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메이지 유신' 성공할까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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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조직 절반으로 축소 개편… 정치 우위 '대통령제' 접목, 관료주의 탓에 앞날 불투명

사진설명 새로운 조직 체계에 따라 : 12월5일 출범한 모리 총리의 2기 내각. 30년을 별러온 행정 개혁을 수행할 첫 내각이다.

일본이 내년 1월6일부터 중앙 부처를 대폭 축소해 개편한다. 21세기를 대비한 포석이다. 현재의 1부 20성청 1위원회 체제를 그 절반 규모인 1부 11성청 1위원회 체제로 바꾸는 것이 골자이다. 모리 내각은 중앙 부처 개편에 맞추어 지난 12월5일 내각 개편을 단행했다.

일본의 중앙 부처 개편에서 핵심은 행정의 간소화·효율화 그리고 행정에 대한 정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총리의 권한과 내각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총리 직속으로 내각부를 신설한다. 내각부는 현재의 총리부·경제기획청·오키나와개발청을 통합한 부처이다. 다른 부처와 같은 격인 지금의 총리부와 달리 내년에 발족하는 내각부는 한 단계 격상되어 중앙 부처 간에 조정하기 어려운 안건을 최종 판단하는 권한을 갖는다.

내각부 신설은 30여 년 전 이케다 내각 때부터 다듬어져 온 구상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도를 본떠 일본도 총리에게 권한을 집중하는 내각부를 신설하자는 의견이 대두해 온 것이다. 따라서 대장성이 주도해 온 예산 편성 권한이 내년부터는 내각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로 옮겨진다. 이 회의는 총리의 자문을 받아 예산 편성의 기본 방침을 조사·심의하는 권한을 갖게 되어 내각부의 심장으로 불린다. 또 예산 편성을 내각부가 이끌게 되어 정치가 주도해 예산을 편성하게 되었다.

관료 주도 행정을 정치 주도 행정으로 개혁하기 위해 여당은 '부대신' 22명과 '정무관' 26명을 중앙 부처에 파견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여당이 파견한 정무차관 32명이 각 부처에 포진해 왔지만, 개편한 뒤에는 48명으로 늘어난 부대신과 정무관이 중앙 부처의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특히 부대신은 특정한 정책과 기획만을 담당하는 정무관과 달리 정책 기획 전반에 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각료의 직무도 대행하는 권한을 갖게 되어. 중앙 부처 관료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통솔하는 야전 사령관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있다.

중앙 부처를 통폐합해 거대 관청이 탄생하는 것도 특징이다. 예컨대 운수성·건설성·홋카이도개발청·국토청이 합쳐 탄생하는 국토교통성은 약 10조 엔에 이르는 공공사업 관련 예산 중 약 80%에 해당하는 예산을 주무르는 거대 관청이다. 조직을 개편한 뒤 국토교통성이 갖게 되는 인허가 건수도 중앙 부처에서 가장 많은 2천5백여 건으로 늘어나며, 직원도 6만 9천여 명으로 불어난다.

그밖에 우정성·자치성·총무청이 합쳐 탄생하는 총무성 직원 수는 30여 만 명, 후생성·노동성이 합쳐 탄생하는 후생노동성은 10만여 명,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합쳐 탄생하는 문부과학성은 14만여 명으로 몸집이 크게 불어난다.

'무소 불위의 관청'으로 불려온 대장성은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명칭이 재무성으로 바뀐다. 사실 이번 중앙 부처 개편은 대장성이 너무 방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공무원 수, 10년간 25% 감축 예정

사진설명 도쿄 관청가 : 정치 주도 개혁에 대한 관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장성은 지금까지 예산 편성(주계국), 세제(주세·관세국), 재정 투융자 등 국가 재정 관리(이재국), 금융기관 감독(국제·금융기획국), 국세(국세청) 등 다섯 가지 강력한 권한을 갖는 '관청 중의 관청'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대장성은 거품 경제 처리 과정에서 잇달아 실책을 저지름에 따라 금융 행정 전반을 기획·입안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지난 7월 신설된 금융청에 이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대장성 '권력'의 원천이었던 예산편성권도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각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대장성은 내각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가 예산 편성의 기본 방침을 정하면 이 방침에 따라 예산 편성 실무를 담당하는 하부 기관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중앙 부처 개편과 함께 고급 관료 포스트도 대폭 감소된다. 현재의 국장급 포스트 1백27개가 96개로 줄어든다. 그대신 국장급인 총괄관 자리가 16개 늘어난다. 중요 포스트에 민간인도 대거 등용할 예정이다. 예컨대 내각부의 심장이며 예산편성권을 쥐게 되는 경제재정자문회의 위원 10명에는 민간인 4명을 기용할 예정이다. 모리 내각은 또 내각부 직원 가운데 100여 명을 민간인으로 충원할 방침이다. 5년 기한으로 채용되는 민간인 중에는 현재 도쿄 대학 총장이 받고 있는 급료(2천6백만 엔)를 받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일본 정부는 또 중앙 부처 개편과 함께 공무원의 정수도 앞으로 10년간 전체의 25%를 줄일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초 중앙 부처 개편을 메이지 유신, 미국 점령군 사령부에 의한 전후 개혁에 이은 '제 3의 개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만큼 행정을 근본적으로 수술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중앙 부처 개편이 눈 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끝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것은 관 주도·부처 이기주의·이권화로 대변되는 일본식 관료주의가 중앙 부처 개편으로 오히려 심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조직 개편, 부처 이기주의 부추길 수도

우선 행정 간소화·효율화라는 기치를 내건 중앙 부처 개편이 오히려 거대 부처를 탄생시켜 관 주도와 부처 이기주의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4개 부처가 합쳐 탄생하는 국토교통성, 후생성과 노동성이 합쳐 탄생하는 후생노동성,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합쳐 탄생하는 문부과학성은 몸집이 크게 불어나고 인허가 권한이 늘어났다.

새로운 부처 이름의 영문 표기를 둘러싸고 심하게 줄다리기를 벌일 정도로 아직도 일본 관료들은 업무 영역 싸움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일본 관료들은 '국가 이익보다는 부처 이익을 중시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 관료 사회가 중앙 부처 개편에 따라 오히려 더 큰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업무 영역 싸움과 이기주의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관 주도'에서 '정치 주도'라는 당초 목적도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예산편성권을 내각부에 빼앗기게 된 대장성은 지난 7월 발족한 '재정 수뇌 회의'를 이용해 내각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를 무력화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정치 주도'라는 구호를 내걸고 여당이 파견하는 부대신·정무관 들이 오히려 행정을 파행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21세기 일본의 운명은 중앙 부처 개편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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