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신드롬은 신기루?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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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총리 중 지지율 최고…

실업자 늘고 경기 악화하면 '거품' 금세 꺼질 수도


지난 5월25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고이즈미 열풍'의 배경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지속될까. 고이즈미 내각은 출범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평균 80% 전후를 기록했다. 자민당 장기 정권을 무너뜨리고 야당 8당 연립 정권을 성립시킨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직후 70%대였던 사실을 돌이켜 보면,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그뿐 아니다. 최근 JNN 방송국의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출범 직후의 80%대(88.0%)에서 90% 대(91.3%)로 치솟은 것으로 밝혀졌다. 출범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이처럼 또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분명 경이롭다.


고이즈미 총리가 등장하는 국회 중계 방송 시청률이 과거 다른 총리가 출연했을 때에 비해 2∼3 배나 높고, 국회에서 그를 공격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현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잠시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NHK의 국회 중계 시청률은 낮시간대여서 통상 2∼3%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소신 표명 연설이 있었던 지난 5월7일에는 평균 시청률이 6.4%로 뛰어올랐고, 15일 오후의 중의원 예산위원회 중계 때는 7.6%를 넘어섰다. 이때 최대 순간 시청률이 13.1%였다고 하니, 길고 지루한 국회 중계가 저녁 황금 시간대의 드라마에 버금가는 시청률을 올리는 이변이 일어난 셈이다.


국회에서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비판성 질문을 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예컨대 지난 5월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따진 민주당 간 나오토(菅直人) 간사장의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100통 넘게 걸려왔다. '왜 무턱대고 고이즈미 총리를 괴롭히냐'는 항의와 함께 '총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쏟아졌다고 한다.


'잃어버린 10년' 복원할 구세주?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간 간사장이 질의하는 도중부터 걸려온 전화와 e메일의 90%가 간 간사장을 질책하는 것이었으며, 고이즈미 내각의 또 다른 간판 스타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의 자질을 비판한 외무성 관료 출신 닷소 다큐야(達增拓也) 자유당 의원 사무실은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이처럼 하늘을 찌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그가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자신감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일본인들의 자긍심을 쥐어짜는 발언을 연달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역사 교과서 재수정 요구에 'NO'라는 입장을 계속 천명했다. 그는 또 한국과 중국 정부의 큰 반발이 예상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약속했으며, 총리직선제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정부 해석 변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매파적 발언은 정권 기반이 취약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예컨대 자민당 우파의 거물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나와 고이즈미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와는 유전자가 일치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장래 힘을 합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정치가가 겁을 먹고 입을 열지 않았던 것들을 공약함으로써 국민이 그를 정직하고 용기 있는 정치가라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복원할 구세주로 비치고 있는 것도 비등하고 있는 인기의 비밀이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일본의 재생이 발본적인 구조 개혁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조 개혁에는 성역이 없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발본 구조 개혁이란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부실 채권 조기 처리와 재정 재건, 특수법인 민영화 등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이즈미 내각이 기존 부실 채권은 2년 이내에, 신규 부실 채권은 3년 이내에 최종 처리한다는 방침을 강행한다면 실업자가 적어도 100만 명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실업률 4.7%가 최고 6.6%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이다.


신사 참배 강행하면 연립정권 붕괴할 수도




고이즈미 내각은 또 발본적인 재정 재건에 착수할 방침이어서 일반 국민이 받는 고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내년도 예산부터 국채 발행액을 30조 엔 이하로 억제하고, 중기적으로 세수와 세출의 균형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8년 안에 재정 상태를 GDP의 3%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매년 공공사업을 5%씩 줄이거나, 소비세를 매년 1%씩 인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사회보장비나 지방교부세 등을 대폭 삭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업자가 크게 늘고 세출이 많이 삭감되면 경기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100만명 넘게 실업자가 증가할 경우 고용보험 지급액이 수조 엔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며, 그런 긴급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 고이즈미 내각의 재정 재건 목표가 동결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하는 발본 구조 개혁이 자민당 지지자들을 이탈시킬 위험성도 크다. 예컨대 고이즈미 내각은 도로 정비에 사용하도록 목적이 한정된 휘발유세 등을 일반 재원으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용도 변경하는 것을 참의원 선거 때 공약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도로공사에 관계하고 있는 전국의 건설업자 60만명과 그 종업원들은 자민당의 최대 표밭이다. 그들이 만약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에 등을 돌리게 되면 자민당은 또다시 대패할 위험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고이즈미 지지자들이 개혁의 칼끝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고이즈미 열풍'은 순식간에 가라앉을 수도 있다. 또 공약대로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강행할 경우 공명당이 연립 정권을 이탈해 3당 연립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마저 있다. 전문가들은 참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올 여름께 고이즈미 내각은 심각한 내우외환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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