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지시도 무시, 광명시 탈법 행정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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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유수지 만여 평 지역 유지에 불법 임대 ‘파문’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서울 독산동과 마주보고 있는 광명시 하안동에는 움푹 팬 유수지 약 만 평이 자리하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인 이 유수지 둘레에는 너비 2∼3m쯤 되는 공간에 나무들이 빙 둘러 심어져 있다. 도시계획법상 완충 녹지라 불리는 지대로서 나무 사이에는 광명시장 명의로 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경고 간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 ‘이 지역은 녹지 훼손, 농작물 경작, 쓰레기 투기 행위 등을 일체 할 수 없음. 위반시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유수지 안쪽은 골프장 시설과 자동차 운전학원 시설로 꽉 메워져 있다. 더구나 이 시설물들은 유수지와 주변 아파트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해야 할 녹지 한켠까지 차지해 버렸다. 누가 보아도 버젓이 녹지를 훼손한 채 들어선 불법 건물이지만 골프채를 들고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면면과 하늘 높이 치솟은 골프장 시설 앞에서는 녹지 훼손 방지용 경고문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이곳 업자들이 이처럼 버젓이 불법 배짱 영업을 강행하고 있는데도 광명시가 이를 눈감아주고 있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이들 불법 시설물 속에는 광명시에서 영향력을 자랑하는 특정 토착 세력의 이권과 이를 둘러싼 특혜 시비라는 악순환 고리가 숨어 있다. 그 악순환의 시작은 9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골프장·운전학원 주인은 여당 지구당 간부

광명시가 문제의 땅인 하안동 24번지 일대 유수지 만여 평을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인수한 때는 90년 3월6일이었다. 이튿날 광명시(당시 전창선 시장)는 곧바로 시청 게시판에 유수지 대부 입찰공고를 냈다. 유수지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면서 민간에 임대해 세외 수입 증대를 꾀한다는 명분이었다. 그 결과 5천여 평에 해당하는 골프연습장은 이 지역 유지 김성년씨(현재 신한국당 광명 갑 지구당 운영위원)가 응찰했고, 자동차 운전교습장은 채수량씨(신한국당 광명 갑 지구당 운영위원)가 수의 계약으로 따냈다. 이어서 두 시설물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줬는데 사단은 그해 가을에 벌어졌다. 감사원이 현지 감사를 벌여 두 시설물이 건축법·도시공원법 등을 위반했다며 의법 조처를 지시한 것이다. 게다가 허가 당시 광명시 하수과장이 두 시설물 업자로부터 2천2백만원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탄로나 형사 고발 당함으로써 구속 후 파면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명시는 두 업자에게 공유재산 사용허가를 다시 연장해 주었다. 그러자 감사원은 이듬해인 91년 가을 재감사를 통해 ‘위법 시설물인 자동차학원과 골프연습장에 대해 위법 사항이 치유될 때까지 사용 중지 조처 및 이행 여부 철저 확인’이라는 처분 지시를 다시 내렸다. 이때 문제의 핵심은 두 시설물이 도시공원법상 완충 녹지 지역 1,872㎡를 침범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광명시는 두 시설물에 대해 사용 중지 조처를 취하라는 감사원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이 시설들을 합법화해 주기 위해 시 조례를 개정하는가 하면 상급 기관인 경기도에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집요하게 신청했다. 이때부터 광명시는 지역내 영향력 있는 토착 세력에 특혜를 주기 위해 감사원 지시도 무시하고 무리수를 쓴다는 시민들의 비판 여론에 부닥쳤다.

골프연습장의 경우 대표로 있는 김성년씨말고도 당시 여당 지구당 사무국장이던 김광기씨(현 광명시의회 의장)를 비롯해 지역내 유지급 3명이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더구나 이 시설물들은 지금까지 불법 영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광명시는 92년 이후 4년 가까이 이들로부터 공유시설 사용료조차 한푼도 받지 않고 수수방관해 왔다. 당초 시설물 허가 이유로 내세웠던 세외 수입 증대 명분마저 무색해진 것이다.

