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추바이스 부총리에 IMF'구원' 특명
  • 모스크바·윤찬혁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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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맞은 러시아 부총리 취임…IMF와의 협상 성공시킬지 관심
러시아 정계의 풍운아 추바이스가 6월17일 부총리에 취임했다. 지난 3월23일 체르노미르딘 내각 사퇴와 함께 정부를 떠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가 정부를 떠났다가 복귀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그는 91년 국가사유화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정부에 들어간 이후 반대파의 압력으로 두 차례나 정부를 떠났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하는 오뚝이 같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해임 3개월 만에 복귀

옐친 대통령은 체르노미르딘 내각 퇴진과는 별도로 포고령을 통해 추바이스를 해임하고 차기 내각에 그를 기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으며, 추바이스도 정부 직에는 더 종사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추바이스가 정부에 복귀한 것은 러시아가 처한 금융 및 외환 위기가 매우 심각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추바이스는 이번에 국제기구 담당,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국제통화기금 담당 부총리 겸 대통령 특사로서 러시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정부에 있을 때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상을 주도해 왔으며, 부총리를 사임한 후에도 국제통화기금과의 막후 협상을 주도할 정도로 국제통화기금에 지인이 많고 협상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의 특사 취임 소식은 러시아 주식 시장에서 호재로 받아들여졌다.러시아 금융 시장은 97년 10월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세 차례 위기를 맞았다. 급격한 주가 하락, 국채 시장 및 주식 시장에서 외국 자본 이탈, 환율 불안,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이자율 대폭 인상 등이 계속되었다. 대표적 주가지수인 MTI (Moscow Times Index)는 올해 들어 60%까지 하락했으며, 1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지난 5월 말에는 최고 84%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 은행은 재할인율을 종전의 3배인 150%로 인상했지만, 루블화 환율이 정부의 연말 유지 목표인 달러당 6.2루블을 넘어섬으로써 외환 위기는 심각한 국면으로 진입했다.

러시아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국채 시장을 통해 적자를 보전해온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

루블화 가치가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 적어도 20% 이상 높게 평가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국제통화기금도 평가 절하가 필요없다는 러시아 중앙 은행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밖에 신흥 국가들의 외환 위기를 경고하는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GDP(국민총생산)대비 경상 수지 적자나 수입 대비 외환 보유고 준비금 등의 관점에서는 러시아 상황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 적자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자율이 높은 국채 발행, 상환 부담 증가 및 추가 재원 조달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시아 지역의 외환 위기 이후 속속 러시아를 떠나고 있어, 러시아 금융 시장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 6백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단기 국채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탈함으로써 러시아 정부는 추가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외환 위기도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는 1백45억달러인데 러시아 국채 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외국인 자금은 2백억달러에 달해 외환 위기 가능성을 예고한다.

이같은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러시아 금융 시장은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세 차례 닥친 금융 위기는 아시아 금융 시장 혼란, 인도네시아 사태 악화 및 일본 엔화 가치 하락과 같은 외부 충격이 그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단계에서 단기간에 루블화가 폭락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루블화 가치가 러시아 정치·경제에서 갖는 함축성이 크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환율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러시아의 위상을 고려할 때, 99년 총선과 2000년 대선을 앞둔 때에 공산당이나 민족주의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외환 시장 혼란을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극히 위험한 상황이다. 러시아 정부는 98년도 재정 적자 규모를 97년의 GDP 대비 6.5%보다 적은 4.5%로 설정했다. 그러나 올해 국내외 부채 상환에 필요한 비용만 해도 GDP의 4.4%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는 현실성이 없다. 게다가 세금 징수 실적이 부진하고 석유 수출 가격마저 떨어져 재정 수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석유·가스 등 주요 원자재 수출 가격이 하락해 98년 무역 수지 흑자는 전년에 비해 70억~90억 달러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이로 인해 경상 수지는 97년의 40억달러 흑자에서 98년에는 50억 달러 적자로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외환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은 채 안팎으로 충격을 받는다면 또다시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루블화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 1년간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외화를 소진해 외환 보유고는 97년 7월 2백38억달러에서 98년 5월 말 현재 1백45억달러로 1년 사이에 약 백억 달러나 감소했다. 미국·독일 등 서방 선진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고는 있으나, 그것이 실현될지 의문이다.러시아·IMF, 추가 지원 조건 놓고 힘겨루기

어쨌든 러시아가 현재 처한 금융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을 얻어내는 데는 몇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도덕적 형평성 논란에 따른 딜레마이다. 고수익을 얻기 위해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러시아에 투자한 외국인 민간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이 지원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민간 투자자들은 국제통화기금이 러시아 사태에 너무 소극적이고 느리게 대응한다고 주장한다.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국제통화기금과 러시아 정부 간의 이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번 위기를 러시아로 하여금 더욱 강력한 재정 개혁과 구조 조정을 실시하게 하는 계기로 활용하려고 한다. 섣불리 지원할 경우 러시아 정부가 재정 긴축 강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러시아에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실제 지원은 계속 미루면서 러시아 정부에 재정 긴축과 구조 조정을 독려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루블화 안정을 위한 추가 자금 지원 조건을 담은 비밀 서신에서 98년 재정 적자를 현재의 GDP 대비 4.5%에서 2.5%까지 줄일 것과, 조세기본법을 개정해 과세 형평성을 꾀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제적인 위상과 국내 여건을 들어 국제통화기금의 어떠한 추가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있어, 양자간 이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추바이스를 내세운 러시아가 국제통화기금과의 이견을 해소하고 추가 지원을 확보함으로써 현재의 금융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추바이스가 이번 기회를 자신의 정치적 장래와 어떻게 연계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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