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권력 암투 점입가경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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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분신 추바이스, 레베드 枯死 작전 일단 성공…레베드, 부패한 인물과 손잡고 반격
추바이스의 수렴 청정. 요즘 모스크바 정가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옐친 대통령(65)은 벌써 4개월째 정상 집무를 못하고 있고, 차기 대권 주자들은 치열하게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밀린 임금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군인들의 요구도 심상치 않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 속에서 사태를 주도하는 이가 바로 크렘린의 아나톨리 추바이스 행정실장(41)이다. 그는 현재 병석에 있는 옐친 대통령의 눈과 귀 노릇을 한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정보는 그를 통해 옐친에게 전달되고, 옐친의 정책은 그를 통해 시행된다. 따라서 모든 시선이 지금 그에게 쏠리고 있다.

현재 그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작업은 크렘린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다. 최근 알렉산드르 레베드(46)가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직에서 쫓겨난 것도 그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레베드 축출은, 겉으로는 아나톨리 쿨리코프 내무장관(50)과의 충돌에서 옐친이 쿨리코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쿨리코프의 뒤에 추바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즉 레베드가 휘하에 러시아 군단을 조직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비난한 사람은 쿨리코프였지만, 이를 사전에 조율하고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은 추바이스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관·군·언론 ‘反레베드’ 전선 구축

현재 ‘레베드 죽이기’는 2단계에 돌입해 있다. 10월17일 옐친이 모든 공직에서 레베드를 해임한 데 이어, 내무부는 레베드가 쿠데타를 획책했다고 증명하는 문건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레베드는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무장관의 비난이 모두 허구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레베드는 지금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가장 인기가 높지만, 정계와 관계·군부·언론계로부터는 완전히 따돌림당하고 있다. 옐친이 레베드를 해임하기 이틀 전, 러시아 하원에서는 레베드가 체첸 반군측과 체결한 평화협정에 대해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에 대한 비판은 옐친 진영뿐 아니라, 하원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레베드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체첸 사태 해법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레베드가 체첸 반군측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체첸 독립에 관한 것이다. 레베드는 앞으로 5년 동안 체첸 독립에 대해서 거론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옐친을 포함한 러시아의 대다수 정치인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체첸은 분리될 수 없는 러시아 영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바이스 ‘러시아 모든 언론’ 관리

게다가 그로즈니에서 군대를 철수키로 한 것은 러시아 군부의 분노를 사고 있다. 체첸 내전을 통해 ‘종이 호랑이’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러시아군은,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겪고도 패배나 다름없는 철수를 감수하게 한 레베드에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옐친은, 끊임없이 더 많은 권력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면서, 정부내 다른 사람들과 마찰만 빚는 레베드에 대해 “더 참을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옐친은 레베드가 관련 부서와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고, 국민의 인기를 믿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행동을 일삼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예외적으로 레베드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야블로코당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당수(44)이다. 열렬한 시장경제 개혁주의자인 그는, 레베드가 체첸 내전을 끝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러시아 하원에서 그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만큼이나 미약하기 그지없다.

레베드 죽이기에는 언론도 동원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52)를 집중 성토함으로써 옐친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언론들은, 이번에는 레베드에 대한 반격에 나섬으로써 옐친을 돕고 있다. 최근 러시아 민영방송 NTV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이토기>(종합)가 레베드를 인터뷰에 초청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레베드가 눈치를 채고 거절하자, NTV는 주가노프를 대신 인터뷰해 레베드를 비판하고 나섰다. 현재 러시아의 모든 언론은 추바이스가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심장병을 앓는 옐친의 수술 일정은 11월 중순으로 잡혀 있다. 원래 9월 중순으로 잡혀 있다가 건강이 악화해 미루어졌다. 10월24일 세르게이 야스트르젬스키 크렘린 대변인은 옐친의 건강이 양호한 상태이며, 심장 수술은 예정대로 실시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심장 수술 전문팀이 미국과 독일을 방문했으며, 현재는 수술에 필요한 준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도 수술이 연기될지 모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옐친은 자신의 수술을 전후한 기간에 국정을 논의할 ‘4인 협의체’를 제의했다. 4인이란 체르노미르딘 총리·추바이스 행정실장·예고르 스트로예프 상원의장·겐나디 셀레즈네프 하원의장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공산당 출신인 셀레즈네프가 국정 논의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옐친은 지난 8월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공산당과 농업당에서 1명씩을 내각에 기용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공산당에 대화를 제의함으로써, 최근의 정국 불안을 여야 합의 체제로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옐친은 지난 6월 말부터 건강이 악화해 집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사실상 유고(有故)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정치인들은 옐친에게 사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총리한테 권한을 넘기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러시아 정치인들이 이처럼 ‘관대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 소련 공산당이 지배하던 시절, 브레즈네프·체르넨코·안드로포프 서기장 밑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둘째, 모든 정파가 당분간 옐친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면, 추바이스와 체르노미르딘은 물론이고 공산당도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이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레베드이기 때문이다.
옐친 없이 러시아가 굴러갈 수 있다는 것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옐친의 대통령 업무는 크게 경제·외교·국방·치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경제는 4년째 총리를 맡고 있는 체르노미르딘이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프리마코프 외무장관과 로디오노프 국방장관도 해당 분야 사람들로부터 호평받고 있고, 최근 레베드와 대결해 눈길을 끈 쿨리코프 내무장관 역시 정부와 의회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다.

코르자코프와 연합은 레베드의 실책

레베드는 지금 ‘정치적 고아’나 다름없다. 믿고 의지할 정당도 없고, 조직을 꾸릴 돈도 없다. 최근 그가 알렉산드르 코르자코프와 손잡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코르자코프는 과거 옐친의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막대한 이권을 챙긴 인물인데,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레베드는 그를 부패한 인물이라고 지목해 축출했는데, 지금은 그의 돈과 정보가 필요해 손을 내밀었다. 반대로 코르자코프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레베드의 보호막이 필요하다.

하지만 레베드의 선택은 자신의 정치 생명만 재촉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실 레베드는 지식인 사이에서 그리 인기가 높지 않다. 독선적인 성격에다 민주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고, 경제나 국정 운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군인이라는 것이 대다수 지식인의 평가이다. 그런데도 그가 일반 국민한테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강직하고 깨끗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부패한 코르자코프와 협력하게 된다면, 국민이 등을 돌릴 것이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치적으로 야인 신세가 된 레베드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레베드는 현재 자신의 지역구인 툴라주 주지사나 하원의원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사람한테 그같은 직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레베드의 생각이지만, 아무런 직함도 갖지 않고 지낸다면 쉽게 잊힌다는 문제점도 있다.

다음으로 체첸의 불안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19일 레베드 후임으로 이반 립킨 전 하원의장을 임명했다. 그는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체첸 특사직을 겸임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체첸과의 협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레베드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였던 체첸 반군측은 또다시 내전이 악화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결국 레베드가 해임됨으로써 피해를 보는 것은 레베드 본인과 체첸인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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