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형님’으로 모신 검사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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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웅 고검장, 이수동·박지원 씨와 ‘호형호제’…“전형적인 정치 검사”
대검 중수부는 4월19일 김대웅 광주고검장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차정일 특별검사가 이용호 사건 수사를 대검으로 넘긴 지 거의 한달 만의 일이다.
김고검장은 그동안 아태재단 이수동 전 상임이사에게 이용호 사건 관련 수사 정보를 누설한 장본인이라는 의혹을 받아 왔다. 정황 증거는 충분하다. 차정일 특검 팀은 김고검장과 이씨 간에 오갔던 100여 차례 통화 기록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고검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수동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수사 기밀을 알려준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서울지검장이어서 수사 기밀을 알 수 없었다. 억울하다.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거듭해 왔다. 대검 중수부는 김고검장의 반발을 의식해 지금까지 소환을 미루어 왔다.



검사들은 김고검장이 권력 실세들과 호형호제하면서 수사 정보를 누설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정치 검사의 행보라고 지적한다. 검사들은 정치 검사를 ‘정치권과 가까워 자신의 인사를 보장받고 그 대가로 정치권이 연루된 사건을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검사’라고 규정한다. 김고검장이 처음부터 정치 검사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정부가 출범하기 전 김대웅 광주고검장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꿈은 광주지검장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호남 출신이 검사의 꽃이라는 검사장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던 시절, 광주 출신인 김고검장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DJ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꿈은 상향 조정되었다. YS 정권 말기에 한직인 서울고검에 있었던 김고검장은 정권이 바뀌자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맡았고, 이후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중수부장·서울지검장·광주고검장 등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권력의 ‘이너서클’에 가입



김고검장은 임휘윤 전 고검장과 함께 과거 영남 정권 때에도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던 호남의 대표 주자였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 대검 중수부 과장을, YS 정권 때에는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맡기도 했다. 거기다 선이 굵고 보스 기질도 있어 선후배 검사들에게 신망이 높았다. 이런 경력과 성품 덕분에 주변에 늘 사람이 몰렸고 그는 검찰 내에서 발이 너르기로 소문이 났다.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있는 폭넓은 인맥 또한 재산이었다. 그 많은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아태재단 이수동 전 이사였다.



이수동씨는 평검사들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간부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검찰 인사에 힘을 쓸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영감’으로 통했다. 그런 이씨와 김고검장은 ‘형님 아우’하며 지냈다. 김고검장이 현정권에서 탄탄대로를 달렸던 배경에는 대통령을 1주일에 한 번은 만나는 동교동 집사와의 끈끈한 관계가 한몫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돌았다.



김고검장은 박지원 비서실장과도 각별한 관계였던 것으로 검찰 내부에서는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 그는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박지원 실장을 ‘지원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과시하다가 언론사 정보 보고에 오른 적이 있다. 두 사람은 현정부 출범 이전부터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박실장 역시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만나는 권력의 핵심이다. 이렇게 권력 실세 중의 실세들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고검장은 광주 출신이면서도 목포 출신이 주류인 권력의 ‘이너서클’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안기부 예산 전용 수사는 ‘정치 쇼’였다?



김고검장은 이수동씨말고도 문제의 인물과 접촉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진승현씨 구명 로비에 나섰던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도 있었다. 김고검장은 중수부장 시절이던 2000년 9월 대검으로 찾아온 김은성씨를 만났다. 김씨는 진승현 구명 로비를 맡았던 김재환씨와 동행했다. 둘 사이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진승현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은성씨가 공식 경로를 통해 불구속 수사를 해달라고 부탁해 승낙을 받았는데 주임 검사가 훼방을 놓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또 김고검장은 김은성씨의 부하였던 정성홍 전 경제과장과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고검장은 지난해 9월 신승남 검찰총장과 함께 보물선 사건으로 구속된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식사를 하고 골프를 친 것이 특검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김고검장은 현정권 출범 이후 대우그룹 분식 회계, 언론사 세무 조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의 수사를 지휘했다. 그 가운데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수사를 지휘한 안기부 예산 전용 사건은 정치 검사의 면모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000년 9월께 시작된 이 사건은 과거 신한국당이 1995년 지방 선거와 1996년 총선에서 안기부 예산 1천2백억원을 선거 자금으로 썼다는 것이 골자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의원 100여 명을 소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대검 중수부는 결국 안기부 예산을 관장하던 김기섭 전 기조실장과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의원을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당시 검찰과 여권은 마치 한몸인 것처럼 비쳤다. 돈을 받은 의원 명단이 흘러다녔고, 여권 인사들은 수사 기밀을 미리 브리핑이라도 받은 듯 한 발짝 앞선 논평을 내놓았다. 누군가 수사 기밀을 여권에 보고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했다. 당시 김대웅 중수부장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검찰이 ‘보아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안기부 계좌를 뒤진 것도 파격이었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자신들을 국가 예산이나 빼먹는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몰아붙인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안기부 예산의 30%나 되는 천억원을 뽑아서 선거 자금으로 쓰면 안기부가 운영되었겠느냐는 것이 야당의 반박 논리였다. 사건 변론을 맡은 홍준표 의원은 “1992년부터 안기부 예산 불용액 전액을 국고에 반납했다는 국회 정보위 보고가 있다. 예산을 전용했다고 예단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검은돈임에는 분명하지만 국가 예산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대웅 고검장은 김태정·신승남 전 총장,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과 함께 현정권에서 가장 잘 나가던 검사였다. 하지만 김고검장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재임 중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을 위기에 처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김고검장의 사퇴는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 내부에 김고검장에 대한 동정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정에 끌렸다고 해도 김고검장이 조직의 수사 상황을 누설했다면 검사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금도를 저버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수부 출신인 한 중견 검사는 “김고검장 같은 검사들이 앞장서서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켰다. 김고검장은 책임을 져야 하고 소환은 사필귀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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