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6자 회담 올인’ 택했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12.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대통령 ‘벼랑끝 북핵 외교’ 내막 추적/부시 재선 후 남북정상회담 카드 덮어
지난 11월13일 로스앤젤레스 방문에서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인 북핵 관련 발언은 미국 대선과 부시 대통령 재선을 전후한 한·미 양국 간의 막전 막후 외교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6자 회담이 답보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맞게 된 미국 대선과 이에 따른 한국 정부 내부의 위기감, 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무용지물이 된 상태에서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한 노대통령의 정면 돌파, 그리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없이는 그 내막과 진의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아슬아슬한 대미 비판성 발언이 부시 대통령이 양해한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국내 보수 언론들의 의표를 찌른 측면도 있다고 할 것이다. 미국 대선 전후부터 시작된 노대통령의 ‘벼랑끝 외교 행보’의 알려지지 않은 내막을 정부 고위 당국자 및 관계 소식통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미국 대선 전야:한국의 외교 안보 고위 당국자들은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에 돌파구가 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미국 정부를 맞게 될 경우 앞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면 “정부도 비상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것이,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 시절부터 정부 당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해온 말이다.

지난 6월 제3차 6차 회담 이후 협상은 더 진전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 대체로 두 갈래 방향으로 대책이 강구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국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와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나누어 대응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정상이 비상한 결단을 통해 민족적 위기를 타결하는 방안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카드는 왜 배제되었나:11월9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미국 방문, 그리고 11월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노대통령이 북핵 발언을 할 때마다 언론이나 야당은 빼놓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용’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때쯤에는 이미 노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의 머리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 카드는 무용지물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종석 차장의 방미는 말할 것도 없고 노대통령의 일련의 대북 발언 역시 정상회담 추진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노대통령의 발언은 정상회담이라는 수단이 배제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채택된 대안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전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스스로 접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은 ‘6자 회담 성공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15 4주년 이후 정부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6자 회담과 정상회담 병행 추진론’이 거론되는 등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가 정상회담에 대한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쟁점화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1월15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대표가 “2005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려야 하며 이미 당과 청와대 간에 교감이 이뤄진 상태이다”라고 발언한 것을 비롯해, 주로 열린우리당 차원에서 정상회담 필요성이 제기되자 야당이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원래 의도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도 한·미 간의 사전 조율과 남북간 의제 설정을 둘러싼 조율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은 정상회담의 성격상 비공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야당이 쟁점화하기 시작하면서 비공식 접촉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핵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즐비한 상황에서 공식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기도 어렵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부영 의장을 질책했다는 얘기가 이 무렵 정치권에 회자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부시 재선 확정과 6자 회담 집중 전략: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수면 아래로 잠복하게 된 두 번째 요인은 바로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를 대비한 정부의 대응 시나리오 중 후자가 가동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케리 후보의 경우 북·미 양자 접촉과 6자 회담을 병행한다는 입장이었고, 부시 대통령은 북·미 양자 접촉을 부정하고 6자 회담을 절대시하는 입장이었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케리 후보가 될 경우 북·미 양자 접촉이 활성화해 남북 간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할 여건이 비교적 쉽게 조성될 수 있었지만, 부시 대통령이 됨으로써 미국과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정상회담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해 국제 사회에 핵 포기를 약속하면 그 다음에 남측이 정상회담을 통해 북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12월1일 노무현 대통령의 런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6자 회담과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노무현-부시 전화 통화로 주도적 역할 기회 포착:결국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정부의 전략을 6자 회담에 올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했다고 할 수 있다. 11월13일 노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 이후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북핵 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이란 결국 6자 회담의 틀 내에서라는 전제가 붙은 것이다.

그나마 이런 정도의 외교 공간이라도 확보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지난 11월5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의 직접 통화였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가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력 하에 북한 핵 문제를 양국 정상의 역점 프로젝트로 해결해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자”라고 제안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면에서는 이보다 더 깊숙한 얘기가 진행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 북핵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에 대해, 부시 대통령의 적극 권유 또는 양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서 자신감을 피력하기 시작한 것도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부터라고 한다. 또한 두 정상 간의 대화를 토대로 로스앤젤레스 발언을 비롯한 일련의 대북 발언이 준비되기에 이르렀다. 이종석 사무차장의 미국 방문에서 한·미간 입장 조율에 실패함에 따라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게 되었다는 식의 ‘한·미 갈등론적 해석’은 근거가 희박하다. 11월5일 한·미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11월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차례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확인 과정이 있었다.

기회는 주어졌으나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미국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2기 부시 정부는 1기 때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주의 및 당사자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1기 정부에서는 북핵 문제를 전세계적인 반테러전에 포함해 다룸으로써 한국 정부가 개입할 공간이 매우 좁았으나, 2기 정부에서는 북핵 문제를 반테러전에서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 6월의 김선일씨 사건을 정점으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신뢰감이 깊어지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빠르면 2개월에서 6개월, 그리고 최대한으로 잡아도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전까지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간이 넘어가면 핵문제는 다시 미국 강경파의 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네오콘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며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등 자세 변화를 촉구한 것은 1단계로 내년 1월20일 제2기 부시 정부 출범 전이라는 시간을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까지 북한이 자세 변화를 보여 주어야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부시 정부의 신뢰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 ‘노대통령이 지금 절박한 심정으로 라스트 베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같은 시간 계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남쪽 정부를 비난하고 대화에 불응해 왔지만, 이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남쪽 정부의 손을 잡는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