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나간 올림픽, 추악한 돈놀음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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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향응 파문으로 검은 이면 드러나 …상업화 치달으며 ‘파울 플레이’ 연발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남작이 살아서 지금의 올림픽을 본다면 아마 통탄할 것이다. 개최지 선정에서부터 성화가 꺼지고 대회가 끝나는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막대한 돈이 오가는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이기 때문이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 개인과 출신 지역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승부는 둘째 문제다…. 이런 아마추어 스포츠와 올림픽의 고귀한 정신은 빛이 바랜 지 오래이다.

더구나 최근 터져나온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는 추문은 인류가 왜 올림픽을 하느냐는 근본적인 회의까지 들게 한다.

IOC 위원(위원)들이 뇌물과 향응을 받는다는 사실은 솔트레이크시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 선정 과정에서도 막대한 뇌물과 향응이 오갔다는 사실이 불거지고 있다. “IOC 위원 딸의 구두 크기까지 알고 있다”

올림픽 개최 후보 도시들이 위원들을 접대하는 데 막대한 돈을 퍼붓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위원들에게 1등석 항공편과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리무진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으로 알려져 있다.

한 예를 보자. 91년 6월 둘째 주 영국 버밍엄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열렸다. 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 유치위원회는 여기서 경쟁자인 네 도시를 물리쳐야 했다. 이들은 버밍엄 교외에 있는 최고급 연회장 하이베리 하우스를 빌려 위원들을 초대했다.

다음은 이 곳에서 일했던 사람의 말이다.

“6개 정도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둥글게 앉았다. 연어·새우 등 갖가지 생선이 얼음을 깨끗이 깐 접시 위에 놓이고, 손님이 고른 재료를 일본인 주방장이 눈 앞에서 튀겨 주었다.”

이곳에서 위원들은 최고급 일본 음식과 술, 내용을 알 수 없는 일본식 선물을 받았다.

버밍엄 총회에서 다섯 후보 도시들이 뿌린 돈은 모두 합해 5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까지 경합했던 나가노와 솔트레이크시티 두 도시는 유치단 수만도 천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에 대한 로비가 얼마나 치열한지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유치 경쟁에 참여했던 한 후보 도시 관계자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어떤 위원 둘째딸의 구두 크기까지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향응과 뇌물을 거부하는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65년 올림픽 개최지로 입후보한 도시에서 총회를 할 때 리셉션이나 칵테일 파티를 여는 것을 금지했다. 또 입후보 도시에서 총회에 참가할 수 있는 유치단 인원을 6명 이내로 제한했다. 특히 위원에게 선물을 주는 일을 일절 금지했다. 그러나 이런 조항은 그야말로 휴지 조각일 뿐이다. 후보 도시와 위원들은 이런 조항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 이는 사마란치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적어도 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이런 현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76년 몬트리올 대회가 20년 동안 부채를 갚아야 할 정도로 엄청난 적자를 내자 이런 부담을 지려는 도시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80년 모스크바 대회도 반쪽 대회였던 터라 매력을 끌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 때부터 변질

분수령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었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조직위원회가 2억1천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공표한 뒤부터 올림픽과 위원을 대하는 전세계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때부터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신청하는 도시가 적게는 다섯 곳에서 많게는 열 곳까지 늘어났다.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해 2차 투표까지 가는 등 과열 양상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크고 작은 로비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겨울 올림픽은 원래 빚잔치였다. 겨울 올림픽이 흑자 대회로 돌아선 것은 92년 대회 이후부터이다. 그래서 90년대 들어 유치 경쟁에 더욱 불이 붙었다. 더구나 90년대 중반부터 여름 올림픽과 겨울 올림픽을 2년 터울로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원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상업화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텔레비전 방송사들이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전세계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중계료로 내놓은 돈은 무려 6억3천3백만 달러이다. 60년 로마올림픽 때는 단돈 백만 달러였다. 그나마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들어간 돈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텔레비전 덕택에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올림픽 후원업체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올림픽이야말로 전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자사 제품을 광고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삼성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이건희 회장이 위원이 된 것을 전후해 스포츠를 통해 삼성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은 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부터 정보 통신 분야 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가 되었다. 삼성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도 공식 후원 업체로 등록했다. 올림픽 공식 후원업체에는 전세계 기업을 통틀어 10∼12개 정도만 참여할 수 있다. 공식 후원 업체가 되기 위해서 한 기업이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지불하는 금액은 현재 3천만∼4천만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올림픽 상업화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곳은 바로 IMG나 ISL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마케팅 회사들이다. 이 분야 선두 업체인 IMG 사는 60년 설립되어 현재 세계 35개국에 지사 1백5개를 두고 있다. IMG는 프로 선수들을 위한 대행사(agency)로 출발했으며, 아널드 파머·타이거 우즈·박세리(골프), 조 몬태나(미식 축구), 나브라틸로바·존 메켄로(테니스) 등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모두 이 회사 소속이다. IMG는 윔블던 프로 테니스 대회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와 한국의 프로 축구 중계도 대행하고 있다.

