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YS·DJ 정권 '무기 도입 의혹' 캔다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6.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여연대, 전자전 장비 사업 관련자 13명 고발…
두 정권 잇는 '군부 커넥션' 개입 가능성


그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던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사업'(동부 전자전 사업)의 실체가 벗겨질까.


참여연대가 지난 6월18일, 문일섭 전 국방부 차관·이청남 전 국방부 방산 차관보 등 이 사업 관련자 13명을 직무 유기·직권 남용·허위 보고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함으로써 동부 전자전 사업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동부 전자전 사업이란 적군의 통신 내용을 탐색·감청하고 위치를 탐지해 아군의 작전에 이용하는 장비를 동부 전선에 배치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때는 1986년. 그러나 장비에 대한 시험 평가 기준 논란에다 업체와 유착한 의혹이 겹쳐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1992년에 들어서야 미국·독일·프랑스 업체를 후보로 선정했다. 1996년에는 서류 평가에서 미국이 탈락하고 대신 이스라엘이 참여해 독일·프랑스·이스라엘 3파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로비스트 린다 김이 이스라엘측 대리인으로 움직인 것도 이때였다.


"작전 수행에 문제 있는 무기 도입, 예산 낭비"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긴밀했던 린다 김의 영향으로 초반에는 이스라엘이 우위를 차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공군 출신인 이장관이 육군 출신의 집중 견제로 경질되자 동부 전자전 사업은 재검토되는 운명에 처했고, 수정된 군 요구(ROC)에 맞지 않는 이스라엘은 탈락했다.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에 YS 정권의 무기 도입과 관련해 처음 제보가 들어온 것이 바로 동부 전자전 사업이었다. 시험 평가에서 3개국 장비가 모두 사용 불가로 판정되어 존폐의 기로에 섰던 이 사업은 1996년 '동해안 잠수함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살아났다.


잠수함 사건을 겪으며 전자전 장비의 필요성을 절감한 군은 독일과 프랑스를 놓고 저울질 했다. 이때 문민 정부의 무기 도입 사업을 주무른 권영해 안기부장이 프랑스측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움직였다는 것이 당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톰슨 사 장비를 도입한 국내 대행업체의 회장이 권부장과 육사 동기생이었기에 이런 분석은 나름으로 설득력을 가졌다. 동부 전자전 사업은 이런 과정을 거쳐 대통령 선거 직후인 1997년 12월20일에 프랑스 톰슨 사로 최종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이 사업은 다시 한번 굴곡을 겪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급박하게 결정이 이루어진 것을 둘러싸고 온갖 풍문이 난무하고 환율이 1달러당 1900원대까지 치솟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사업 재검토를 지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용택 국방부장관이 취임하면서 이 사업은 부활했고, 수정 계약을 통해 일부 내용이 바뀌었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고 중단할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사업을 부활한 배경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당시 정가에는 'YS-DJ 정권 군 실세들간 밀약설' 등 사업 재개와 관련한 온갖 소문이 퍼졌다. 전체 규모가 7백억원 정도인 이 사업은 현재 32억원을 제외한 장비 대금 전부가 톰슨 사에 지급되었고 장비는 전방 지역에 배치되어 있다.




참여연대가 이처럼 상당 부분 진행된, 규모도 크지 않은 이 사업에 대해 '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둔 까닭은 무엇일까. 참여연대 이태호 투명사회국장은 "국방부가 도입을 결정한 전자전 장비를 사용할 경우, 예산 낭비는 물론 군사작전 수행에 중대한 문제점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라고 고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이 명확히 책임져야만 앞으로 추진될 서부 지역 전자전 사업(2천억원 규모)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고, 무기 구매 사업에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이 사업과 관련한 제보를 접수한 때는 지난해 10월. 참여연대는 내부 검토와 증거 자료 수집, 관련자 면담 등을 거쳐 올 1월에 관련자들을 고발하기로 결정한 뒤 보완 작업을 계속해 왔다. 참여연대는 동부 전자전 사업이 전개되는 과정에 군 고위 인사들이 직무 유기 등을 저질렀다고 본다.


참여연대는 우선 사업 주체가 톰슨 사로 결정된 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1997년 5월 실시한 시험 평가에서 톰슨 사 장비가 군 요구에 미달해 배제되어야 하는데도 국방부가 옵션을 걸어 이를 수용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사그러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무기업계에서 이른바 '프랑스 커넥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 무기업계의 한국측 대부로 통하는 ㅇ씨를 중심으로 YS-DJ 정권의 주요 군 인사로 연결되는 커넥션이 있다는 것이다.


장비 운용자들 '오류 과다 발생' 등 문제점 지적


사업 주체를 톰슨 사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시험 평가에 문제가 없고 국방부의 무기체계 시험평가 업무지침에도 위반되지 않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비를 들여온 뒤 실제로 운용한 전문가들은 '정보 수집 데이터베이스 기능 구축 불가' '운용중 프로그램 오류 과다 발생' '발생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는 임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 초래'등 각종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지적을 감안하면 장비를 도입했을 때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에 대해 육군 무기체계 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장비를 들여온 초기에 소프트웨어가 덜 보완된 측면이 있었고, 장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이상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작년에 다섯 차례에 걸쳐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을 전부 보완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또 고발장에서 '1999년 2월3일, 수정 계약을 통해 수신기 42대를 삭제했으므로 70여억 원을 삭감해 지급했어야 하는데도 삭감되기 전의 대금을 그대로 지급했다'며 직무 유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은 '톰슨 사의 특별 할인에 의거해 최초 계약 금액과 변동 없이 수정 계약을 체결했다. 수정 계약 과정에서 삭제한 품목은 대체 가능하다고 판명된 품목이어서 장비 성능을 발휘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원래 1998년에 18개 시스템, 1999년에 17개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999년 5개 시스템이 처음으로 들어오는 등 전부가 제 날짜에 들어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관련 장교들이 계약에 보장된 지체 보상금을 요구하지 않아 16억원 상당의 국고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까지 5억3천만원을 부과하는 등 대금을 지불할 때마다 지체 보상금을 물리고 있다는 항변이다.


국방부는 동부 전자전 장비 사업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1999년 프랑스에서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시험을 실시했고, 도입한 뒤에도 여러 차례 성능 확인 시험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국회 국방위원들을 초청해 2회에 걸쳐 공개 시연회도 열었다. 지난 5월에는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한나라당 방위력개선소위 위원장인 박승국 의원을 방문해, 문제가 되었던 부분에 대한 보완 조처를 끝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동부 전자전 사업은 무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주목하는 주요 관심 사업 중 하나다.


다 끝난 것으로 보였던 전자전 사업은 참여연대의 고발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 군사 소식통은 "이대로 있으면 서부 지역에도 똑같은 장비가 들어온다. 전자전 장비는 미사일처럼 한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니고 15년 간 계속 써야 하는 장비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군에 도움이 되는, 군이 원하는 장비를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사 평론가 김종대씨는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애초 계획된 용도대로 제대로 쓰고 있느냐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고발은 전자전 사업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정밀 조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 무기 도입 사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불똥이 엉뚱한 쪽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연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번 고발 사건은 현정권의 무기 도입 사업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