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기술은 최고, 경영은 최악
  • 주성민(자유 기고가)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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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자주포 수출 계기로 본 국내 방위산업/
79개 업체 공장가동률 50% 밑돌아


첨단 성능의 국산 자주포 K9 썬더가 터키에서 조립되어 면허 생산된다. 2011년까지 대당 37억원이 넘는 155mm K9 3백대분 부품이 터키 지상군 사령부로 수출되는데, 1차 계약금 6천만 달러를 포함해 총수출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3천억원)를 넘는다. 단일 품목 국산 무기 수출액으로는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전차처럼 무한 궤도로 이동하는 자주포는 지상군의 주력 무기이며, 시장 경쟁이 아주 치열한 품목이다. 국방부는 이 한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의 엄청난 견제를 받아가면서도 모든 채널을 가동한 끝에 계약을 따냈다. 터키와 면허 생산이 이루어진 덕분에 한국 방위산업은 기술력을 국제 사회에 과시하면서 본격적인 무기 수출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1995년 방위산업체인 대우종합기계는 말레이시아에 K200 장갑차 6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1998년에는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함정 1척씩의 계약을 따냈다. 대우는 올해 5월 방글라데시에 1억 달러짜리 2천3백t급 프리깃함을 인도했고, 현대는 오는 9월 베네수엘라에 7천만 달러짜리 1만t급 군수지원함을 인도할 예정이다.


올해 수출 목표 2억 달러


우리나라는 올해 전반기에 지뢰탐지기·낙하산·방탄 조끼 등 방산물자를 6천5백만 달러어치 수출한 데 이어 삼성테크윈이 베네수엘라에 F16 전투기 엔진을, 기아자동차는 모로코에 5t짜리 군용 트럭 2백대를 수출할 예정이다. 1997년에는 5천8백만 달러, 1998년에는 1억4천7백만 달러, 1999년에는 1억9천6백60만 달러 작년에는 5천5백3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국방부는 올해 수출 목표를 2억 달러로 잡고 군사 외교와 해외 주재 무관의 수출 지원 활동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은 무인 기질을 지닌 지도자의 집념에서 비롯했다. 1970년대 초반, 정부는 '자주 국방'을 표방하며 우리 기술로 군사력을 확보해 국가를 방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때부터 방위산업을 육성해 미군의 기술자료집을 바탕으로 하여 재래식 기본 병기인 M16 소총·M60 기관총·M203 유탄발사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80년대에는 기본 병기의 성능을 개량해 한국형 무기 체계를 발전시켰고, 정밀 병기인 130mm 다연장 로켓과 K1 전차를 국산화해 실전에 배치했다. 현재 대당 57억원 정도인 K1 전차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디지털 탄도계산기와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이루어진 자동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했다. 목표물의 거리가 전압으로 표시되면 전압에 따라 각도가 나오고, 전차의 포신이 자동으로 목표물을 조준하게 만든 장치이다.


1990년대에는 고도 정밀 무기인 K9 신형 자주포·KDX1 신형 구축함, 30mm 자주대공포, K731 중어뢰 등이 개발되었다. 파괴력이 TNT 3백70kg과 맞먹는 강력한 탄두가 실린 K731 중어뢰는 적 함정의 소리를 감지하면서 스스로 추적해 공격하는 첨단 능동형 음향 추적 어뢰다.


국내 방산업체의 총기·야포·전차·어뢰·미사일 생산 기술력은 거의 정상급이다. 정보·전자전·스텔스 분야에서는 약하지만, 정밀 타격 무기의 유도 제어 기술은 선진국에 접근한 수준이다. 100 km 넘게 떨어진 적 함정을 추적한 후 가까워지면 수면 위 수m의 초저공으로 날아가 격침하는 함대함 크루즈 미사일, 포탄이 목표물을 인식해 정확히 타격하는 스마트탄, 차세대 신형 미사일, 카메라를 탑재한 정찰용 무인 항공기도 개발되고 있다.


대우조선은 일관성 없는 정책의 희생양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으나 방산업체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국내에는 총기·탄약·미사일·레이더·잠수함·항공기 등을 생산하는 방산업체가 79개 있다. 그러나 가동률은 50%도 안되어 상위 20여 개를 제외한 상당수 업체가 경영난에 빠져 있다. 1997년 방산업체 가동률은 57%였으나 1998년에는 52.5%, 1999년에는 51%로 떨어졌다. 급기야 올해에는 가동률이 40% 이하로 추락한 업체가 30개가 넘었고, 10% 이하로 떨어진 곳도 있었다.


방산업체들이 형편없이 위축된 것은 군의 재래식 병기 수요가 줄어들었고, 첨단 무기 직구매 비율이 95%까지 확대되었으며, 국방 투자사업비가 감소된 데다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군수 선진국의 방산업체는 직접 무기를 개발해 홍보하며, 산업체 내에 군의 병기 생산창이나 국영 공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하고 생산은 민간이 맡고 있다. 국방부는 필요에 따라 방산업체를 지정해 납품받고, 그 뒤에는 나몰라라 하기 일쑤여서 업체는 애써 만든 시설을 본전도 못 뽑고 폐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경영난에 빠진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쉬울 때 요구하고, 나중에는 알아서 하라는 것이 정부의 태도라고 말한다.