ISL은 82년 설립된 기업이다. 아디다스가 51%, 일본 덴츠가 49% 지분을 갖고 있다. ISL은 올림픽·월드컵·세계육상선수권대회·세계농구선수권대회 등 규모가 큰 세계 스포츠 대회를 대행한다. 이 기업의 대표적 사업은 올림픽을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인 ‘The Olympic Program(TOP)’이다. 이 회사는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서울올림픽과 캘거리 겨울 올림픽을 대상으로 한 ‘TOP 1’를 통해 1억 달러를 벌어들인 데 이어 ‘TOP 2’와 ‘TOP 3’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 모든 상업화를 총지휘한 사람이 바로 사마란치 위원장과 아디다스 회장이었던 호스트 다슬러이다. 사마란치 이전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들은 기본적으로 올림픽은 사업이 아니며, 스포츠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끼어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수입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각종 기부금과 올림픽 기념 우표·주화·메달 판매 수입이 고작이었다.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늘 적자투성이였다.

그러나 사마란치가 개입한 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스위스에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는 원래 몬르포라고 부르는 일반 주택 2층의 방 3개에 직원 11명을 둔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사마란치가 회장이 된 이래 본부는 공원에 둘러싸인 1급 터에 60여 명의 스태프를 갖춘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이 사무소는 갈수록 확장되었고 올림픽하우스와 지하 통로로 연결되었다. 또 93년에는 4천만 달러를 들여 스위스 로잔에 올림픽 박물관을 새웠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세계적 단체로부터 조달되었다. 사마란치는 박물관 내부를 채우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돈을 모두 올림픽 후원업체들이 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마란치와 아디다스 다슬러 회장, 상업화 짝짜궁

사마란치의 돈벌이에 날개를 달아 준 이는 바로 세계 최대의 스포츠 용품 메이커 아디다스의 전 회장이자 ISL을 세운 호스트 다슬러이다. 그는 올림픽과 텔레비전, 다국적 기업을 연결해 올림픽을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상품으로 만들었다. 87년 사망한 그는 생전의 마지막 대회였던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앞두고 거창한 발언을 했다. “트랙·수영장·농구 코트·복싱 링에서 뛰는 선수의 80% 이상이 아디다스 제품을 몸에 걸치게 하고, 전세계 몇 십 억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그 상표를 보게 만들겠다.” 이 장담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이제 올림픽과 스포츠에 돈이 결부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올림픽 비용을 대기 위해 수익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각 도시가 돈을 벌기 위해 올림픽을 유치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덕분에 90년대 이후부터는 ‘아마추어 스포츠’라는 용어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올림픽은 거대한 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스포츠산업으로 변질되었다. 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막대한 시장과 수많은 직업이 생겨났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엄청난 부를 손에 쥐기 위해 땀을 흘리고 이를 위해서 약물 복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흥행주인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개최국 조직위원회의 지령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올림픽 수익 사업 상한선 정하라”

올림픽과 아마추어 스포츠의 정신은 본디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돈과 부정 부패에 물든 올림픽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올림픽 마크가 들어간 상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꺼내는 행위가 과연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인가, 또 납세자의 돈으로 위원들의 배를 불리고 약물 복용자들을 돈방석에 앉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다. 과거의 적자투성이 올림픽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한 LG 애드의 박현종 박사는 올림픽 수익 사업의 상한선을 정하고 벌어들인 수익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자 해지(結者解之)라고 할까? 세계는 지금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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