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케리 ‘부동표 잡기’ 기 싸움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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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후보 잠재적 지지율 부시보다 앞서…네이더 출마하면 타격 입을 수도
지난 8월4일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 주의 데브포트 시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선 존 케리 상원의원의 유세전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선거인단이 훨씬 많은 주가 수두룩한데, 왜 하필 두 후보는 같은 날 같은 시, 그것도 지근 거리에서 치열한 유세전을 펼쳤을까.

바로 이곳에서 4년 전 당시 부시 공화당 후보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 4천표 차로 석패해 선거인단을 모두 빼앗긴 경험이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이곳의 양측 전세는 팽팽한 백중세. 두 후보 모두 몸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이오와 주는 전통적으로 선거일 막판까지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할지 예측하기 힘든 ‘부동표’가 많기로 유명하다.

아이오와 주뿐만 아니다. 50개 주 가운데 미주리·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플로리다·웨스트 버지니아를 포함해 약 18개 주가 부동층이 많은 경합 지역으로 분류된 상태다. 부시와 케리 양측은 지난 대선 당시 상대 후보에 비해 6% 이상 득표 차를 내지 못한 주를 일단 경합 지역으로 분류했다. 민주당 전당 대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7월31일 시사 주간 <뉴스 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리 후보는 부시 대통령에 비해 49% 대 42%로 오차 범위를 벗어난 지지율 우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 가운데 케리를 지지하는 측이 45%로 부시의 39%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전문가들은 부시가 이라크 문제에서 실책을 거듭해온 데다 국내 경제도 엉망이어서, 현재 부동층의 지지가 쏠리는 케리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신문과 방송이 올해 초부터 실시해온 일련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시는 이라크 문제와 경제 실정으로 부동층으로부터 크게 외면당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기관인 조그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동층 사이에서 케리와 부시의 지지율 격차는 무려 10%나 된다.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가장 최근의 인구 통계 자료를 근거로 파악한 부동층은 크게 다섯 부류다. 첫째, 대학을 갓 졸업한 미혼으로 테크놀로지·연예·운동 경기에 관심이 많은 20대를 꼽을 수 있다. 둘째, 자기 집이 아닌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미혼의 젊은 비사무직 노동자가 꼽힌다. 셋째, 은퇴했거나 은퇴를 눈앞에 둔 사무직 노동자로 이들의 취미는 주로 독서와 음악 감상이다. 넷째,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즐기며 가족 전용 레스토랑을 찾는 비사무직 은퇴 노동자들이다. 끝으로 여러 자녀를 둔 중산층 부부로서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이 이런 부류이다. 부동층은 미국 총유권자 1억5천6백만명 중 약 11%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만 잡으면 백악관 입성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그런 부동층의 표심이 케리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동층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케리이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의 최대 적은 부시가 아니라 저명한 소비자보호운동가 출신인 무당파 후보 랠프 네이더(70)이다. 2000년 대선 당시 군소 정당인 녹색당 후보로 나섰던 그는 민주당 고어의 지지표를 잠식해, 결과적으로 부시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그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 지난 대선 때보다 다소 높은 4~6%를 득표할 것으로 나타나 케리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정도 득표율이면, 케리 쪽으로 몰릴 잠재 부동표의 상당 부분을 네이더가 잠식할 수 있다.

네이더의 위력은 사실 장난이 아니다.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 주에서 부시가 고어를 겨우 5백37표차로 이겼는데, 당시 네이더는 9만7천표를 획득했다. 또 뉴햄프셔 주에서도 부시는 고어를 7천2백11표 차로 승리했는데, 그곳에서도 네이더는 2만2천여 표를 얻었다. 만일 네이더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그가 얻은 만큼의 표는 고어에게 갔을 것이며, 이 경우 고어가 백악관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민주당측 원성에 대해 정작 네이더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최근 CNN에 출연해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한 것은 내가 출마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어가 비효율적인 유세를 벌였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아성인 조지아 주에서 민주당원 약 25만 명이 부시를 찍은 것을 어떻게 보는가”라고 반문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네이더가 이번 대선에도 끝내 출마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케리측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다만 2000년 대선처럼 ‘네이더 효과’가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인 케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할지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부동층 사이에도 워낙 반부시 정서가 강해 친네이더 지지자들도 케리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케리측이 한때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섰다가 도중하차한 하워드 딘을 전면에 내세워 부동층을 상대로 ‘네이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케리 진영은 이밖에도 8월 들어 선거전이 본격화하자, 공화당측이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테러 위협’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도 동시에 안고 있다. 부시 진영은 공화당 전당대회 장소를 9·11 테러 참사의 상징적인 장소인 뉴욕으로 잡아놓는 등, 테러 위협을 선거전에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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