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1세기 전략 보고서’ 공개
  • 이창주(편집자문위원·조지워싱턴 대학 교수) ()
  • 승인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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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의 ‘21세기 대외 정책 목표와 전략 보고서’ 토대로 전망한 미국의 미래
미국은 20세기가 미국에 영광과 승리를 가져다 준 시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정치의 최대 관심사는 21세기에도 과연 미국이 현재와 같은 유일한 ‘지도 국가’로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새로운 국제 세력이 등장해 다극 체제로 전환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백악관에 보고한 ‘21세기 미국의 대외 정책 목표와 전략’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미국의 응전이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21세기 미국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미국의 6대 대외 정책 목표

미국은 국제 사회를 6개 그룹으로 분류해 ‘도전과 대응’이라는 전략적 대외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첫 번째 그룹은, G7로 분류되는 선진 산업 국가이다. 미국은 이들과 이익을 공유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세계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들과의 결속과 유대 강화가 미국이 국제 정치를 주도하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룹은, 미국의 우방 국가이다. 한국이 이에 속한다. 미국은 이 그룹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세계 정치 질서가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소련의 위협이 사라지자 이 그룹에 속한 일부 국가가 미국의 보호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결과는 미국을 당황하게 했다.

세 번째 그룹은, 소련 해체와 탈냉전으로 태어난 신생 독립 국가, 현재 체제 변화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 그룹에 대한 미국의 우선 목표는 지역 안정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 구조를 정착시켜 국제 기구에 편입되는 것이다.

네 번째 그룹은, 인종 분쟁이나 내전을 치르고 있어 최빈국 상태에 놓인 국가이다. 이 지역에서는 국제기구를 앞세워 분쟁을 해결하고 원조와 경제 통상 협력을 늘려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키고,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의 국가 개혁을 추진하려고 한다.

다섯 번째 그룹은,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위반하거나 도전하는 독재 국가이다. 북한이 이 그룹에 들어 있다. 미국은 이 그룹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대외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그룹은, 미국 대외 정책 목표의 핵심 대상인 러시아와 중국이다. 미국은 이들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에 대해 협력과 견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 전략에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세계 정치·경제의 다극화를 구상하고 있으며, 세계 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지도 국가로 떠오르고자 한다. 이들 국가와 원만하고 성공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21세기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다.

금세기 말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특기할 점은 국제 공조 체제를 단단히 하는 것이 목표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팽창하는 데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강력한 국제 협력 체제를 갖추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실험 성공할까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지난해 <포린 어페어스>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대외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미국 외교의 방향과 수단을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21세기 외교는 단순한 강대국 외교가 아니라 실질적이며 실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내부 정책 자료는, 이해 관련 당사국들이 미국의 새로운 정책과 조처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일이 선결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근책과 강경책을 상황에 따라 기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경제 협력·인센티브·기술 지원·새로운 약속 등을 통해 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유도하고, 이러한 협상이 순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재 위협이나 강경책을 제시하는 결합적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의 대표적인 예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그 다음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제기구의 활용을 들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축으로 하여 강력한 경제 개혁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국익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다. 실제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아시아의 경제 개혁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과 관련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실험은 경쟁 상태에 있는 국가들의 상호 견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험이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펼쳐지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한 미·중의 전략적 협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일본이 버티고 있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는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동북아의 안보·평화·경제 협력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상황에 따라 기술적이고도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며 관련 당사국들이 상호 견제하는 틀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전받는 미국, 21세기는 다극화 시대?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새로운 외교적 전략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서 영향력이 크게 향상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곳곳에서 저항과 도전을 받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 위기에 개입한 미국의 처방, 즉 ‘IMF 수술’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새로운 경제 지배 행태라고 비난받았다.

중국과의 외교 목표를 전략적 협력과 동반자 관계로 설정한 미국의 구상 역시 즉각적으로 대만은 물론이고 일본·인도·러시아 등으로부터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민감하고 중대한 국제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반세기를 유지해 온 주변의 우방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이 남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연합 체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 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안보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도 우려와 함께 홀로 서자는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 정책을 바꾸라는 미국의 압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을 때 미국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자체 군사력을 향상시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아무리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의 지배자가 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중국의 행동을 수정하려는 일방적인 계산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러시아의 반미 감정은 걱정할 수준을 이미 넘었다. 만일 경제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러시아의 역할과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고 중국과의 파트너십에 안주한다면 미국의 새로운 실험은 실패할 것이다. 옛 소련 지역의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와 일부 동유럽 및 중근동 국가는 역사적·지정학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럽연합(EU)과의 관계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사사 건건 통상 마찰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연합 집행부가 구상하고 있는 21세기 위상은 미국의 도움이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자적인 지역 통합 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피하고 다양한 세력 중심의 지역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외 정책 목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와 같이 자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지도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질서는 다극화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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