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돈’이 탈북 지원?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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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미국 자금 유입 논란…“내정 개입 일환” 시각도



반관 반민 성격을 지닌 미국 비영리 기구가 탈북자들의 망명에 자금을 지원했는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7월22일 일본의 <마이니치 신분>은 ‘중국내 재외 공관을 무대로 잇달아 일어나는 탈북 주민 집단 망명 사건에 미국 의회의 자금을 제공받는 미국 국립 민주주의기금(NED)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망명을 돕고 있는 한국 비정부기구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민주주의기금 칼 거쉬만 이사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 체제를 흔들려는 목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 보도에 대해 민주주의기금 공보 담당자인 제인 자콥슨 씨는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는 한국 시민단체에 재정 지원을 하지만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돕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민주주의기금의 지원을 받은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다. 민주주의기금의 홈페이지에는 2000년도 아시아 지역 지원 현황이 올라 있다(여기에는 ‘Small Grants=Big Impact’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그 해 7만8천 달러를 지원받았다.

북한 인권 문제가 남한과 국제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캠페인을 전개하는 용도로 4만3천 달러를, 북한 인권과 관련해 비정부기구의 전략 회의를 개최하는 비용으로 3만5천 달러를 지원받았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지난 2월 일본 도쿄에서 8개국 16개 단체 대표가 참석한 북한 인권과 관련한 국제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올해 대략 10만 달러를 지원받는다고 밝혔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민주주의기금으로부터 4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이 단체는 영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국문판·영문판 기관지를 제작한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기관지인 를 국문판 2천2백부, 영문판 7백부를 제작하고 외국으로 보내는 데 이 돈을 사용한다”라고 밝혔다.


민주주의기금은 북한의 인권 보호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민주주의기금은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었다. 단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사업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박원순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2∼3년 전 민주주의기금의 관계자가 사무실을 방문해 집요하게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한다면 재정 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고 이야기해 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는 대체로 보수파였다고 설명하고 제안을 거절했다.

민주주의기금은 탈북자 청년 모임인 백두한라회에도 재정 지원 의사를 보였다. 당시 대표였던 김성민씨는 “지난해 8월 미국인 관계자를 만나 재정 지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나 모임을 하는 데 그렇게 큰 돈이 들지 않고, 미국 의회에서 나오는 돈을 받고 어떻게 책임지나 싶어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기금의 지원을 받은 시민단체들은 <마이니치 신분>의 보도에 당혹해 하면서도 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한기홍 대표는 “유럽 쪽에서 지원받았다면 이렇게 논란이 됐겠느냐? 미국 쪽에서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은 “민주주의기금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국제회의 때 이미 밝힌 사항이다.

북한 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국내 재단은 전무하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처참한 상황을 생각하면 솔직히 누구 돈이든 받아 탈북자를 도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단체 윤 현 이사장은 “우리는 이른바 기획 망명과는 무관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가 프로젝트를 제안해 기금을 합법적으로 지원받았는데도 논란이 잇따르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기금의 전력 때문이다. 민주주의기금은 1983년 레이건 정부 때 전세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주주의기금은 기금 재원의 대부분을 미국 의회로부터 받지만 그 집행은 독자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집행 결과는 미국 의회에 보고한다.


“냉전 때는 CIA, 냉전 후에는 민주주의기금”


이 단체는 그동안 동유럽권과 중남미에서 정권 붕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왔다. <뉴욕 타임스>는 1997년 3월 기밀 해제된 의회 청문회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냉전 때는 중앙정보국을 통해, 탈냉전시대에는 민주주의기금을 통해 각국의 내정에 꾸준히 개입해 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1980년대 중반 민주주의기금은 폴란드 자유노조의 활동을 지원하려고 해외에 망명한 폴란드인에게 5백만 달러를 제공했다. 1990년 니카라과 대선 때는 우익 계열 야당 쪽에 1천2백50만 달러를 지원해 정권 축출 작업을 벌였다. 지난 4월 실패로 끝난 베네수엘라 반 차베스 쿠데타에도 민주주의기금이 깊숙이 관여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최근 보도했다.


미국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윌리엄 블럼 씨는 “민주주의기금은 민주주의의 ABC를 가르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기금이 개입했던 나라에서는 이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다. 단지 그 나라의 선거에서 민주주의기금이 선호하지 않는 정당이 이겼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기금은 비정부기구가 아니고 사실상 정부 조직이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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