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기자의 1박2일 순경 체험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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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검복은 총알 못 막고 방탄복은 칼 못 막고
Blue. 이 단어는 푸르다 외에 우울한, 음란한, 썩은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전에서 블루의 끝자락을 따라가 보면 이 단어가 경찰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 개봉된 영화 <경찰서를 털어라>의 원제는 ‘Blue Streak’였다. ‘the boys in blue’. 직역하면 우울한 녀석들쯤 되겠지만 사실은 경찰관을 뜻한다.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된 후 ‘살인범을 이제야 잡았다’ ‘살인범만 싸고 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관할 구청은 유영철을 수사하느라 파헤친 산에 나무를 심어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회식비를 갹출해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절도 용의자 이학만에게 경찰관 2명이 살해되자 ‘형사 2명이 도둑도 하나 못 잡았다’, 이학만을 잡자 ‘경찰 미숙으로 인질 다칠 뻔했다’는 질타가 꼬리를 물었다.

8월1일에는 외국인이 경찰 2명을 폭행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애완견이 택시에 치였다고 신고했는데 영어를 잘못 알아들은 경찰이 택시를 불러주자, 외국인은 경찰관에게 무전기와 주먹을 날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경찰은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8월 5일부터 6일까지 중부경찰서 충무지구대 순경으로 근무하면서 경찰의 하루를 그려보았다.

권총 차고 10분 지나자 다리가 뻐근

8월5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충무지구대에 도착했다. 충무지구대는 저동·명동·퇴계로·을지3가 파출소 네 곳이 통합된 곳으로 지구대원 70명이 3교대로 운영되고 있다. 경찰서가 다 그렇지만 충무지구대의 환경은 특히 열악했다. 충무지구대 화장실에는 좌변기와 소변기가 각각 1개뿐이어서 교대 시간에는 서너명이 줄을 서야 했다. 여경 손정화 경사가 사용할 화장실도 탈의실도 없다. 낮인데도 모기가 날아다녔다. 역시 경찰서는 오지 말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첫 느낌은 ‘옷이 무겁다’였다. 한 경찰은 “경찰복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제복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총이 주는 무게감 또한 대단했다. 총을 차고 10분이 지나자 오른쪽 다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주의 사항을 듣고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도중에 기자를 노려보는 고참 경찰들이 많았다. 점심을 마치고 지구대에 돌아오자 김성구 충무지구대장은 전화를 받았다. 한 지구대원의 머리가 길고 단정치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4시45분 옷 벗은 치한이 여자 행인을 괴롭힌다는 신고를 받았다. 신고를 받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허리춤에 찬 총이 계속 다리에 걸렸다. 총과 삼단봉을 찬 허리띠를 잡고 뛰었지만 평상시처럼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휴대 장비는 너무 무거웠다. 총·삼단봉·수갑에 무전기까지 휴대하니 장비의 무게가 3.2kg에 달했다. 도망치는 흉악범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를 받은 지 채 2~3분이 안 되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용의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충무지구대에 돌아오자 칼을 막을 수 있는 방검복 25벌이 지급되고 있었다. 경찰관 피습 사건 이후 경찰은 방검복 지급을 앞당겼다. 사소한 부부 싸움에도 칼을 들고 싸우는 경우가 많아 파출소 업무에서 방검복은 필수라고 했다. 하지만 새로 지급된 방검복도 지나치게 무거웠다. 몸이 둔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더위에 방검복을 입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방검복은 총알을 막지 못하고 방탄복은 칼을 막지 못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경찰은 안전의 사각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5시30분 장교동에 있는 그리스 대사관으로 순찰을 나갔다. 관내에 위치한 대사관은 경찰이 챙겨야 할 중요한 장소. 9·11 테러 이후 2~3시간에 한 번씩 보안 상태를 점검한다. 하지만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관측에서는 좋아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보호받기보다는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6시가 조금 넘어 저녁을 먹었다. 숟가락을 들자마자 회의가 시작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끝내고 지구대로 다시 들어왔다. 회의는, 경찰관 살해 용의자 이학만을 검거하기 위해 7시부터 9시까지 실시되는 일제 단속에 관한 내용이었다.
단속을 나가려는데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공짜로 먹고 여직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노숙자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편의점은 지구대에서 겨우 2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헌이 경장과 함께 노숙자를 지구대로 연행해 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몰라.” “주민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없어.” “신분증 있습니까?” “밥 좀 주고 좋은 데로 보내줘.” 노숙자는 꼬박꼬박 반말을 했다. 이헌이 경장이 또다시 돈을 안 내고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고는 무료 급식 장소를 알려주어 보냈다. 단속을 나가야 했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충무지구대로 접수되는 업무의 40% 가량이 노숙자와 관련된 일이라고 한다.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폭행하는 등 사안이 심각할 경우 사법 처리를 한다. 그러나 무전취식 등 경미한 사안은 일손이 달리는 지구대 안에서 뾰족한 수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밤에도 더위는 물러갈 줄을 몰랐다. 후텁지근해서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흐르는 땀은 멈추지 않았다. PC방·비디오방·여관 등을 단속했다. 단속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한 후, 살해 용의자와 인상이 비슷하거나 의심이 가는 사람만을 검문했다. 검문받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왜 하필 나를 검문하느냐’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다.

