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자의 빗나간 불장난'' 연쇄 방화의 심리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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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없고, 범행 현장에 꼭 나타나
불에 관한 한국 영화 두 편이 상영 중이다. <리베라 메>와 <싸이렌>은 모두 불이라는 주제를 놓고 상반된 처지에 있는 소방관과 방화범의 갈등을 그렸다. 불을 통해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구해주는 <리베라 메>의 방화범, 불을 이용해 아내와 딸의 복수를 꾀하는 <싸이렌>의 방화범. 불로써 인간을 단죄하는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희열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은 자못 섬뜩하다.

방화는 특히 사회가 불안한 시기에 많이 일어난다. IMF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유난히 방화가 많았다. 이 해에 발생한 방화 사건은 3천56건으로 그 전 해에 비해 15%나 늘어났다. 특히 실업자나 노숙자에 의한 방화가 많았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매정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제2의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올 겨울은 안전한가?

곤히 잠든 도시 여기저기에 ‘도깨비 불’을 피우는 현실 속의 연쇄방화범에 의한 피해는 심각하다. 사회가 산업화·도시화하면서 급격히 늘고 있는 도심의 연쇄방화범들, 그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왜 불을 지르는지, 그 심리를 먼저 알아보자.

방화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살인이나 강도를 저지른 후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불을 지르는 것은 고의적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원한이나 복수심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에서 저지르는 방화는 우발적인 성격이 짙다. 이외에도 단지 유희를 위해서 불을 지르기도 한다.
사회 불안하면 방화 사건 증가

흔히 저능과 낮은 사회적 지위, 알코올 중독이 방화범의 3대 특징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방화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방화를 일종의 ‘충동 조절 장애’로 본다. 어렸을 적에 불장난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불이 끼칠 수 있는 해악과 그로 인해 자기가 볼 피해를 알면서도 불을 지르는 것은 충동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아 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그런 경향이 심하다고 본다.

방화 범죄가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분석실은 올해 초 경기도 부천시 주택가와 교회에 100여 차례 넘게 불을 질렀다가 붙잡힌 최 아무개 목사(39)에 대해 정밀한 정신 감정을 실시했다. 최목사의 성격은 전형적인 연쇄방화범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최목사는 군 특수부대 출신인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노출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그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 생활을 거쳐 개척 교회를 열었지만,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그는 6개월 동안 신자를 단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더미를 불태우고 난 후 묘한 희열에 빠져들었다. 이후 방화를 계속하던 그는 점차 대담해져 다른 교회에 불을 지르는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범죄분석실은 최목사가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높은 도덕 수준을 강요받아 자발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충동을 자제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방화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해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 현실감이 별로 없는 사람이 연쇄방화범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최목사의 경우 부모에게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방화를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방화범은 강력범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 연쇄방화범 중에는 최목사처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유난히 많다. 방화는 사람이 아닌 사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이 공격성을 드러내기에 더 쉬운 방법이다. 방화가 대부분 단독 범행이라는 것에서도 방화범들이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범죄분석실은 허리를 다쳐 부부간 성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최목사가 성적 대리물로 불에 집착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일 박사도 “성적 장애를 겪는 사람은 방화를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방화가 일종의 정신적인 자위 행위가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방화범은 강력범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 연쇄방화범 중에는 최목사처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유난히 많다. 방화는 사람이 아닌 사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이 공격성을 드러내기에 더 쉬운 방법이다. 방화가 대부분 단독 범행이라는 것에서도 방화범들이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범죄분석실은 허리를 다쳐 부부간 성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최목사가 성적 대리물로 불에 집착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일 박사도 “성적 장애를 겪는 사람은 방화를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방화가 일종의 정신적인 자위 행위가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야뇨증도 방화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임상심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야뇨증에 걸린 청소년이 병적으로 방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와 있다. 인과 관계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불장난하면 이불에 오줌 싼다’는 말이 단순한 엄포만은 아닌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여성 중에서 월경 기간에 도벽처럼 방화벽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다른 범죄와 달리 방화는 범행 후에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연속으로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쇄방화범은 몰래 불을 지르며 긴장감을 맛보고, 불이 타기 시작하면 타는 불을 지켜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소방차가 출동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마치 자신이 절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방화를 통한 일련의 스릴감이 계속 불을 지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방화한 동기가 어떻든 한번 불을 지르면 마치 불이 불을 부르는 것처럼 계속 불을 지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불이 죄의식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일까. 불의 마력에 이끌린 방화범들은 방화광(pyromania)이 되어 연쇄 방화를 저지르게 된다.
자기만의 독특한 방화 수법

