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세 계를 살릴까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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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를 둘러싼 경제학자들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반세계화 진영에서는 IMF 처방이 세계 경제를 빈사 상태에 빠뜨렸다고 비판한다.
세계화 논쟁의 거친 물결에 세계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세계화 논쟁은 지난해 8월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때 절정에 올랐었다. 당시 제노아에서는 반세계화를 외치는 시위대 약 50만명이 경찰과 충돌해 폭동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사태를 빚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9·11 테러 참사는 사태를 일변시켰다. 미국이 선포한 반 테러 전쟁이 세계화 논란을 단숨에 잠재운 것이다. 그로부터 꼭 1년이 흐른 지금, 세계화 논쟁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싸움의 양상은 지난해와는 딴판이다. 지난해까지 세계화 논쟁은 거리 시위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물리력이 격돌하는 원시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논쟁은 무대도 사람도 바뀌었다. 무대는 거리에서 제도권의 탁상으로 옮겨갔다.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도 이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1급 경제학자들로 바뀌었다.



1년간 휴면 상태에 있던 세계화 논쟁에 새롭게 불을 붙인 주인공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다. 그는 아시아 경제 위기가 한창이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1월까지 세계화 3대 집행 기관 중 하나인 세계은행에서 부총재를 지냈고,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한 거물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최근 〈세계화와 그 불만 세력들〉이라는 자신의 비망록을 통해 ‘세계화의 등’에 칼을 꽂았다.



“잘못된 처방으로 만병통치 바라는 격”



‘독점 기업들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경기장’ ‘누구나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경주’ ‘도박꾼의 파멸로 끝나고 말 세계적인 놀음’…. 이는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그의 책 〈허울뿐인 세계화〉(이민아 옮김·도서출판 따님)에서 세계화에 쏟아 부은 원색적 비난의 몇 대목이다. 반세계화론자들에게 세계화란 언제나 제거해야 할 악 그 자체였다. ‘20 대 80 사회’라는 용어를 유행시키며 한국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두 독일인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도 세계화 주도 세력에 대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 권력’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제도권 출신’으로서 비록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스티글리츠도 이에 못지 않은 강공을 편다. 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과오’에 초점을 맞춘 자신의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먼저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들을 ‘1류 대학 출신 3류 두뇌들’ ‘가난한 나라의 위기를 구한답시고 책상앞에서만 머리를 굴리고, 현지에 가서는 별 5개 짜리 일류 호텔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몰아쳤다. 스탠리 피셔 등 국제통화기금 고위 관리의 불투명한 행적을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주목할 부분은 이처럼 사소한 개인 행적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세계화와 그 집행 기관의 최근 실적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엄정한 채점 결과이다.
그는 먼저 세계화론자들이 내건 장밋빛 희망이 깨어진 약속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세계화론자들은 각국의 발전 상황을 무시한 채 경제 개방과 자유화만을 만병통치약처럼 강요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화가 한창 진행되었던 20세기 마지막 10년간 최저 생활 이하의 인구는, 세계 전체 소득이 매년 2.5%씩 늘었는데도 1억명 가량이나 더 늘었다. 유엔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가 힘을 기울여 간신히 늘려놓았던 세계인의 평균 수명은 최근 급격한 에이즈 확산으로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세계화는 곧 발전’이라는 공식에 대입해볼 때, 세계화의 최대 수혜 대상이라 할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서 에이즈로 평균 수명이 줄고 있는 현상은 의미심장한 아이러니이다.



게다가 경제의 안정성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은 세계화가 한창일 때 오히려 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64쪽 딸린 기사 참조). 아르헨티나 등 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나라도 국가 부도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 나라에 세계화가 가져다준 선물은 고통일 따름이다.



