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말도 안되는 빨갱이 타령인가
  • 이덕우 (법무법인 창조 변호사) ()
  • 승인 2004.07.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부 언론, 사실 확인도 없이 의문사위 조사관 전력 ‘트집’
박정희, 그는 남로당 군사부 소속의 조직책이었다. 그는 여순사건으로 남로당 군사부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1949년 2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 파면, 그리고 급료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수구 언론사의 보도대로라면 박정희야말로 ‘간첩 중의 간첩’이다.

하지만 그를 ‘빨갱이’라 하지 않는다. ‘간첩’ 박정희는 자랑스런 육사인으로 거듭났다. 전력을 문제 삼지 않은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회장 신대진, 육사 15기)는 지난 5월 3일 ‘자랑스러운 육사인’의 최초 수상자 중 한사람으로 박정희(朴正熙, 2기)를 선정했다.

그런데 간첩 출신이 조사관이라며 수구 신문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상대로 푸닥거리를 한다. 사면 복권되고, 민주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력을 문제 삼는다. 그 뒤에는 3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막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공안기관 전력자들이 음지에서 행한 치부가 양지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구 신문사들은 ‘간첩’ ‘간첩죄’라는 표현을 교묘하게 사용한다. 간첩(間諜)은 사전적으로 ‘적대(敵對) 관계에 있는 상대편의 내부에 침투하여 그 기밀을 알아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간첩 출신’이라는 말은 ‘북한 출신’이라는 말과 동일한 뉘앙스를 갖게 만든다. 빨갱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지금 시비를 거는 의문사위원회의 조사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지 간첩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3기 의문사위 막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수구 신문이 문제 삼는 간첩 전력이란, 1993년 공안기관이 발표한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변론한 나는 안기부가 프락치를 이용해 만든 조작 사건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1년 후인 1994년 10월31일 안기부 프락치 백흥룡(배인오)이 독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심선언을 했다. 자신이 남매간첩 사건을 만든 프락치였다고.

이런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과거 전력만으로 트집을 잡는 것은 게으르고 무능한 것이다. 아니면 지독히 나쁜 짓이다. 무능하면 착하든가, 유능하면 나쁘지 말든가?

의문사위원회 조사관들은 법률에 따라 채용된 사람들이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다 해도 사면 복권되었다. 그리고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경찰의 신원조회도 거친 사람들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경찰, 검찰, 심지어 국방부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함께 근무한다. 이들 민간 출신 조사관들은 의문사 사건의 정치적 배경을 파악하여 제도적 권고를 한다. 민주화운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경험은 그 어떤 수사기법보다 뛰어나다. 의문사 조사관으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수구 신문은 평소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의 법치주의는 멋대로 법치주의다. 공무원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채용된 이들을 단순히 과거 전력만을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이 강조하는 법치주의에도 어긋난다.

만일 박정희가 의문사위원회 조사관이라면? 수구 신문들은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