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아버지를 죽였나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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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존속살해 사건 진상/엘리트 집안에서 성장, ‘학벌 콤플렉스’ 시달려
지난 6월10일 오후 1시30분, 경기도 분당구 서현동 ㅇ아파트 213동이 연기에 휩싸였다. 10층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은 가스를 차단하고 소방서에 신고했다. 분당 소방서는 출동한 지 30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소방관은 거실에서 시체 2구를 발견했다. 40대로 추정되는 남자와 할머니 시신이었다. 그런데 칼에 찔린 자국이 선명했다. 화재에 따른 사망이 아닌 타살이었다.




분당경찰서 강력4반이 수사에 들어갔다. 숨진 40대 남자는 ㄱ대 교수 이 아무개씨(48)였고, 할머니는 이씨의 어머니 진 아무개씨(73)였다. 경찰은 유가족부터 찾았다. 오후 3시께 이교수의 아들 이재형씨(23·가명)가 핸드폰을 받고, 화재 현장인 집에 도착했다. 경찰은 일단 이씨의 알리바이를 조사했다. 조사를 받던 이씨는 다음날 오전 2시 긴급 체포되었다. 존속 살해 혐의였다.


존속 살해에 이은 시체 유기. 2년 전 일어난 부모 토막 살해 사건의 복사판이다. 당시 범인은 명문 대학 재학생 이은석씨였다(<시사저널> 제554호 참조). 이은석씨는 정신이상자도 인격파탄자도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생이었다. 이은석씨에게는 어느 젊은이나 간직하고 있을 법한 상처가 있었다. 부부 갈등·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단절·왕따 경험. 그렇다고 이런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어느 한순간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자로 돌변한다. 존속살해범을 패륜아로 단정하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자식만은’이라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힘들 정도로 존속 살해 사건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6월12일 낮 12시40분 이재형씨는 경찰과 함께 집을 찾았다. 현장 검증을 위해서였다. 검게 그을은 현관문을 열자 온통 암흑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65평 아파트 내부는 거의 다 불에 탔다. 이씨는 기억을 더듬으며 사건 당시를 재연했다.




아버지한테 꾸중 듣고 칼 들어


6월9일 이재형씨는 친구 문 아무개씨와 문씨의 여자 친구와 함께 강남역 근처 ㅇ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씨는 최근 술자리가 잦았다. 6월20일 군대에 가기 때문에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밤 11시30분께 이씨는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 이교수와 할머니는 모두 깨어 있었다. 이교수는 보통 저녁 9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연구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다.


이교수가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경우는 한 가지다. 술을 마셨을 때다. 술에 취한 이교수는 늦게 들어온 재형씨를 야단쳤다. 불행히도 야단은 짧지 않았다. 이교수는 재형씨의 방과 붙어 있는 서재로 데려가 그를 2시간 정도 나무랐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열어둔 채 잠들었다.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은 재형씨는 머리가 아팠다. 그는 두통약 13알을 한꺼번에 복용하고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부엌에서 식칼 두 자루를 꺼내들고 서재로 돌아왔다. 책장 옆에 놓인 스키 가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방에서 스키 폴대를 꺼내 끝에 식칼 두 자루를 테이프로 묶었다. 새벽 3시30분께 재형씨는 식칼을 매단 폴대를 들고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그는 폴대를 들어 이교수의 목 오른쪽을 내리찍었다. 이교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교수의 비명에 옆방에서 잠자던 할머니 진씨가 방문을 열었다. 피 흘린 아들을 보자 진씨는 비명을 질렀다. 재형씨는 부엌으로 가서 과도를 가지고 와 할머니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그는 서재로 돌아가 새벽까지 앉아 있었다. 10일 아침 6시 그는 피범벅이 된 집을 나가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하고 건국대역에서 여자 친구 김 아무개씨를 만났다. 김씨의 여권 갱신을 돕기 위해 재형씨는 서초구청까지 함께 갔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이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문을 열자 피 냄새가 진동했다. 이씨는 장갑을 끼고 살인 현장을 수습했다. 그는 스키 가방과 배낭에 피 묻은 폴대와 과도·옷가지·신발을 담았다. 거실에 고인 핏자국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자동차를 몰고, 인근 주유소 세 곳을 돌며 휘발유를 사 1.5ℓ 들이 페트병 3개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아버지와 할머니 시신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켜 신문에 불을 붙였다. 불을 지른 뒤 이씨는 스키 가방과 배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갔다. 그는 인근 야산에 스키 가방과 배낭을 묻었다.




현장 검증을 하다가 이씨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라며 울부짖었다. 손을 떨며 주저앉기도 했다. 때늦은 후회였다. 경찰은 이씨의 정신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 정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씨는 왜 존속살해범으로 돌변한 것일까? 6월11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씨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당일에 있었던 아버지의 꾸중을 직접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이씨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한 것도 아니어서, 경찰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다.


