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앞의 등불’ 동북아 환경 공동체
  • 남상민 통신원 ()
  • 승인 2000.03.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중국·일본, 정치적 주도권 경쟁 매달려 협력 사업 지지부진
황사가 날아오는 봄철이다. 중국 북서부 지역에서 솟아오른 사막 먼지가 한반도를 덮고 일본을 지나 태평양까지 날아가는 황사는 오랫동안 친숙한 자연 현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라 대기 오염 물질 배출량이 급증하자 황사의 성격이 바뀌었다. 황사는 숱한 오염 물질이 발생지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국경을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다. 오염 물질을 싣고 동북아시아 하늘에 깊고 넓게 퍼지는 황사는 이 지역 국가들이 정치적·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환경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과 한국에서 쏟아내는 막대한 유해 물질을 끌어안아야 하는 서해의 오염 현상도 동북아 국가 간의 생태적 의존성을 웅변한다.

한·중·일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10위권

동북아 지역의 환경은 지구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이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10위권에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모두 속해 있다. 이 국가들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는 현실은 이것이 동북아 지역을 넘어 지구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또 이들은 열대림 목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지역 환경 협력 속도는 매우 느리다. 냉전이 해체되어 환경 논의의 장벽이 무너지고,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리우회의)를 계기로 지역 환경 문제와 국가간 협력의 중요성을 각국 정부가 인식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정부간 환경 논의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협력의 제도화나 협력 사업 이행은 다른 지역과 달리 지체를 면치 못했다. 1970∼1980년대에 이미 월경성 대기 오염 물질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환경 협력의 제도화를 이룬 유럽이나 북미 등과 달리 국가간 정치·경제 조건의 현격한 차이, 협력 방향에 대한 이해 차이 등으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었다. 특히 다른 지역은 국가간 협력의 제도화에 앞서 이루어진 전문가들의 활발한 연구로 지역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지만, 동북아는 이같은 조건 없이 국가간 환경 논의가 먼저 시작되었다. 이런 한계로 인해 동북아의 환경 협력을 위한 체계(표 참조)가 다양한 것에 비해 실질적인 환경 문제를 개선한 성과는 전무하다. 아직까지는 인식 공유라는 초기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초 서울에서 제6차 동북아 환경 협력을 위한 고위급 회의, 3월 말 인천에서 북서태평양 보전계획 5차 정부간 회의가 각각 열려 재정적·행정적 토대를 체계화함으로써 지역 환경 협력 제도화에 중요한 진전을 보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90년대의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협력 기반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 동안 협력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살펴보면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걸림돌은 서로 다른 정치적·경제적 이해이다. 이번 동북아 고위급 회의에서는 각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자체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 동안 에너지 및 대기오염 분야 시범 사업 등의 비용을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 왔지만, 이런 외부 의존이 사업의 안정적 추진에 제한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체 재원 조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정치·경제 이유로 재원 마련에 소극적

하지만 필요성에는 모든 국가가 공감하면서도, 자국의 재정적 기여에는 소극적이었다. 고위급 회의의 제안자이기도 한 한국 정부는 10만 달러를 기금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각국의 적극적 동참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각국은 종전의 주장만을 반복했다. 러시아는 돈을 내는 대신 전문 인력 등 현물로 기여하겠다고 주장했고, 중국은 각국의 경제 조건을 반영해 책임 수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특정 국가에 부담이 과중하게 지워져서는 안된다고 거듭 주장하며 자국의 경제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기금 조성 논의는 설립에 대한 원칙적 합의만을 이루고, 현재 고위급 회의 사무국을 맡고 있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참가 국가의 자발적 기여를 위해 노력하자는 선에서 매듭지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적인 이유로 기금 마련을 꺼린다면, 일본은 경제적 이유 못지 않게 정치적 이해 때문에 기금 출연에 소극적이다. 일본은 아·태 환경회의나 동아시아 산성비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주도하면서 거의 모든 운영 비용을 부담해 왔다. 이 두 가지 지역 협력 체계는 참가국 범위를 동북아에 한정하지 않고 태평양 혹은 동아시아 전체 국가를 포괄하고 있다. 즉 일본은 동북아보다는 아·태 지역 전체의 환경 협력 체제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자국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9년에 처음 열린 산성비 모니터링 네크워크의 정부간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이 체제 운영 과정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은 동북아에 한정된 다자간 협력보다는 공적 개발 원조(ODA)를 이용한 양자간 환경 협력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일본은 1991년에 녹색 원조 계획을 세워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어 왔고, 특히 교토 기후 변화 협약 회의를 계기로 ‘21세기를 향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발의’를 채택해 공적 개발 원조를 통한 환경 교육과 기술 협력 부문의 양자간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협력과,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갖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아황산가스의 90%를 배출하고 있는 중국은 동북아 오염 유발의 책임 소재 규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은 해양 오염보다는 국내의 육상 오염 해결에만 관심을 갖는 인상이다. 동북아 환경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한·중·일 3국의 이러한 입장 차이와 어느 한 나라의 참여 없는 지역 협력은 의미가 없다는 현실은 환경 논의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정치적 이해 차이나 주도권 경쟁 못지 않게 중요한 장애물은 아직까지 지역 환경 문제의 정확한 현황에 대한 과학적 합의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기 오염 물질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 국립환경연구원의 결과에 따르면, 1995년 이후 4년간 한국에 내린 황산염의 평균 12∼17%가 중국에서 왔으며, 특히 북서풍이 불 때는 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IBRD) 등이 지원한 동아시아 장거리 이동오염물질 평가 프로젝트(RAINS-Asia)는 1990년 한국과 일본의 총 황산화물 강우에서 중국의 기여율을 각각 17%로 추산했다.

이에 반해 중국 학자의 한 연구 결과는 중국 오염 물질이 일본 황산화물 강우에 기여하는 비중을 3.5%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국제 환경 저널>에 실린 일본 학자의 논문은 그 비중을 거의 50%로 추정했다. 대기 오염 물질의 발생원과 피해 지역의 상호 관계에 대한 각국 학자들의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 해결을 위한 이행 목표를 합의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환경 문제에 관한 과학적 합의도 미흡

이러한 문제는 동아시아 산성비 모니터링 네크워크와 한국 국립환경연구원이 주관하고 있는 장거리 이동 대기 오염 물질에 관한 워크숍 활동을 통해 해결될 여지가 있지만, 한·일 양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체계 간의 사업 중복과 경쟁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이다. 동북아 지역 협력 체계 모두가 제한된 재정적·인적 역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서로 견제하느라 작은 성과나마 나누어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고위급 회의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상승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른 협력 체계의 담당자를 초청하여 각각의 활동을 발표하도록 했지만, 효율적인 조정과 통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각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 간의 이해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각 국가에서 관련 부처간 입장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교부는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적극 모색하고 있지만 환경부는 실질적 협력 사업의 진행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환경부는 1999년부터 열리고 있는 한·중·일 3국 환경장관 연례 회의를 동북아 핵심 환경 논의 체계로 발전시킬 생각이지만, 외교부는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 정도만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이해 차이는 필연적이지만, 협력체 간의 연계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적절히 조정되어야 한다.

동북아 환경 협력 과정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범 사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지역 협력에 대한 대중의 진지한 관심이다. 이런 측면에서 3국 환경장관 회의와 고위급 회의에서는 동북아 지역 환경 정보에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동 웹사이트를 구성하기로 했다. 동북아 대중이 환경 재난이 발생하거나 황사가 불 때만 지역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지역 협력의 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