최목사가 쓰레기더미에 주로 불을 지른 것처럼 연쇄방화범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화 대상과 방식을 가지고 있다. “산이면 산, 차량이면 차량, 가옥이면 가옥…. 방화범마다 불을 지르는 대상과 불을 붙이는 방법이 다르다”라는 것이 서울경찰청 방화 전문 수사관 오세창씨의 설명이다.

올해 초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일대 주택가에서는 열린 문틈으로 종이에 불을 붙여 던지거나 커튼에 불을 붙이는 수법으로 연쇄 방화가 이어졌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녹번동 일대 다가구 주택 지대에서는 방화범이 연쇄적으로 유모차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1994년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일대에서 방화 행각을 벌인 연쇄방화범은 가정용 LPG 통의 호스를 뽑아 불을 붙이는 수법만을 썼다.

1998년 1월∼1999년 6월 서울 강동구 일대(30여대)와 경기도 성남시 일대(20여대)에서 차량을 연쇄 방화한 천 아무개씨(27)는 운전석 문을 열고 핸들 밑의 전기 배선에 터보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차량에 불을 지르는 방법은 이밖에도 유리를 깨고 시트에 불씨를 떨어뜨리거나 차량 밑에 방화 보조물을 태워 불이 옮겨 붙게 하는 방법도 있다.

충남 서산의 가야산은 몇 해째 연쇄 방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1992년부터 산불이 100 건도 넘게 발생해 피해 면적만도 30ha에 이른다. 불을 지르고 난 후 전화로 면사무소나 주민에게 알리기도 하고 심지어 초인종을 누르고 “산불이 났으니 소방서에 알리라”고 말하고 도망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하는 이 방화범은 아직까지 검거되지 않았다.

연쇄 방화는 모방 범죄도 쉽게 부른다. 연쇄 방화 사건이 보도되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방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1990년에는 연쇄 방화를 모방한 범죄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 2백 건이 넘는 방화가 발생했다. 지난해 설 연휴 때 있었던 연쇄 방화도 모방 범죄로 인해 더 확장된 경우이다. 지난해 2월6~17일 서울 청계천 일대와 은평구 응암동, 서대문구 충정로 일대에서 42 건의 연쇄 방화 사건이 일어난 뒤 전주시에서도 모방 범죄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때 군 병력 3천여 명, 경찰관 6천3백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방화범 검거에 나섰다. 그 결과 초등학교를 중퇴한 10대 소년 2명, 걸인, 노숙자, 정신이상자, 회사원 등 방화범 6명을 붙잡았다. 그러나 연쇄방화범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물증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사망 좁혀져도 충동 억제 못해 꼬리 밟혀

보통 연쇄살인범의 경우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환상에 계속 빠져 있기 위해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신체 일부나 소지품을 모아 두므로 나중에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다. 하지만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연쇄방화범은 현장에서 잡아야 한다.

연쇄방화범 검거에는 그들의 범행 특성이 이용된다. 연쇄방화범은 보통 불을 지르고 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남아서 불구경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이용해 화재가 날 때마다 현장을 촬영해 동일 인물이 있는지를 찾으면 방화 용의자를 파악할 수 있다. 방화가 자주 일어나는 곳에 감시조·잠복조·수색조를 배치해 저인망 식으로 훑어서 붙잡기도 한다.

그러나 연쇄방화범이 잡히게 되는 진짜 이유는 꼬리가 길어서이다. 수사망이 좁혀와도 방화에 대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범행을 계속하다 결국 꼬리를 밟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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