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풍' 잘 날 없는 부산 아시안게임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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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조직위원장 사퇴설 등 '인사 잡음' 계속…
대회 준비 지지부진, '동네 잔치' 될 수도


지난 3월3일 오후 6시(현지 시각 오전 11시)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있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본부에서는 한국 체육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오는 7월 치를 제8대 IOC위원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김회장의 IOC위원장 출마가 국제 무대보다 부산을 먼저 달구고 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회장의 사퇴설이 퍼지고 후임 인사가 거명되면서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조직위원회의 사실상 사령탑 격인 한기복 사무총장(64)마저 이미 외부와의 알력 끝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아시안게임을 불과 1년6개월 앞두고 조직위원회가 갖가지 외풍에 흔들려, 이대로 가다가는 개막하기 전에 파장을 맞을 것이라는 위기론도 나오고 있다.


김위원장 사퇴설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4월2일 있었던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에서였다. 부산아시안게임지원특위 위원장인 김진재 부총재는 정부·여당이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으로 교체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폭넓은 이해와 전문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요구하는 조직위원장을 낙선 의원이 맡는다면 이는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날 부산 출신 의원들은 따로 오찬을 나누며 성공적인 경기 개최를 위해 조직위원회 인사에서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일부 의원이 '아시안게임 준비가 정치 흥정으로 흐르면 대선에서 그만큼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해 이들 역시 사태를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정길 전 장관측은 "당사자는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마치 감투만 노리는 것처럼 흠집 내기를 시도한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쯤에서 끝날 듯하던 시비는, 다음날 민주당의 반응이 나오면서 다시 커졌다. 장전형 부대변인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인신 공격과 궤변을 일삼으려 한다"라고 한 말이 불씨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추진은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김진재 위원장은 4월4일 다시 "개최지 시장이나 체육계 인사 외에 위원장을 맡은 예를 본 적이 없다"라며 정치권 인사를 위원장에 선임하는 것을 경계했다.


위원장 자리 놓고 여야 공방, 사무총장은 '사퇴'


민주당은 이번에는 전용학 대변인이 나서 '서울올림픽의 박세직 위원장을 비롯해 월드컵 조직위원장에 정치인이 참여한 데서 보듯 정치인도 능력에 따라 기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치인이 위원장을 맡아서는 안된다는 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후임 인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김정길씨 선임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한 발언이었다. 김운용 위원장은 자신이 출국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불거진 사퇴설을 모나코에서 전해 듣고 강한 불쾌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은 "굳이 현시점에서 사퇴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로 김위원장의 심정을 대변했다.


김위원장 사퇴설은, IOC위원장 선거가 본격화하면 아시안게임 준비에 전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 내부에서는 정치권의 이번 공방을 최근 벌어진 사무총장 퇴진 사태와 연결지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4월 임명되어 조직위를 이끌어 온 한기복 사무총장은 현재 한 달 가까이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는 3월16일 한나라당 아시안게임지원특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ㄷ의원으로부터 "업무를 그렇게 하려면 총장 자리를 사퇴하라"는 등 모욕적인 질타를 받고 다음날 신병 치료를 이유로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24일 퇴원해 서울에 머무르던 한총장은 30일 사퇴서를 제출한 후 김위원장의 만류를 뿌리친 채 출근하지 않고 있다.


조직위의 한 관계자는 "ㄷ의원과의 설전이 입원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은 반발에서가 아니라 흥분하다 보니 평소 갖고 있던 신경성 고혈압과 천식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원한 사이에 처음에는 '자진 사퇴설'이, 곧 이어 후임 인사 이름이 거명되어 그가 돌아올 길을 막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조직위원회와 부산시 주변에는 '연말에 퇴임하는 시 고위 간부 ㅊ씨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부산시도 한총장의 복귀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 조직위측 인사들은 "상대는 다르지만 김위원장 역시 한총장처럼 당사자가 없는 사이에 사퇴설을 흘리고 후임자를 거명해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치밀한 시나리오에 걸려들었다"라는 심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공식 입장을 밝힐 위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는 인사가 있을 때마다 잡음에 휘말렸다. 1995년 출범 초기부터 부산시와 조직위가 '내 사람'을 심기 위해 힘겨루기를 벌여온 탓이다.


김운용 위원장 역시 한동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1999년 11월 조직위 2기 위원장으로 재선출되자 조직위 집행부나 부산시 등과 한마디 상의도 않고 측근을 통해 고사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은 재선출 40여 일이 지나서야 취임해 시민들로부터 부산 아시안게임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안상영 부산시장은 1999년 취임 후 "실질적인 아시안게임 준비를 부산시가 맡고 있는 만큼 결재권을 시장이 가져야 한다"라며 당연직인 수석부위원장 외에 집행위원장 직을 맡으려다 조직위와 갈등을 빚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부산시측은 청와대에 김위원장 '용퇴'까지 거론하며 시장의 조직위내 위상 제고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내기도 했다.


부산시는 내부적으로도 주경기장 입지 문제로 시의회와 마찰을 빚었고, 승마장 위치를 두고 경남도와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조정·카누 경기장은 최근에야 착공했고, 승마장은 아직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등 주경기장(3월26일 기준 공정률 88.1%)을 제외한 상당수 경기장 공사가 당초 예정보다 크게 지연되고 있다. 이 바람에 실내 체육관과 사이클·테니스 경기장이 건립되는 금정체육공원이 2002년 4월, 조정경기장과 선수촌은 2002년 6월 등 대회 서너 달 전까지 공사를 계속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골프경기장(3월26일 기준 공정률 64.4%) 기장체육관(〃 21.5%) 승마경기장(미착공) 등은 개막을 코앞에 둔 2002년 7∼8월이 되어야 준공할 예정이어서 변수가 생길 경우 대회 일정에 맞추지 못할 위험까지 있다.


주먹구구식 수익사업, 대부분 표류


외풍에 휘둘려 온 조직위 역시 잦은 업무 공백과 소극적 자세로 대회 준비에 난맥상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성과 없이 남북 분산 개최 추진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주먹구구식 수익사업은 대부분 표류하고 있다. 메인프레스센터 인근에 9백 세대 규모 기자촌을 건설한 후 대회가 끝나면 분양해 3백억원을 벌어들이겠다던 계획은 땅을 확보하지 못해 최근 포기했다. 규모를 줄여 콘도를 짓는다는 대안도 '구상' 단계에서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조직위원회 청사 앞에 설치한 아시안게임 'D데이 시계탑'마저 일반 기업체의 광고가 실렸다는 공식 후원업체의 항의로 멈춰선 지 오래다.


지역 체육계는 최근 들어 부산 아시안게임 관련 보도가 신문 체육면 대신 정치면이나 사회면을 채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들은 아시안게임이 그렇잖아도 서너 달 앞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의 열기에 가려 '동네 잔치'에 머무를까 봐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과 관련 기관들이 자리싸움으로 조직위를 계속 흔들어 댄다면, 동네잔치조차도 열기 힘들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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