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향해 고개 세운 유럽
  • 베를린·許 洸 통신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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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태 계기로 독자 노선 모색…유럽연합의 군사 동맹화도 꾀해
최근의 이라크 사태를 둘러싸고 서유럽 여러 국가들은 미국의 중동 전략을 향해 분명히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 간의 불화가 여실히 드러난 자리는 지난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 안보 전문가회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미국 상원의원들은 이라크 사태를 중재하는 프랑스가 유엔의 신뢰성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의 무력 개입을 거부하는 것은 유럽의 전체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국방장관의 말을 ‘터무니없는 사실 왜곡’이라고 몰아붙였다. 유럽이 미국의 중동 외교에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나토(NATO)라는 안보 동맹 체제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은 미국측의 이런 다그침에도 아랑곳없이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에 반대하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영국을 제외하면 미국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나라는 나토 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동유럽 세 나라뿐이다).

한편 독일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던 리처드 버트는,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군수산업 통합이 미국 무기산업과 마찰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미국의 불만이 이라크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콜 독일 총리는 군수산업에서도 경쟁은 필수적이라고 응수했다.

유럽은 왜 미국을 향해 ‘노’라고 말하고 있는가. 중동의 정치사를 들추어 보면 답은 간단히 나온다. 81년 이스라엘은 폭격기를 이라크에 침투시켜 프랑스가 수출한 원자력 발전소를 파괴했다. 미국이 넘겨준 첩보 정보 없이 그런 폭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프랑스가 어느 정도 굴욕감을 맛보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7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는 이라크와 친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해 석유 파동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당시 시라크 총리가 후세인과 나누어 온 정치적 우정도 한몫을 했다. 그후 90년까지 프랑스가 아랍 국가들에 수출한 물자는 4백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 공격에 가담한 것은, 당시 미국 편에 선 다수의 아랍 국가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 협상에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이탈리아는, 이라크에 수출하기로 계약한 무기를 다 팔기도 전에 이라크 공격에 가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무엇보다 중동 내부에서 화해 분위기가 일고 있다. 지난해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이슬람 회의에서는 이라크와 이란이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기로 합의했고, 이라크와 단교했던 주변 나라들도 외교 관계 회복을 꾀하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이같은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배후에 이슬람 공동 시장을 만들려는 합의가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에 공동 시장이 구성되고 아랍 국가들과 유럽의 전통적인 협력 관계까지 회복되면 오일 달러가 유로(EURO·유럽 단일 통화)와 연계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중동의 석유 시장은 미국 달러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이라크·이란·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는 중동과 유럽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대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전세계 위기 지역 대상 ‘공동 외교 전략’ 구상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이 구상하고 있는 외교 전략은 중동뿐 아니라 전세계의 위기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 전략은 군사적인 색채가 짙은 만큼, 유럽연합이 미국에 이어 제2의 세계 경찰이 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유럽 공동의 외교 전략’이 처음으로 선보인 시기는 91년이다. 열두 나라가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때이다. 이 조약은 지난해 6월 암스테르담 회의에서 일부 수정·보완된 후 최근 회원국들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데, 외교 정책 부문에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 요소를 담고 있어서 그 비준 여부가 주목된다.

지금까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국경 통제 조약으로 운용되어 온 솅엔 조약이 유럽연합 조약 차원으로 격상되었다. 따라서 유럽연합 조약이 비준된다면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유럽연합 국가들이 공동으로 통제하게 된다. 그럴 경우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을 저지할 거대한 장벽이 세워지는 셈이다.

암스테르담 회의는 또 유럽연합을 주변으로 확대하는 문제에도 합의했다. 조약 비준이 끝난 후 6개월 안에 헝가리·폴란드·에트란드·사이프러스 등 모두 다섯 후보국의 가입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는 1차 후보국 명단에 60년대부터 가입 신청을 해 온 터키가 빠진 대신 터키가 일부 점령하고 있는 사이프러스가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터키가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전략적 교두보임에도 계속 가입을 거부당하는 이유로는, 유럽 문화의 동질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터키 노동력이 이동할 경우 특히 독일이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꼽힌다. 반면 유럽연합이 사이프러스의 가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이 나라가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유럽의 세력 확보에 중요하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두 가지 변화가 눈에 띄는 쟁점이라면,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유럽연합의 외교 정책에 점차 군사적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암스테르담 조약에는 유럽연합을 군사 동맹으로 바꾸는 몇 가지 기본 구상이 들어 있다. 먼저 유럽연합의 일부 회원국이 가입해 있는 군사 기구 ‘서유럽연합(WEU)’을 유럽연합 전체의 군사 기구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서유럽연합은 48년 서독의 재무장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와 영국이 서독을 감시하는 기구로 만든 군비 통제 기구이다. 그러나 군비 통제 조항은 독일이 반발함으로써 폐기되고 92년에는 군사 동맹으로 탈바꿈했다.

서유럽연합은 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유럽연합의 군사 기구로 언급되었는데, 암스테르담 회의는 이 기구를 유럽연합에 통합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을 조약 비준 후 1년 안에 마련해야 한다는 일정표를 짜놓았다. 그렇게 되면 중립을 고수해 온 국가들의 국제적 지위는 적어도 유럽연합 내에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또 암스테르담 조약은 ‘공동 군수산업 확보’ ‘전략계획본부’ ‘조기경계본부 설치’ 따위 추가 조항을 넣어 유럽연합이 나토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군사력을 가진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조약 비준을 앞두고 유럽연합의 각료회의가 유럽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유럽이 대처해야 할 위기 지역으로 발칸·체첸·알바니아·북아프리카 등 내전 지역과, 지중해를 비롯해 유럽의 자유 무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변 지역, 그리고 21세기의 위기 지역 후보로 카스피 해와 중앙아시아까지 열거했다.

그러나 유럽의 군대가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위기 지역에 개입하는 데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 내에서 외교·안보 분야 문제에 대해서는 회원국 전체의 만장 일치에 의해서만 합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제 등 기타 분야에서 다수결 원칙이 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 독일·프랑스의 패권을 두려워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안보 체제에 선뜻 합류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유럽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외교를 펼쳐야 하는 현실적인 요구 또한 점차 커지고 있으나, 미국의 군사 외교를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유럽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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