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돌아오겠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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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인간 방패’ 3명 이라크로 출국…국내에선 파병 반대 운동



2월7일 오후1시20분 인천국제공항. 출국 수속을 마친 한상진씨(38)는 긴장된 표정이었다. 이영화씨(44)는 실내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이씨의 딸 남효주양(17)도 초조한지 입술을 자주 깨물었다. 배웅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 굳어 있었다. 잠시 뒤, 눈빛을 주고받은 이들은 ‘작전’을 개시했다. ‘한국 이라크 평화팀 출국 기자회견’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몇몇 사람들은 ‘전쟁 반대, 평화 실현, 인간방패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었다. 공항경찰대가 출동했지만 기자회견은 충돌 없이 시작되었다.


세 사람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이라크 폭격을 막겠다는 ‘인간 방패’로 나섰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맨몸으로 이라크로 떠납니다.” 효주양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서둘러 탑승했다. 3시10분 세 사람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했다.
지난해 9월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라크로 향하는 평화운동가들의 인간 방패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자원자가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 사람은 선발대이고, 앞으로 추가 지원자가 떠난다.


국내 인간방패운동은 지난해부터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선발대 대표 격인 한상진씨가 물꼬를 텄다. 한씨는 대인지뢰금지운동과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벌이는 ‘함께하는 사람들’소속 평화운동가다. 국제 연대에 앞장선 그는 지난해 11월 창립된 국제비폭력평화연대의 국내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럽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인간 방패 소식을 접한 그는 극비리에 지원자를 모집했다. 공개적으로 했다가는 출국을 저지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씨가 몸 담았던 평화 단체를 중심으로 지원자가 꾸려졌다.


‘죽으러 가는데 누가 지원할까?’라는 한씨의 우려와 달리 지원자가 많았다. 대구 동구 참여연대 대표인 이영화씨도 주저하지 않고 자원했다. 그런데 이씨의 딸 효주양(17)이 동행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비디오 키드답게 인간방패단 활동을 영상에 담고, 인권 공부도 하겠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효주양의 뚜렷한 주관을 잘 아는 이씨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전교조 소속 교사인 남편도 인간 방패 지원에 반대하지 않았다. 세 사람 외에 2진, 3진 등 추가 지원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 단체, 학생단체, 여성운동 단체에서 지원한 연합군이다(아래 사진 참조).


“전쟁 터지면 민간 시설 육탄 방어”


지원자가 꾸려졌고 선발대도 떠났지만 이라크행은 산 넘어 산이다. 1991년 주이라크 한국공관이 폐쇄되면서 국내에서는 이라크 비자를 받을 수 없다. 이들은 우회로를 택했다. 미국의 평화단체 ‘광야를 향한 외침(Voice in the wilderness)’을 통해 이라크행 비자를 신청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부터 공개적으로 ‘이라크 평화팀(Iraq Peace Team; IPT)’을 모집해 현재 바그다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폭격이 임박하면서 이 단체를 통한 비자 발급도 쉽지 않다. ‘이라크 평화팀’은 ‘이라크에 들어가는 것만 보장되고 탈출할 방법은 없다. 전쟁이 터지면 끝까지 인간 방패로 남을 결사대만 비자 신청을 받고 있다’고 <시사저널>에 전해왔다.


이번 선발대도 이라크행 비자를 받지 못한 채 출국했다. 선발대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뒤 돌파구를 찾을 작정이다. 이라크에 들어가면 주 폭격 대상지인 바그다드에서 민간 시설을 육탄 방어한다. 한상진씨는 “다른 평화운동과 함께 비군사시설 앞에서 평화 시위를 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긴박하면 효주양을 비롯한 일부는 요르단에 남고, 결사대를 꾸려 이라크로 들어갈 계획이다.


선발대가 출국한 뒤,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국 이라크 반전 평화 지원팀’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원 활동뿐 아니라 국내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벌인다. 지원팀을 이끌고 있는 손이덕수 교수(대구 가톨릭대)는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하면 우리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출국대를 빠져나가기 전까지 이영화씨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영정 사진을 찍는 것 같아 싫다. 살아서 돌아오겠다.” 그녀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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