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결론은 “북한 공격”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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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강화·정밀 폭격 포함한 ‘핵 해결 강공 전략’ 수립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 강경파의 대응책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워싱턴의 관측통들 사이에 ‘강경파(네오콘·<시사저널> 제710호 참조)들이 북한 핵 문제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다. 극적 타결보다 막다른 길로 치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 역시 이미 공개적인 장에서 비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최근 동북아 관련 웹사이트로 유명한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가 주최한 한반도 세미나에서 그레그 전 주한대사·샬리카쉬빌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 등은 “이제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동북아의 역내 국가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지역 국가들에 대해 ‘미국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큰일난다’는 경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에서 전쟁 가능성을 직접 거론하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소장이 지난 6월4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주최 세미나에서 “북한 핵 사태로 인해 1년 이내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핵 사태가 발생한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북·미 양자 회담을 거부한 채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 노력만 계속해 왔다. 이에 대해, 입으로는 외교적·평화적 해법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무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사전 포석 노력은 지난 6월3일 폐막된 G8 회담(G7+러시아)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행사 정도로 여겨져 온 G8 회담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이례적일 정도로 강경한 메시지를 발표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법에 따른 다른 조처(other measure)’를 사용할 수도 있음을 밝힌 것이다. ‘다른 조처’의 의미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곧바로 ‘무력 사용에 대한 승인’이라고 기정사실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경제 제재나 해상 봉쇄까지만을 함축하는 표현’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칼자루를 쥔 부시 행정부의 행동 반경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G8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은 일종의 치고 빠지기식 외교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 문제 ‘평화적 해결’과 ‘추가 조처’라는 상반된 해법을 애매하게 병행해 놓고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 설명할 때는 ‘한국도 추가 조처에 합의했다’는 식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가 조처’가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더욱 강경한 조처’로 발전했고, 급기야 이번 G8 회담에서 ‘다른 조처’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조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이에 대해 봉쇄 강화와 정밀 폭격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단언했다. 우선 대북 봉쇄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G8 회담 직전인 지난 5월31일 폴란드 쿠라프트에서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봉쇄안(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PSI)’을 국제 사회에 제안했다. 존 볼턴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6월4일 하원 국제관계위 청문회에서 “대량살상무기나 미사일 거래를 육상이나 항공·해상에서 합법적으로 검색·저지하는 방안을 우방국들과 협의하고 있다”라며 부시의 봉쇄안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마약 및 무기 거래 등 이른바 ‘북한판 블랙 이코노미’를 차단하기 위한 이같은 봉쇄 방안이 이미 일본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6월9일 니가타 항에 입항할 만경봉호에 대해 경찰과 정부 관리 1천1백명 이상을 동원해 철저하게 검색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 6월8일 만경봉호 입항을 포기하는 조처를 내렸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대북 봉쇄는 베이징에서 있을 다자 회담이 무산되자마자 본격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베이징 회담의 원래 목적이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보다는 중국 및 국제 사회에 대한 명분 축적용인 이상, 이 회담 실패가 미국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 회담이 실패로 끝나면 미국은 곧바로 북한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게 된다. 중국의 경우는 베이징 회담이 실패할 경우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다. 북한의 동맹국 중 러시아 하나 정도가 변수인데 러시아 역시 이미 미국 쪽으로 말을 갈아탄 상태이다. 워싱턴 외교가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러시아가 몸조심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퍼져 있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정치·경제적 봉쇄를 통해 북한 체제 자연 붕괴를 시도한다는 것이 바로 ‘다른 조처’의 1단계이다. 그 내용 중에는 봉쇄 정책으로 인해 북한 내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탈북자가 대량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행동 계획도 이미 잡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량 탈북자 사태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 등을 동원해 국제 사회가 떠맡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체면을 살리면서 탈북 러시를 가속화한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봉쇄를 통한 자연 붕괴가 실패할 경우, 그 다음 조처는 북한의 핵 시설이나 지도부에 대한 정밀 폭격이다. 미국 강경파는 정밀 폭격이 한반도에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목표 시설만 제거할 수 있다는 식으로 국제 사회를 설득하고 있다. ‘미국은 원래 이라크에서 100% 명중률을 과시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북한을 겨냥해 또다시 실험에 나서겠다는 것’이라는 관측이 워싱턴 외교가에 퍼져 있다. 북한에 대한 정밀 폭격을 통해 군사 기술의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단일 지배 체제를 굳히겠다는 미국 강경파의 위험한 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이 이토록 위험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안이한 상황 인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평화를 원하거든 강경한 목소리를 내라’는 수준의 무책임한 발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를 ‘실용주의적 접근’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일각에서 ‘최근 폴 월포위츠 부장관이 주한미군 전력 증강과 재배치를 강행하겠다고 강조한 배경에 북한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둔 비상 계획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1. 정치·경제 봉쇄를 통해 북한 체제 자연 붕괴를 시도한다.
2. 탈북자가 대량 발생하면 국제기구를 동원해 이들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탈북 러시를 가속화한다.
3. 북한 체제 자연 붕괴 작전이 실패할 경우 북한 핵 시설이나 지도부에 정밀 폭격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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