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감호소, 없애나 놔두나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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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호법 존폐 논쟁 ‘팽팽’…법무부는 대체입법 추진
수은주가 37℃를 오르내리던 지난 8월11일 낮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자리한 청송보호감호소에 한 무리의 외부인들이 들어갔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 일행이었다. 국회 법사위원으로 있는 노의원은 이 날 사회보호법 폐지 당론에 따라 감호소 현장을 참관하러 내려온 길이었다.

노의원 일행은 송영삼 제2감호소장의 현황 보고를 들은 다음 감호소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감호자 7명을 만났다. 감호자들은 봇물 터지듯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도 우리를 다시 죽이자는 이중 처벌법이다.” “교도소에까지 면회 오던 아내와 가족은 감호소로 넘어오면서 발길을 끊었다. 감호소는 가정파괴소이다.” 감호소를 둘러본 노회찬 의원은 “법무부가 단순 절도사범을 제외하는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중 처벌의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법을 실질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회보호법은 1980년 5월 전두환씨를 비롯한 신군부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뒤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발의한 법률이다. 당시 정통성 시비를 의식한 신군부는 사회 정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불량배 일제 검거에 관한 계엄 포고령 13호’를 발동하고 전국에서 4만여 명을 잡아들여 삼청교육을 실시했다. 삼청교육 만료 시간이 다가오면서 이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불안해진 신군부는 장기 격리하기 위해 국보위를 통해 법률 제3286호로 사회보호법을 제정토록 하고 청송감호소를 설치했던 것이다.

이같은 태생적 한계를 가진 사회보호법은 그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반인권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부분적인 개정을 거쳐 계속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회보호법 폐지 권고안을 냈고, 여야 정치권도 앞다투어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1백24개 시민·인권 단체들이 만든 ‘사회보호법 폐지 공동대책위원회’와 공조해 폐지 법률안을 발의한 데 이어 앞장서서 청송감호소 폐지를 당론으로 이끌어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도 같은 당 의원 4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갑자기 제출된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안은 제대로 심의 한번 거치지 못한 채 16대 국회 회기를 넘기면서 자동 폐기된 채 17대 국회의 숙제로 넘겨졌다.

청송보호감호소 재소자들이 지난해 여름 집단 단식투쟁에 들어가자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직접 감호소를 방문해 진화에 나서 법무부도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그 후 가출소 대상을 확대해 감호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절도사범들을 대거 석방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9백16명, 올해 상반기에만 3백32명이 청송감호소에서 풀려났다. 현재 남은 감호자는 2백20명. 주로 강도·강간 등 강력사범 출신과 조직폭력 전과자들이다.

법무부는 일단 감호자를 대량 풀어줌으로써 사회보호법에 대한 인권 차원의 사회적 비난을 무디게 하고, 감호소 제도·기능·조직을 계속 유지하는 대체입법안을 마련하는 데 전력 투구했다. 지난해부터 법무부는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을 주축으로 학자와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책위원회를 만들어 10여 차례 토론회를 가졌다. 정책위에서는 법무부에 사회보호법을 유지하되 대상과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선에서 대체 입법을 하는 쪽으로 권고안을 냈다.
안경환 학장은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 마련 권고 과정에 대한 경위를 묻자 “언론에 할말이 없다”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법무부 보호국 손기호 보호과장은 “현재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이 완성돼 정부 각 부처 조회 작업을 거치고 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별개로 대도시 인근에 개방형 감호소를 설립할 계획으로 예산 부처와 협의 중이다. 청송은 감호소를 없애고 교도소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최근 법무부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그동안 인권 시비가 있던 조항에 몇몇 보완 조처를 넣은 것을 빼면 명칭만 바뀌었을 뿐 기존 사회보호법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사회보호법이 가칭 ‘심신장애범·특정상습범 등의 재활 치료 및 재범 방지에 관한 법률안’으로 바뀐 것이다. 주요 적용 대상은 강도·성폭력 사범, 일반 상습 조직폭력 사범 등이다. 감호 집행 개시 유예제도라든지 비례성 원칙 명문화, 감호 선고 요건 강화 등 그동안 시비가 된 조항들을 보완하기는 했지만, 이 법률안의 근본 취지는 여전히 ‘이중 처벌 금지’라는 헌법 정신과 충돌하고 있다.

법무부의 사회보호법 대체입법안 추진에 대해 현재 열린우리당은 사회보호법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지난해 당론에서 큰 변화가 없다. 몇 차례 당·정 협의 과정에서도 법무부의 대체입법안에 대해 당이 반대하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다수 의원이 사회보호법 폐지를 참여정부의 인권과 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폐지 법률안을 냈던 최용규 의원이 다시 인권·사회 단체들과 연대해 가칭 ‘사회보호법 폐지 및 심신장애자 재활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다. 이 법률안은 정신질환자와 마약류 및 알코올성 약물중독 범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치료 보호를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사회보호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대체로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고 있다. 한나라당 법사위 김성조 의원은 “사회보호법은 대체 입법이나 대도시 주변 감호소 설치 등으로 졸속으로 처리하기보다 폐지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도 검사 출신 일부 법사위원들을 중심으로 법무부의 대체입법안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최연희 법사위원장측은 사견을 전제로 “사회보호법을 한번에 폐지하는 것보다 대체 입법을 거쳐 서서히 폐지해 가는 것이 낫다는 당내 의견도 많다”라고 전했다.

법무부 대체입법안이 공개되면 청송감호소는 다시 한번 술렁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규모 단식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청송감호소 재소자들이 다시 결사적인 저항에 나서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 법률안에 따르면, 현재 감호소에 묶여 있는 감호자들은 부칙 제 3조에 따라 재론의 여지 없이 자동으로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 이 법률안이 실현되더라도 각종 보완 조항과 예외 조항에 따라 구제할 수 있는 신규 감호 대상자들과 달리 1980년대 군사 정부의 획일적이고 반인권적 기준으로 확정된 이들에 대한 감호는 새로운 법에 의해서도 계속 유효하다는 뜻이다. 이런 모순점에 대해 법무부측은 ‘가출소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감호소 제도와 조직을 계속 살려 가려는 법무부에 대해 개혁 입법을 강조하는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회보호법의 운명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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