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과 검찰, 격돌하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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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훈련기 사업 수사 놓고 ‘비리 고발→무혐의 처리 조짐→재감사’ 갈등
고등훈련기(T50) 사업 수사를 둘러싸고 감사원과 검찰이 갈등하고 있다. 감사원이 비리 혐의가 있다고 검찰에 고발한 이 사업에 대해 검찰이 혐의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내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전례 없이 감사원 실무자에게 서면 진술서를 보내 감사원 관계자들을 격앙케 했고, 감사원은 이에 맞서 고등훈련기 사업을 재감사하는 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갈등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나서서 양 기관의 고위층이 회동키로 했으나 갈등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군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고등훈련기 사업은 2011년까지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고등훈련기 94대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되는 체계 개발 사업에 2조1천1백18억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되는 양산 사업에 4조2천7백86억원 등 총사업비가 6조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문제는 당초 한국항공우주산업(한국항공) 80%, 미국 록히드마틴 사(록히드 사) 20%였던 양산 사업의 주체가 한국항공이 100% 도맡는 것으로 바뀌면서 발생했다. 2002년 2월19일 록히드 사와 한국항공은 ‘고등훈련기 양산 사업 물량기준 합의서’(MOU)를 체결했다. 록히드 사가 고등훈련기 주날개 생산 등 20%에 해당하는 사업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한국항공이 록히드 사가 제안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주날개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고 하자 록히드 사는 보상금 8천만 달러(세금 3천만 달러 제외)를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2003년 7월4일부터 이 사업은 한국항공이 도맡게 되었다.

이후 부패방지위원회에는 ‘공군이 보상금 산출 근거 자료를 조작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 한국항공이 록히드 사에 지급해야 할 보상금을 정부가 대신 부담하게 해 국고를 낭비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부패방지위원회로부터 내용을 넘겨받아 지난해 12월8일부터 12월24일까지 고등훈련기 양산사업 추진 실태를 감사한 감사원은 지난 6월18일 ‘고등훈련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총 1억1천만 달러(약 1천3백억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의 발표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1천억원이 넘는 국고가 손실되었다는 것이 충격을 주었다.

감사원은 3일 뒤인 6월21일 전윤철 감사원장 이름으로 한국항공 길형보 전 사장 등 민간인 4명과 공군 관계자 3명을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감사원은 또 국방부와 공군 관계자 9명에 대해서는 파면 등 중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 고발 직후인 6월3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고건호 부장검사)는 수사관 10여 명을 투입해 한국항공 사무실과 핵심 임원들의 집, 경남 사천에 있는 공장 등을 압수 수색했다. 8월28일에는 록히드 사 본사 고위 임원을 소환 조사했고, 9월7일에는 한국항공 길형보 전 사장을 조사했다.

그러나 9월에 들어서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감사원이 감사를 잘못한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검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할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감사원 관계자들이 검찰 수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인 8월31일, 검찰 수사팀은 고등훈련기 감사를 담당했던 감사원 실무자에게 참고로 조사할 것이 있으니 검찰에 나와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감사원측은 응하지 않았다. 대신 9월20일 ‘의견서’를 검찰에 보냈다. 감사원 고발이 아무 문제가 없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검찰 수사팀은 10월6일 실무자에게 구체적인 질의 내용을 기록한 서면 진술서를 보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쯤 되자 감사원은, 검찰이 감사 담당자가 감사를 잘못했다는 쪽으로 사건을 몰고 가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리하려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11월 초에 두 기관 화해 주선

이 과정에서 감사원 실무자와 수사 담당 검사는 “고발한 주체가 감사원장이니 기관 앞으로 다시 서류를 보내라” “그렇게는 안하겠다”며 언쟁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훈련기 생산에 들어가는 제조 원가 문제를 놓고도 의견이 달랐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고등훈련기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 가운데 군측이 주장하는 고정비용 70만 달러는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 서류가 없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잘못된 것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10월11일부터 감사원이 고등훈련기 사업에 대한 전면 재감사에 착수한 것은 검찰의 ‘도전’에 대해 감사원이 ‘응전’한 성격이 있다. 물론 이번 감사는 지난번 감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번에는 ‘보상금’을 감사했는데 이번에는 고등훈련기 생산에 드는 ‘원가’에 대한 감사가 초점이다. 고등훈련기 사업만을 감사하는 것도 아니고 전반적인 군 무기체계 연구 개발에 대한 감사의 한 줄기로 고등훈련기 사업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고발한 고등훈련기 사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관련자들을 단죄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어도 감사원이 다시 이 사업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을지는 의문이다. 감사원의 추가 감사 결과 고등훈련기 생산에 드는 비용에서 ‘거품’이 발견될 경우 검찰 수사는 다시 물줄기가 바뀔 수 있다. 감사원은 고등훈련기 사업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관련자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과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들이 11월 초순 만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두 기관 고위 인사들의 만남을 주선했다”라고 밝혔다. 사정기관끼리 과도하게 갈등하는 것을 막고 접점을 찾아보기 위해 청와대가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미온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감사원측과 감사원이 무리한 감사를 했다고 보는 검찰의 시각 차가 이 만남으로 풀릴지는 의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감사원이 진행하고 있는 고등훈련기 사업에 대한 2차 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검찰이 사건 처리를 유보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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