정치 논리로 세계 경제 이끈 ‘미국의 독재’ 비판






스티글리츠는 특히 국제통화기금이 일부 개발도상국에 대해 실시하는 금리 인상·재정 긴축·규제 완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한 ‘IMF 프로그램’을 문제삼았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는 ‘IMF 수술대’로 통할 정도로 악명 높다. 스티글리츠 주장의 핵심은 ‘이 수술대를 거친 사람 치고 성한 몸으로 병원 문을 나선 환자가 없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의 관찰에 따르면, 이는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나라에 무리하게 고단위 치료약을 주사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또 세계화의 큰 흐름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특수 이해에 의해 변질되고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학자 존 윌리엄스가 1989년 창안한 이 용어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미국 재무부 등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기관들이 미국 워싱턴에 한데 몰려 있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는 세계화론자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중심으로 세계화 담론을 독점하면서, 세계 경제를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이끌어 왔다고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독재’를 꼬집었다. 스티글리츠는 그 결과 “많은 경우에서 상업적 이익과 가치가 환경·민주주의·인권 그리고 사회 정의를 압도하게 만들었다”라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일 뿐만 아니라, 잘만 추진하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세계화의 결과 중 일부는 이를 입증한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대인지뢰 조약이 전세계에 퍼진 인터넷 통신망 덕분에 체결될 수 있었다거나, 심지어 세계화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조차 세계화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티글리츠는 결론 격으로, 세계화가 제 길을 찾으려면 투명성 확보 등 우선 세계화 집행 기관의 개혁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티글리츠의 이같은 주장에 세계화 신봉자들은 당혹감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는 사실 세계화론자들 처지에서 보자면 ‘강력한 우군이요 믿음직한 동료’였다. 운명을 같이 했던 전우의 돌연한 이탈에 세계화론자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정말이지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그처럼 당신이 100% 옳다고 자신하는지, 또 위기의 한복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위생병들까지 공격하면서 어떻게 그처럼 당당하게 심판 노릇을 자임하는지이다…. 당신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당신이야말로 문제의 일부이지 대안은 아니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혹 없는가?’



이 글은 국제통화기금의 수석 연구원인 케네스 로고프가 지난 7월2일 국제통화기금 홈페이지에 ‘공개 서한’ 형식으로 띄운 글의 일부이다.
로고프는 독설로 가득찬 이 공개 서한에서, 스티글리츠의 주장이 중상 모략과 억측·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스티글리츠가 국제통화기금을 ‘시장 원리주의자’라고 비판한 데 대해 로고프는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시장의 실패보다는 정부의 실패가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믿는다”라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그는 또 스티글리츠가 국제통화기금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헐뜯은 데 대해 ‘질병이 많은 곳에는 당연히 의사가 많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로고프는 아울러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한창일 때 스티글리츠가 오히려 내부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던 사실을 들춰내며, ‘당신의 충동적인 행동이 오히려 경기 회복 지연이나 지체를 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본 적은 없는가’라고 비꼬았다.



“질병이 많으면 당연히 의사도 많다”






로고프는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경제학자이다. 미국 예일 대학을 수석 졸업한 그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에 들어갔다.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이사로도 활동한 그는 스티글리츠에 못지 않은 학문 이력과 실무 경력을 겸비한 쟁쟁한 인물이다. 그의 공개 서한이 또 다른 논쟁을 증폭시켰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열열한 세계화론자인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장문의 서평을 기고해 로고프를 편들고 나섰다. 그는 우선 스티글리츠를 ‘선량하지만 형편 없이 순진한 영웅’으로 묘사했다. 또 그의 책을 ‘한편의 멜로 드라마’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로고프와 똑같은 논리로 스티글리츠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국제통화기금의 실책에 면죄부를 주었다.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비판은 이외에도 〈뉴욕 타임스〉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세계의 주요 언론을 연일 장식하며 논쟁을 증폭시켰다. 내용은 대체로 스티글리츠의 경솔함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세계화가 나아갈 길에 대한 진솔한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주장도 많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지난 7월10일자 자신의 분석 기사에서 ‘IMF는 (개도국을 도울 때) 사실 너무 자주, 이례적으로 많거나 잘못 고안된 조건들을 달았다’라고 스티글리츠를 두둔했다.
〈뉴욕 타임스〉의 이름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일찍이 세계화 논리가 평화의 논리이자 민주주의의 논리이며, 자신은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줄기 새벽빛을 목격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새벽빛은 왜 아직도 세계를 고루 비추지 못하는 것인가.



스티글리츠는 기준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인간의 얼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이상으로 떠받들리던 ‘사회주의의 이상’도 인간의 얼굴을 갖추지 못해 실패했다. 스티글리츠의 진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세계화에도 인간의 얼굴이 없다. 그대로 가다가는 사회주의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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