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많이 나도 ‘말썽’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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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석유법 공포해 미국 석유자본과 대립



미국 정부가 최근 전개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쿠데타 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갖가지 압력을 넣으며 개입하려 한 이유는 따로 있다. 베네수엘라는 에너지 소비 대국인 미국에 중요한 원유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량은 세계 4위권인 하루 259만 배럴. 이 중 59%(하루 154만 배럴)가 미국으로 향한다.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경제는 말 그대로 ‘바로 그 날’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지금까지 확인된 양만 777억 배럴. 베네수엘라에 ‘석유 러시’가 일기 시작한 때는 1928년 쉘 사가 라 로사 유전을 개발하면서부터였다. 멕시코 정부의 석유 국유화 선언에 따라 돌파구를 모색하던 미국 석유 업계는 이 유전을 발견하자 앞다투어 베네수엘라로 몰려갔다.
베네수엘라는 196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ECD) 창립에 주도적으로 활약한 때를 제외하고는 미국에 그다지 위협을 주지 않으며 안정적인 원유 공급처 구실을 해왔다. 석유를 무기화해 미국에 맞서는 등 중동 산유국들처럼 ‘말썽’을 피우는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1998년 현 차베스 대통령이 출범한 이후 사태가 달라졌다. 차베스 대통령은 적정 유가를 유지하기 위한 석유수출국기구의 생산량 제한 정책에 적극 찬성해 미국 석유 자본의 기대를 저버렸다. 게다가 지난해 11월에는, 원유 생산에 따른 로열티를 매출액 기준 16.6%에서 30%로 인상하는 내용의 새 ‘석유법’을 공포했다.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였다.


쿠데타로 이어졌던 반 차베스 투쟁과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책 회의’가 바로 이 시기, 즉 차베스 대통령이 새 석유법을 공포한 시점에 동시에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가지며 베네수엘라 상황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베네수엘라에서는 차베스의 경제 실정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전개되었다. 결국 이같은 사실은 베네수엘라에서 최근 진행되었던 정치적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어디였는가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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