무기 생산에 필요한 부품 국산화가 저조한 것도 문제다. 방산물자 국산화 비율은 1994년 평균 62%였는데 지금도 67%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무기에 들어가는 최신형 센서 등 핵심 부품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것이다.


육군 항공작전사령부가 운용하는 공격용 헬리콥터 AH1-S 토우 코브라는 아직도 쓸 만하지만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 미군은 사용 중인 AH1-S를 모두 폐기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2월 한국에 '필요한 부품을 2002년까지 일괄 구매하라'고 통보했는데, 육군은 앞으로 고장 날 부품의 소요를 산정하기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대우조선은 일관성 없는 정책의 대표적 희생자다. 국방부 획득실은 '대규모 시설과 인력이 필요한 분야는 중복 투자와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전문 업체를 지정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대우조선은 잠수함 공장 시설에 천억원을 투자했고 훈련된 기술자 5백30명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가동률은 제로다. 잠수함 9척을 건조한 후 더 이상 물량이 없어 시설을 놀리고 있다. 중복 투자를 방지하겠다던 정부가 잠수함 분야만큼은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차기 잠수함 사업자로 현대중공업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4호 박위함의 창정비를 머지 않아 시작할 예정이지만, 그래 봐야 공장 가동률은 6%에 불과할 전망이다. 거기다 수상함 건조 기술과 달리 수중함 건조 기술은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없다. 대우조선은 자구책으로 말레이시아에 잠수함을 팔려고 애쓰고 있지만 실패할 경우 대책이 없다. 이것이 한국 방위산업의 현주소다.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의 활약




제3차 중동전 이후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공군력의 대부분을 프랑스 다소 항공의 미라주 전투기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컸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대금을 모두 치른 수십 대분 전투기와 부품 수출까지 전면 금지했다. 전투기는 부품이 없으면 정비를 하지 못해 하늘에 띄울 수 없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자 이스라엘 비밀첩보부 모사드는 미라주의 설계도를 빼내는 공작에 들어갔다.


1968년 모사드는 미라주를 면허 생산하는 스위스 슬사 항공의 부품 설계도를 1주일에 한 번씩 독일로 빼냈다. 설계도는 이탈리아를 거쳐 텔아비브로 긴급 공수되었고, 시동을 건 채 대기하던 중무장 장갑차에 실려 항공기 기술자에게 초특급으로 전달되었다. 1971년 이스라엘이 개발한 네샤 전투기는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1973년 4차 중동전에서 이집트 공군기를 숱하게 격추시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세계적인 동력 회사 '프랫 앤드 위트니'의 엔진을 도입해 미라주보다 성능이 뛰어난 크피르 C1 전투기를 개발했으며, 개량형인 C2 50대를 1978년 타이완에 수출했다.


무기를 해외 도입에 의존하게 되면 군사적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 무기와 부품을 공급하던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내세워 수출을 금지하면 필요 물량을 적절한 시기에 확보하지 못한다.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며 국가 안보에 짐이 된다. 따라서 군사 독립을 이루려면 우선 방위산업을 안정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첨단 무기를 해외에서 불가피하게 도입할 때는 기술 도입을 해야 한다. 핵심 기술을 이전 받으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다. 기종 선정에 잡음이 많은 차세대 전투기 역시 기술 도입 조건이 유리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을 포기하면 '방위산업의 진보'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위 산업체











































△LG이노텍 지대공·지대지 미사일 체계/휴대용 미사일/지상·해상용 레이더
△삼성테크원 K9 자주포/상륙·돌격 장갑차/F16 전투기 엔진/헬기 엔진
△위아 무반동포/박격포/견익곡사포/전투기·헬기 착륙장치
△풍산 탄약/전차용 포탄/20mm벌컨 사거리 연장탄/155mm 항력 감소 고폭탄
△한국항공(KAI) F16 전투기 면허 생산/KT1 기본훈련기/T50 고등훈련기
△대우조선 프리깃함/잠수함/잠수함 구난함/KDX1 구축함/초계함
△대우종합기계 장갑차/30mm 자주대공포/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현대중공업 초계함/호위함/군수지원함/미사일 구축함/상륙강습함
△한진중공업 초계함/고속정/대형 상륙함/잠수정/공기부양선/구난함
△두산중공업 함정 추진 시스템/도하용 부교/장갑용 판재
△휴니드
테크놀러지스
무전기/차세대 무전기/박격포 사격제원계산기
△삼성SDS 지휘자동화체계/육군탄약정보체계/국방의료정보체계
△협진정밀 로켓탄용·박격포탄용·함포탄용 신관/센서/타이머/가속도계
△연합정밀 차량용 디지털 통신장치/전자파 차단 케이블/커넥터


군수 선진국의 방산업체들은 기술력에서 민간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프랑스의 3대 국가 전략산업은 무기·항공기·자동차다. 첨단 기술을 가진 프랑스의 방위산업은 민간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머지 산업을 이끌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도 체제를 바꿀 때가 되었다. 스스로 무기를 개발하고 수출할 수 있도록 방위산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해 국가 전략 사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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