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특별법의 나라'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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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국회에서만 20여 건의 발의…뒤틀린 사회의 현주소 보여줘


8월 들어 국회는 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에 앞서 16대 국회의원 개개인의 입법 활동 성적도 집계되었다. 지난 1년 동안 의원이 법률안을 낸 수는 총 3백64건인데, 의원 1인당 평균 발의 건수는 1.3건으로 나타났다. 그 중 특별법이 20여 개를 차지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특별법은 대개 뒤틀린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거나 급변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일반 법률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특별법은 특정 사안에 관해 대상·지역·기간 등을 한정해 적용한다.



16대 국회에서는 특별법 5개가 이미 통과되었다. 우선 지난해 제정된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상수 의원 발의)과 '시국사건 관련 교원임용제외자 채용에 관한 특별법'(임종석 의원 발의), '제주 4·3 특별법'(추미애 의원 발의) 등은 인권과 관련된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성격인 '여순사건 해결에 관한 특별법'(김충조 의원 발의)과 '함평사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낙연 의원 발의),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배기운 의원 발의)은 계류되어 있다.


제주도민, 10년 넘게 투쟁해 50년 한 풀어


16대 국회에서만 제출할 수 있었던 특별법도 있다. 인터넷 시대 개막과 국가 경제 위기라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지난해 11월15일 통과된 '정보 격차 해소에 관한 특별법'(김효석 의원 발의)과 지난해 12월2일 통과된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이한구 의원 발의)을 들 수 있다.


특히 정보격차해소에관한특별법은 인터넷 시대의 정보 편중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정보화 물결에서 새로이 소외 계층으로 떠오른 저소득자·농어민·장애인·노령자에게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보 접근 기회를 주어 그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이 특별법은, 국회 사무처에서도 보기 드물게 '준비된 특별법'이라고 평가했다. 발의자인 김효석 의원은 "정보 격차 실태에 관한 사전 조사를 거친 뒤 정부와 민간 연구소 전문가 22명으로 기획단을 구성해 석 달 걸려 법안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공을 들인 데다 시류에도 잘 맞아 통과된 법인 셈이다.


그밖에 계류 중인 '강제 부당 퇴출 은행의 피해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김문수 의원 발의)에는 IMF 구조 조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 당사자들이 눈물겹게 싸운 경우도 있다.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의문사한 이들의 유족은 4백여 일 동안 국회 앞에서 농성했으며, 제주도민은 10년 넘는 투쟁 끝에 50년 묵은 한을 풀었다.




그러나 통과된 특별법은 한국 사회가 '특별히' 풀어야 할 문제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국회에 아직 계류되어 있거나 현재 일부 의원이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특별법에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역사적 모순과 한이 담긴 것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법률안이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이 발의한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률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 정부가 광복 후 처음으로 일제 강점 때의 피해 실태를 구체적으로 조사·정리하게 된다. "36년 동안 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강제된 징용과 징병·정신대 모집·학살 만행에 대한 규탄은 무성했지만, 정작 누가 어디로 끌려가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기초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가령 20만명에 달했던 정신대 할머니 문제만 해도 정부가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총독부 통치 자료부터 먼저 조사했어야 했다. 명단 및 기초 자료 파악조차 외면하는 바람에 민간에서는 국내에 생존한 할머니 3백여 명의 목소리에만 의존해 대응해 왔다." 김원웅 의원은 정부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지적하기에 앞서 지난 50여 년 동안 직무 유기한 국민 보호 의무와 국가 자존 의무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이 특별법을 발의했다고 말한다.


15대 국회에서 죽었던 특별법 되살아나기도


그는 일제 강점 때의 피해 실태 조사에 대한 특별법 외에도 최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 관한 통합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 전후의 비무장 민간인 집단 학살을 광복 후 냉전 기류를 이용해 애국자로 둔갑한 친일파들이 전쟁을 틈타 전국 각지에서 자행한 반문명적 범죄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여순 사건 및 함평 사건 관련 특별법과 배기운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진상규명 특별법'을 포괄해 더 정교한 통합 특별법안을 준비했다. 이 법률안은 최근 전국적으로 결성되고 있는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회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범국민위원회(위원장 강정구 교수)가 추진하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조용환·강금실·백승헌 변호사가 만들었다.




현재도 계속 뒤틀리고 있는 한·일 관계를 반영하는 특별법도 2개나 된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억지에 맞서기 위해 제출된 '독도 개발 특별법'(윤한도 의원 발의)과 한·일 어업협정 발효 이후 발생한 어민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김영진 의원 발의) 등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그밖에 '수도권 집중 방지 및 지역 균형 발전 특별법'(김학원 의원 발의)과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특별법'(이상수 의원 발의), '남북 이산가족 교류에 관한 특별법'(장성민 의원 발의)도 국회 사무처 의안과에 접수된 특별법안이다.


이처럼 특별법안은 16대 국회 개원 1년 만에 20여 개가 발의되었는데, 남은 국회 임기 3년 동안 상임위에서 더 많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대 국회에서 의원의 임기가 끝나 자동 폐기된 특별법 가운데 의원들이 16대 들어 다시 제출하거나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법률안도 적지 않다. 독도개발특별법·어업협정체결에따른어민지원특별법·사형폐지특별법·갯벌보전특별법이 그런 예이다. 16대에 통과된 특별법 중 의문사관련특별법과 제주 4·3특별법, 시국사건으로면직된교원구제에관한특별법 등은 모두 15대 국회에서 외면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법률안들이기도 하다.


의원들이 제출하는 일반 법률안과 마찬가지로 특별법은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15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 발의 의안과 법률안 중 자동 폐기된 것은 3백90건이었다. 이 중에서 상정된 경우가 2백97건(76.2%)이고,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경우는 93건(23.8%)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당수 국회의원이 법률안 발의 자체에만 목적을 두고 형식적으로 제출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별법 역시 15대 국회에서 의원 발의된 법안 58개 중 가결된 안은 12건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임기 만료로, 또는 대안이 마련되어 폐기되었다.


16대 국회 들어서는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입법 활동 성적표를 매기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치개혁위원회(위원장 지하은희)가 매긴 지난 1년간 의원 입법 활동 성적표를 보면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조응규 의원으로 총 19건이었다. 그 다음으로 15건을 발의한 심재철 의원, 각각 10건을 발의한 김원웅·김홍신 의원이 뒤를 이었다. 원안 가결 1위는 김원웅 의원(2건), 수정 가결 1위는 박광태 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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