또 광명시는 시설 폐쇄와 같은 강력한 행정 조처를 취하라는 감사원의 지시를 이행하는 대신 이 시설들을 양성화해주기 위한 노력을 두 차례에 걸쳐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당했다. 첫번째 시도는 94년 11월의 일로, 광명시가 경기도 도시과에 도시계획변경 신청을 내서 문제의 골프장과 자동차학원이 불법으로 차지한 완충 녹지(1,872㎡)를 해제해 주도록 요청했으나 경기도는 이를 불허했다.

그러자 이듬해 광명시는 더 대담한 요구를 내놓았다. 95년 11월 경기도에 문제의 유수지 주변 완충 녹지 전부를 폐지해 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95년 12월5일 ‘완충 녹지란 유수지 인근 주택가와의 완충 역할이 목적인데 대책 없는 완충 녹지 전면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를 반려했다.

결국 감사원의 영업 정지 조처 지시를 어긴 채 특혜 시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성화를 꾀하다 좌절한 광명시의 서툰 행정은 지역의 특정 유지들에게 4년간 불법 배짱 영업의 길만 열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광명시가 이들 업자로부터 받지 않고 있는 사용료만도 13억원에 달한다.

 
특별 감사 결과 “위법 시설물 철거하라”

이처럼 사태가 심각한데도 광명시가 감사원 지시 사항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계속 무리수를 두자 경기도는 작년 12월 말 특별 감사를 실시한 뒤 광명시에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공유재산 무단 사용에 따른 변상금(90년도 잠정가격 기준 약 10억2천8백만원)을 조속히 추징토록 하고, 도시계획법상 녹지내 위법 시설물에 대해서는 조속 치유 방안을 적극 강구하되, 치유가 불가능할 때는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영업장 폐쇄 강제 집행과 건축물 철거 방안을 검토하라.’

광명시는 경기도의 지시에 따라 지난 1월 4년간 밀린 유수지 사용료 및 변상금 13억원을 두 시설물 업자들에게 납부 고지했다. 그러나 골프연습장 운영자측은 아직까지 이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 김성년 광명골프클럽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가 절차에 의해 공고해 내가 입찰에 응했고, 건물 짓는 과정에서 시가 검토를 잘못해 허가를 내준 것이다. 지금까지 30억원 넘게 투자했는데 만약 시가 철거한다면 엄청난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밀린 사용료는 원칙적으로 내야 하나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따져도 너무 많아서 부당하다고 판단해 아직 납부하지 않고 있다.”

불법 영업이 계속되고 있는 광명골프클럽은 김성년 대표 외에도 3명의 지역내 유지가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혜 시비와 관련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은 김광기 광명시의회 의장이다. 골프연습장 허가 당시에 그는 민자당 광명 갑 지구당 사무국장이었다. 그러나 현직 시의회 의장이라는 공인으로서 여전히 불법 시설 운영에서 나오는 수익금에 지분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명예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의장은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처음 투자한 지분에 대한 이자를 받는 식이니까 골프장이 적자건 흑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운영에도 직접 간여하지 않고 있다. 시가 애초 허가해줬기 때문에 철거하면 몇십억원을 배상해줘야 하는데 시 예산으로는 어렵다. 법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광명시 하안유수지 만평을 둘러싼 특혜 시비와 불법 영업 방치는 해묵은 비리 같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처럼 시의 명예가 계속 실추하는 상황에서 광명시는 최근 이곳 불법 시설물들을 합법화해 주기 위한 세번째 도전의 길을 택했다. 지난 5월 광명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하안유수지의 골프연습장과 자동차학원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완충 녹지를 이번에는 ‘유수지’로 지목 변경키로 결정하고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올렸다. 그러나 시설 녹지를 유수지로 지목 변경한다는 것은 홍수 방지라는 유수지 본래 기능 확충에 문제가 있어 절실히 추가 부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부터 나와야 타당성을 얻는다. 현재 유수지로 지목 변경하겠다는 골프연습장 건물은 홍수가 나면 오히려 유수지로서는 장애물이나 다름없는 시설이다. 상급 기관인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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