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오일 머니 약 될까, 독 될까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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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생산 세계 1위국 올라…‘돈 풍년’ 속 인플레 걱정
올들어 원유 생산 1위국으로 도약한 러시아가 오일 머니로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 러시아산 우랄 원유가는 배럴당 40달러에 근접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의 유가 상승은 국제적 상황에 기인한다. 산유국들의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원유 공급량이 떨어져 유가가 상승했다는 논리다. 중동 전쟁과 베네수엘라의 정국 불안, 나이지리아 사태 등이 수요·공급 체계를 흔들어 유가를 치솟게 한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만 하루 2백만 배럴의 원유가 감산되었다. 원유 생산 5위국인 멕시코에서는 대형 태풍이 두 차례에 걸쳐 휩쓸고 지나갔다. 이같은 악재들이 석유 거래상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며 원유 시장을 과열로 몰고 갔다.

반면에 올해 러시아 산유량은 지난해보다 10% 증산되어 하루 9백14만 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8백39만 배럴보다 많다.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앞질러 원유 생산 세계 1위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러시아는 전세계 석유 소비량의 11%에 해당하는 양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40%를 외국으로 수출한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의 양은 하루 평균 3백60만 배럴을 조금 웃돈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러시아는 하루에 3백6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초과 이득을 올리게 된다. 지난해 러시아는 원유 수출로 2백3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올해 원유 증산과 국제 유가 상승 덕택에 지난해보다 몇갑절이나 되는 오일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일 머니가 넘쳐나는데도 러시아는 원유 수출에 욕심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이 서유럽에 편중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등지로 수출선을 다각화하고, 수출량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굴지의 석유 소비국인 중국(2위)과 일본(3위) 그리고 한국, 나아가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비 늘리고 공무원 봉급도 인상 방침

러시아 원유 수출이 지역적으로 편중된 까닭은 송유관 문제와 직결된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안가르스크 유전에서 극동 나홋카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을 신중히 검토해왔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미국 서부 지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에는 철도를 이용해서 수출한다는 계산이다. 또 미국 동부 지역을 겨냥해 무르만스크와 우랄 석유 산지를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국내의 송유관 건설 사업은 정부가 100% 주식을 소유한 국영 회사 ‘트란스네프티’가 독점하고 있다.

원유 수출을 주도하는 러시아 석유 기업은 대략 5개. 1위는 유코스 사다. 유코스는 전 회장이며 최대 주주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탈세 혐의 등으로 감옥에 갇히고 각종 세무 조사와 벌금 납부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위는 루코일. 이외에 수르구네프테가스, 영국 굴지의 석유 회사인 비피(BP)와 손잡은 티엔케이 비피(TNK-BP)와 시브네프티 등이 있다. 이들 5개 메이저가 지난 9개월 동안에 수출한 물량은 대략 9천5백만t에 이른다.
국제 원유가의 고공 행진이 가져온 예기치 않은 초과 이득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을까. 먼저 러시아 정부를 꼽을 수 있다. 러시아는 유용 자원 채굴에 대한 과세와 수출 관세라는 두 갈퀴로 오일 머니를 긁어 담았다. 세수의 일부분은 국가 예산으로 편입되고, 일부는 안정 기금으로 비축된다.

국가 예산이 늘어나자 러시아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리려 하고 있다. 우선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공무원 봉급을 인상할 방침이다. 또 대테러 지출액도 1천5백억 루블(약 6조원)로 대폭 증액할 예정이다.

불균형 투자 탓에 경공업 쇠락 부작용도

이렇게 쓸 것 다 쓰면서도 돈다발을 쌓아 놓기에 바쁘다. 러시아 정부는 2004년부터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를 넘어서면 석유 수출액의 일부를 안정 기금으로 비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천억 루블(약 4조원)에 불과했던 안정기금이 10월 현재 3천5백억 루블(약 14조원)로 늘어났다. 관세로 인한 세수 증가도 원인이지만, 채유 세금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채유 세금은 내년에 20% 더 오른다.

러시아 하원 ‘두마’는 표정 관리에 나섰다. 두마는 예산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2007년까지 5천억 루블(약 20조원)을 비축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그런데 재무부가 계산해보니, 기금은 내년 초에 이미 산정액을 초과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안정기금이 늘어나자 러시아 의회와 정부는 돈 쓰기 경쟁을 하고 있다. 오일 머니의 혜택은 우선 연금생활자에게 돌아갈 판이다. 다음은 옛 소련 붕괴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외 부채를 일부 탕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참에 선심을 써서 불만 많은 유권자들을 달래고, 추락한 대외 신용도 개선하자는 속셈이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오일 머니 유입 덕택에 돈 풍년이 든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환율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심각한 두통거리로 등장했다. 중앙 은행이 환율 유지를 위해 시중에 풀어놓은 수십억 루블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주요인이다. 러시아의 올해 인플레이션 억제 목표는 10%.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달성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삶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세금 정책을 강화하자 석유 업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한 석유회사 사장은 “정부는 커다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 세금을 덜 걷고 석유 회사에 부가 이윤을 남겨줘야 한다. 그래야 석유회사들이 수지가 맞는 새로운 산지를 개발한다. 원유 산지를 개발하는 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므로 자본 축적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석유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외국인이 투자하는 부문간 불균형도 눈에 띄게 심해지고 있다. 해외 투자가 석유산업에 집중되고 있어 석유 관련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다른 부문 산업은 더 위축되고 있다. 특히 경공업 부문은 존재가 무색할 정도로 쇠락했다. 제품의 질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상품의 질은 서유럽에 눌리고, 가격은 중국에 쫓기는 러시아 경공업 산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시중 상점의 진열대는 벌써부터 외국 제품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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