으로써 당장에는 연간 2백22억원, 새만금 방조제 수명이 다하는 2103년까지는 총 3조2천억원이 절약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그렇지만 인간의 교통 수단이 인력거에서 자동차 ·비행기로 불과 반세기 동안 눈부시게 발전했음을 상기할 때 현재의 교통 수단과 교통량으로 100년 후를 예측하기는 무모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경제성 분석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수질 오염 개선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자면 민 ·관 조사단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시화호가 있었다. 곧 시화호 오염이라는 초유의 환경 재앙 앞에서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가 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여론에 먹혀들었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카드가 바로 공동조사단 결성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부분이 경제성 검토에서 빠진 것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 조사단 구성 ·운영의 파행에서 말미암은 실책이었다. 수질 오염의 성격 ·범위 따위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돈이 들지 경제성을 분석한다는 것은 애당초 이치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더욱이 3개 분과 가운데 하나인 수질보전 분과는 보고서 마무리 시점까지도 합의된 자료를 경제성 분과에 제공하지 못했다.
시민단체 "부실 보고서 믿을 수 없다"

수질보전 분과에서는 새만금호가 어떤 방법으로도 농업 용수 기준(0.1ppm 4급수)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의견과 몇 가지 전제를 충족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 전제란 전주권 그린벨트를 녹지 지역으로 보전하고(이는 그린벨트 1단계 해제 지역이었던 전주권이 다시 규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량제를 도입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최소화하며 축산 분뇨를 94.5% 이상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추천 전문가들은 현행 기술로 가축 분뇨를 94~95% 삭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민간 추천 전문가들은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수질 개선에 대한 중앙 정부와 전라북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 분과는 결국 환경부가 수질 개선 대책 시안을 내놓으며 이 지역에 환경 기초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책정한 비용 9천7백억원을 대입해 수질 개선 비용을 계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만경강 ·동진강 등 주변 하천이 수질 개선 비용이 뒤섞여 있어 새만금에 해당하는 순수한 비용을 산출하기에는 허점이 많았다는 것이 한 조사단원이 고백이다.

현재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는 '부실한 데이터와 불확실한 모델링에 기반을 둔 새만금조사단의 연구 결과는 믿을 수가 없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던 애초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새만금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다시 '정치적 결단'의 몫으로 넘어가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지난 1년간 조사 작업에 들인 혈세 7억3천만원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조사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진행될 국책 사업을 평가 ·검토하는 기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라도 민 ·관 조사단의 연구 결과를 공개리에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조사단에 참여했던 이정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장 ·환경경제학)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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