단속을 마치고 지구대에 돌아왔더니 60대 후반 노인이 지구대를 누비고 있었다. 경찰과 일일이 악수하고 말을 걸었다. 술만 먹으면 지구대를 찾는 사람이라고 했다. “술을 먹었으니 순찰차로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계속해서 행패를 부렸다. 취재 중인 사진 기자의 카메라를 보고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졸랐다. 타일러서 돌려보냈지만 이 노인은 두 시간 동안 다섯 번이나 지구대를 찾았다.

 
9시45분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식당에는 커다란 냄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음료수도 찬거리도 없이 종이컵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룸살롱 사장이 경찰 간식을 대느라고 힘들었다는 소리를 하더라고 했더니, 10년 전에는 룸살롱에서 양주와 간식거리를 대는 곳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컵라면 간식도 못 먹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10시를 넘어서자 지구대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무전기는 쉴새없이 경찰을 불러댔다. 한꺼번에 6건의 신고가 몰렸다. 10시15분 을지로 지하상가 상점에 한 여성이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로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강간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출동했다. “증거야 제발 있어만 다오”라고 중얼거리던 김성구 충무지구대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지구대원들은 환자의 안전이 우선이라며 119 구급대원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구급 차량까지 환자를 이송하고는 중부경찰서 당직 반원들과 현장감식반이 올 때까지 현장을 꼼꼼하게 보존하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김성구 대장은 병원에서 환자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구대로 돌아오자 을지로3가 지하철역에서 싸움을 벌여 잡혀온 사람들이 연장전을 벌이고 있었다. 두 당사자는 진○○ 식당 종업원들로 이 식당 주방장과 삼각 관계였다. 첫 번째 내연녀가 두 번째 내연녀를 꾸짖다 머리채를 잡으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경찰서 안에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어도 욕설과 목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경범죄로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과태료 부과를 삼가고 있다며 그냥 돌려보냈다.

“이 나이 먹어서 지병 없는 경찰은 없다”

시계 바늘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모기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을지3가 치안센터에서 퇴직을 1년 앞두고 있는 한 경사를 만났다.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 나이 먹어서 지병 한두 가지 없는 경찰은 없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공무원 가족이라는 이 경사는 “25년 경력의 보건직 공무원 여동생과 군대 3년을 합해 36년 경력인 내 퇴직 연금이 같다. 경찰 직급이 너무 낮아 퇴직 이후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순경 초임은 일반직 공무원에 비해 약간 많지만 12년이 지나면 전세는 역전된다. 그리고는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35년을 근속할 경우, 일반 공무원에 비해 경찰 공무원은 한 달에 18만5천9백원, 약 11.2% 적은 봉급을 받는다. 교육 공무원과 비교하면 76만2천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는 고스란히 퇴직금과 연금 격차로 이어진다.

8월6일 1시50분 중소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취객의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일명 아리랑치기 신고가 접수되었다. 순찰차는 불과 30초 만에 현장에 도착해 골목길로 달아나던 러시아인 피의자를 검거했다. 지구대로 돌아와 조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피해자가 말썽이었다. 피해자 엄 아무개씨(44·은행원)가 집에 가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왜 빨리 안 끝내주나” “내 물건 찾았으니 이제 끝난 것 아닌가”라며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한동안 피해자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엄씨를 달랬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시계 바늘이 힘겹게 4시를 넘어갔다. 연신 울려대던 무전기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는 시간이 더디 흘렀다. 몸도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이 날 업무는 휴가철이어서 평소의 절반 정도라고 했다. 지구대의 여름밤은 그리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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