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살인마' 둘러싼 최후의 흥정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
  • 승인 2001.04.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료셰비치 체포 내막/
'헤이그 전범 재판'에 국민 반발하면 사형 선고할 듯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체포극에는 유고 내부의 권력 투쟁이 얽혀 있다. 서방 텔레비전에는 밀로셰비치 체포 작전에 유고군 탱크가 출동한 장면이 잡혔는데, 유고 신문 〈폴리티카〉는 이것을 예로 들어 군부가 한때 밀로셰비치 체포를 저지했다고 전했다. 연방 내무장관은 군부가 쿠데타를 모의했으며, 현직 참모총장이 배후 인물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심지어 코스투니차 대통령이 밀로셰비치 편에 섰다고 보기도 한다. 그가 군 통수권자인 만큼 군부와 사전에 조율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코스투니차가, 친서방 개혁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연정 내부에 확고한 지지 기반은 없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녀 군부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추측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군부는 왜 밀로셰비치를 체포하는 데 반대한 것일까? 그는 대통령 재임 때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 부패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혐의가 인정되면 유고 법으로는 5∼15년 징역감인데, 재판 결과가 어찌 되든 이것은 내정 문제이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이런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는 세상이 다 아는, 미국이 마지노 선으로 정한 날짜(미국 시각으로 3월31일)에 체포되었다. 이것은 곧 유고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음을 말하는데, 미국의 최종 요구는 밀로셰비치를 헤이그 전범 재판소에 보내라는 것이 아닐까? 유고 정부가 자국 국민을 외국 재판소에 넘기는 것을 인정하는 새 법안을 만들기로 헤이그 재판소측에 최근 약속한 것으로 보아 밀로셰비치 체포는 서방이 바라는 대로 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


헤이그 재판은 밀로셰비치 개인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에 걸친 모든 내전의 책임을 세르비아측에 덮어씌우는 정치 재판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은 유엔의 승인 없이 감행한 나토의 군사 개입이 사후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국제적 절차가 필요하며, 또 동시에 나토 공습 중에도 커다란 타격을 받지 않은 유고 군부를 심리적·물리적으로 무너뜨리는 전초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군부에 지지 기반이 없는 친서방파 진지치 총리측은 이런 사태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지치측에서 보자면, 유고 군부는 물론이고 국민이 헤이그 재판을 납득할 수 있게끔 묘안을 짜낼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은 밀로셰비치 압송을 대가로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사실 유고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경제 회복만큼 시급한 일이 없으므로 이것은 친서방파가 코스투니차나 유고 군부에 헤이그 재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유고 정부는 헤이그 재판에 협조를 약속하면서 그 대신 보스니아 회교계와 크로아티아측의 전범도 기소할 것을 요구했다. 따라서 헤이그 재판소는 서방에 이용 가치가 떨어진 비세르비아계 인물들을 전범으로 기소하면서 밀로셰비치 재판에 대한 반감을 무마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나토는 '전범 재판' 요구할 자격 없다"


이렇게 해도 헤이그 재판에 대한 반감이 가라않지 않는다면? 그때는 밀로셰비치에게 사형 선고를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것은 4월 초 세르비아 내무장관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처음 밝혔는데, 그는 밀로셰비치가 정부 전복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가 드러나면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는 헤이그 재판에 대한 국민의 반발뿐만 아니라 서방의 압력에서도 벗어난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독일의 인권보호협의회 같은 곳에서는 "정작 헤이그 재판소에 서야 할 당사자는, 베트남전쟁이나 니카라과 봉쇄 그리고 최근 이라크 봉쇄에 이르기까지 국제법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미국이 아닌가? 더군다나 유고 경제 지원금 수억 달러보다 엄청나게 많은 전쟁 보상금을 내야 할 가해자인 나토가 헤이그 전범 재판을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국제법 유린이 아닌가"라고 항변하는 상황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