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공습에 산림 좀먹는 캐나다
  • 토론토·김상현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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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뿔딱정벌레, 단풍나무 등 활엽수 10여 종 고사시켜…피해액 수십 억 달러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적이다! 이들 중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은 벌레들뿐!’ 캐나다 토론토 시 외곽에 설치된 아시아긴뿔딱정벌레(긴뿔딱정벌레) 퇴치 센터의 한쪽 벽 게시판에는 이같은 살벌한 문구가 휘갈기듯 적혀 있다. 그 옆에는 ‘적’인 긴뿔딱정벌레 사진이 4×6배판 크기로 확대되어 붙어 있다.

캐나다는 지금 곤충과 전쟁 중이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9월 토론토 시 외곽 공장 지대의 한 단풍나무에서 긴뿔딱정벌레가 처음 발견된 이래 캐나다 식품안전청을 중심으로 토론토 시, 본 시, 환경보호 단체, 요크 지역 자치정부 등이 가세해 이 곤충을 퇴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무려 1만5천여 그루의 활엽수가 가차 없이 잘려나가 ‘톱밥의 산’으로 전락했다. 이들 중 적어도 90%는 미처 적과 만난 적조차 없는 상태에서, 단지 해충에 감염된 나무들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요절해야 했다.

천적 없고 살충제로는 박멸 불가능

대개 특정한 한두 종의 나무만을 공격하는 여느 해충과 달리, 긴뿔딱정벌레는 단풍나무·느릅나무·자작나무 등 10여 종의 다양한 활엽수를 무차별 공격해 고사시키는 가공할 잡식성에다, 알려진 천적이 없다는 점 때문에 더욱 치명적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흔히 ‘알락하늘소’라고 불리는 곤충과 매우 흡사한(실제로 같은 속(屬)이며 종(種)만 다르다) 이 해충은 중국이나 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나무 상자나 포장재 속에 숨어들어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뉴욕(1996년)과 시카고(1998년), 그리고 시애틀(2000년)에서 발견되어 큰 난리를 쳤고, 지금도 여전히 시끄럽다.

캐나다 식품안전청은 지난 가을과 겨울,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벌레들을 사실상 박멸했다고 자부했다. 벌레들이 아직 번데기와 유충 상태로 나무 속에 있을 때, 감염된 나무와 그 주변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 분쇄함으로써 확산을 막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처음 벌레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3단계 감시 및 격리 지역을 설정하고 100여 명 규모의 태스크포스를 꾸려 추가 감염 지역을 찾는 한편 숙주 나무 5만여 그루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위성항법장치(GPS)로 그 정확한 위치들을 기록했다. 벌레와의 전쟁은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7월이 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긴뿔딱정벌레를 보았다는 주민의 신고 전화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공교롭게도, 문제의 장소는 벌레가 처음 발견된 곳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또 다른 공장의 주차장이었다. 이미 숙주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린 상태였지만, 그 밑동은 지면으로부터 10cm 안팎 높이로 남아 있었다. 긴뿔딱정벌레가 서식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더욱이 온갖 중장비와 철근, 철책, 콘크리트 블록 따위가 어지럽게 널린 공장의 야적장은 미처 찾아내지 못한 숙주와, 미처 제거하지 못한 나무 밑동, 그로부터 싹이 트듯 무성하게 다시 자란 나무줄기 등으로 정글을 방불케 했다. 첫 감염 지역을 중심으로 미처 제거되지 않은 나무 밑동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긴뿔딱정벌레가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이 벌레가 단순히 잎만 갉아먹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나무줄기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알을 낳는데, 알이 그 안에서 애벌레로, 번데기로, 마침내 성충으로 자란 뒤 다시 구멍을 만들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한 벌레의 특성 때문에 살충제를 뿌리는 방법으로는 근절하기가 불가능하다.
일단 벌레가 발견되면 반경 400~500m 안의 모든 숙주 활엽수들은 베어 없애는 수밖에 없다. 건강한 나무들까지 제물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암컷 한 마리가 무려 80개 안팎의 알을 낳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변태 과정이 숙주 나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수관과 체관이 완전히 단절되어 고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쇠약한 나무만이 아니라 건강한 나무도 이 벌레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긴뿔딱정벌레를 제대로 방제하지 못했을 때 빚어질 수 있는 예상 피해 규모는 실로 천문학적이다. 또 다른 아시아산 해충으로 물푸레나무만 골라 공격하는 ‘에메랄드애시보러’, 노바스코샤 주 핼리팩스의 가문비나무들에 치명적 피해를 몰고 온 갈색가문비나무긴뿔딱정벌레, 그리고 북미 지역의 느릅나무들을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간 ‘더치엘름병’(자낭균(子囊菌)에 의한 느릅나무병) 등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큰 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긴뿔딱정벌레의 집중 표적들이 단풍나무·느릅나무 등 캐나다의 주요 산림 자원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3~5년 동안 피해액은 간단히 수십억 달러 선에 이를 것이라고 관측된다.

도시와 근교의 가로수·조경수 들에 미칠 ‘시각적’ 피해 규모는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 문제가 된 온타리오 주만 놓고 보더라도, 집 앞뒤 뜰과 가로를 장식하고 있는 나무들의 30% 정도가 긴뿔딱정벌레의 주요 표적으로 꼽히는 단풍나무들이다. 여기에 다른 숙주 나무들, 자작나무·느릅나무·버드나무·플라타너스·마로니에·마가목·포플라·팽나무 따위를 더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긴뿔딱정벌레는 여느 벌레보다 몸집이 큰 데다 등에 난 흰 반점과 몸통의 2배에 이르는 긴 안테나 때문에 쉽사리 구별되지만, 나무가 감염된 징후를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른 벌레가 알을 낳기 위해 나무 표면을 씹은 흔적, 7~9월 변태를 마친 벌레가 밖으로 나오면서 만든 볼펜 굵기 만한 구멍, 그 근처에 남아 있을 거친 나무 부스러기 등은, 특히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면 찾아내기가 더욱 어렵다.

캐나다 국기에서 단풍나무 사라질 판

게다가 이들 벌레는 맨 꼭대기 수관(樹冠) 쪽의 잔가지들을 먼저 공격한 뒤 나무 줄기 쪽으로 옮겨온다. 아래에서 쌍안경으로 감염 징후를 찾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거나 심지어 크레인까지 동원해 벌레를 추적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 나무를 며칠이고 그렇게 살피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긴뿔딱정벌레를 찾아내 보고한 경우의 90% 이상이 일반 주민이었다. 그들의 적극 협조가 절실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광역 토론토 지역(GTA)에서 긴뿔딱정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누구도 그 벌레를 박멸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언제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이 벌레의 무서운 생명력 때문에 근절하기까지는 적어도 3~5년이 소요된다고 여겨진다.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속절없이 잘려 사라진 거리는 다시 어린 나무들로 채워지고 있다. 참피나무·물푸레나무·떡갈나무 같은, 긴뿔딱정벌레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나무들이다. 단풍나무·느릅나무 같은 숙주는 식수 금지다. 여느 가정에서도 그런 나무를 심으면 정부의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자칫하면 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단풍나무 상징까지 바꾸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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