이씨의 집안은 중산층 엘리트 가정이다. 아버지 이교수는 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유학파이다. 이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회계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그가 처음이다. 어머니도 이화여대 출신이다. 부모뿐 아니라 친인척 중에도 엘리트가 수두룩하다. 친인척 가운데 5명이 교수이다.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한 집안이지만, 재형씨에게는 그것이 부담이었다. 재형씨는 다른 친인척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그는 삼수 끝에 대학에 진학했다. 서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형씨는 유학길에 오른 부모를 따라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초등학교 6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나 국사에서 이순신이나 권 율이 나오면 재형이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라고 외삼촌 우 아무개씨는 말했다.




비극의 시작이 된 미국 유학


사춘기로 접어든 중학교 때 그의 성적은 더 떨어졌다. 사춘기와 겹치면서 그는 무기력해져 갔다. 보다 못한 부모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를 다시 미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비자가 연장되지 않아 재형씨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교수와 절친한 동료 교수는 “재형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다. 성적이 나쁘고 결석이 잦았는지 이교수가 한국으로 데려왔다”라고 말했다. 재형씨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외삼촌 우씨는 이때부터 부자 간에 갈등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재형씨에게 아버지가 존경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재형씨는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아버지 이교수는 1년여 동안 손수 아들을 검정고시 학원에 데려다 주었다. 검정고시를 통과했지만, 재형씨는 번번이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그는 말수가 적어졌고, 더욱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갔다. 삼수 끝에 2000년 그는 적성(적당한 성적)에 따라 ㅅ 대에 합격했다. 국제화추진특별전형 수시 모집에 합격한 것이다. 토플 560점 이상이면 지원 가능한데, 재형씨는 630점 이상을 받아 신입생 특별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재형씨는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누리지 못했다. “아마 아버지 앞에서 ㅅ대의 ㅅ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친척은 말했다. 재형씨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지만, 아버지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기고·서울대·스탠퍼드 대학 등 일류 코스를 밟아온 이교수는 자식에게도 기대를 걸었으나 재형씨는 번번이 대학에 낙방하며 기대를 저버렸다. 이교수는 자주 “자식 농사는 인력으로 안된다”라고 친인척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교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은 이교수의 괴로움을 이렇게 전했다. “재형이가 합격한 뒤 함께 술을 먹는데 이교수가 갑자기 동료 교수를 욕했다. 이교수의 동료 교수가 재형이가 대학에 합격한 뒤 술을 한잔 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수 아들은 서울대에 다니고 있었다. 아주 염장을 질렀다며 분개했었다.” 재형씨도 학교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삼수 끝에 그는 ㅅ대에 들어갔지만, 사촌들은 서울대와 연세대에 다니고 있었다.




대학 동기들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한 재형씨에게 친구는 많았다. 재형씨는 영문학과였지만 사학과 친구들과 더 친했다. 학부제여서 1학년 때부터 함께 생활한 사학과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98학번 정 아무개씨(25)는 기자가 찾아갈 때까지 재형씨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른 선후배나 동기 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재형이가 그 사건과 관련된 줄 몰랐다.

상상이 안 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재형씨는 학교에서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열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다. “친구들에게 집안 문제나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재형씨는 말했다. 대학에서도 성적은 바닥이었다. 재형씨는 평균 평점 3.3 이상만 되면 2년 동안 등록금을 면제받는 장학생이다. 재형씨는 1학년 1학기 평점 1.72로 학사경고를 받았고(평점 1.75 이하이면 학사경고를 받는다), 2학기 때는 학사경고를 겨우 면했다(평균평점 1.82). 지난해 2학기 때 0.88로 다시 학사경고를 받았다. 영어 성적은 뛰어났지만, 미학이나 문학사 성적은 나빴다. 지난해 2학기 때는 잘 하던 영어 과목마저 출석 미달로 F를 맞았다.


그런 재형씨에 대한 기대를 이교수는 접었다고 친인척들은 말했다. 대신 이교수는 재형씨의 동생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동생들은 재형씨와 나이 차가 꽤 난다. 어머니 우 아무개씨의 건강 때문에 동생을 늦게 보았다. 이교수가 캐나다 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 낳은,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과 초등학교 6학년인 남동생은 캐나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이교수는 국내에 들어와서도 두 자녀를 외국인 학교로 보냈다. 재형씨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2월 이교수는 기러기 아빠가 되기로 작정하고 부인과 두 자녀를 미국으로 보냈다. 집에는 아버지 이교수와 할머니만 남게 되었다. 재형씨에게 말벗이 사라진 셈이다.




재형씨를 면회했던 이교수의 동료 교수는 재형씨가 미운 오리새끼 심리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보았다. 아버지를 비롯한 엘리트 집안에서, 안으로만 쌓아두었던 콤플렉스가 한꺼번에 폭발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6월12일 새벽 미국에서 귀국한 어머니 우 아무개씨(46)는 “군대를 보낸 뒤 미국을 가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 우씨는 2년 전 부모 토막 살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의 일처럼 여겼다며, 똑같은 재앙이 자신에게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우씨는 아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해서, 재형이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범행 이유가 궁금하다”라고 우씨는 말했다.


증가하는 존속 살해 사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하이드 박사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가 존속 살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학대는 사랑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부모의 애정 표시를 자녀는 때로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자녀의 눈높이로, 하루에 한번씩 눈빛을 마주하라’. 듣고 지나치기 쉽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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