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편안해야 오래간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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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인터뷰/“인류에겐 자본 아닌 땅과 물이 절실”
<오래된 미래>와 <허울뿐인 세계화>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생태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여사(57)가 한국을 다녀갔다. <녹색평론>(대표 김종철)이 개최한 ‘21세기를 위한 연속 사상 강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스웨덴 태생인 그녀는 원래 동양과 아프리카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였다. 1975년,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던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지역을 방문한 것도 런던 대학 동양언어학과의 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거기 체류하면서 라다크 말을 배웠고, 이내 거친 자연 환경에서도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꾸리고 사는 라다크 사람들의 생태적 삶에 반했다. 그때부터 계획을 변경해 16년 간이나 거기서 산 그녀는, 막 문호를 개방해 서양 산업문명의 침탈에 노출되던 라다크의 생태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매진했다. <오래된 미래>는 자신의 그런 경험을 녹여 쓴 생태환경 보고서이다. 지금도 해마다 3~4개월씩 라다크에 가서 사는 그녀는, 현재 미국과 영국에 사무실을 둔 ‘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센터’(ISEC)를 이끌며 탈중심화·반개발을 위한 국제연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뷰는 방한 사흘째이던 12월10일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자주 웃었고, 말에 거침이 없었다. 통역은 영문학자 박혜영 교수(영남대)가 맡았다.

동양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로서 여러 오지를 여행했을 텐데, 라다크가 다른 곳과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
라다크는 눈이 가끔 내리는 아주 고립된 지역이다. 정치적·군사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구미의 침탈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라다크는 매우 특별한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오래된 미래>에는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 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착한 심성에 대한 경탄이 가득하다. 라다크적인 ‘대안 사회’를 이루는 데 어떤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물론 사회 구조가 중요하다. 라다크가 개방되면서 라다크 사람들이 점점 우리처럼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점점 더 불평하고, 금전에 의존하게 됐으며, 경쟁에서 뒤질까 봐 두려움에 떨게 됐다. 그래서 나는 사회 구조, 특히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당신은 1980년부터 ‘라다크 프로그램’을 통해 라다크의 전통을 복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 라다크인들도 개발이 되면서 자기네 삶이 더 열악해지고 있다고 느끼는가?
개발의 해악이 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다. 현대인들도 흔히 외로움, 고된 노동, 스트레스 따위를 경험한 뒤에야 대도시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센터)는 구미에서 개발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려 한다. 이런 교육을 우리는 ‘리얼리티 투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화학 비료가 얼마나 해로운지 이해시키기 위해 구미에서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유기농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그 결과 많은 농민이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기 농산물은 비싸고, 대부분 부자들이 누린다. 이처럼 생태주의의 산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계급 구분의 잣대로 쓰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화학제 식품이 값싸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사실 화학제 농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슈퍼마켓에 지불하는 식품 값에는 장거리 수송 비용, 연료비, 도로 건설과 유지비가 포함되어 있다. 인근에서 비료를 치지 않고 생산된 유기농 사과가 1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수송된 사과보다 실제로는 값이 쌀 수밖에 없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뵈에른 롬보르는, 지구가 충분히 자정 능력이 있으며, 생태주의자들이나 환경론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우리는 경제 정책의 충격이 자연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미친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현재의 경제 정책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일자리를 없애고 실업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초국적 기업의 독점을 강화하고, ‘빈곤 증가’를 가져온다. 대안은 탈중심화와 ‘반개발’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 상품을 소규모로 생산하도록 해야 지속 가능한 개발과 깨끗한 환경이 유지될 수 있다. 나는 롬보그의 분석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대개 내 말에 더 동의할 것이다.

‘반개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현재의 개발은 자본·에너지 집중형이고, 화석 연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경제력을 중앙 집중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 집중화는 농업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까지 다양성을 없애버린다. 우리는 이런 흐름에 대항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발은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방식이 되어야 하며, 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 조건에 맞는 특별한 경험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욱이 천천히, 편안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빅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이 아니라 땅과 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반개발’은 근본적으로 개발을 반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국은 상당한 정도로 산업화와 중앙 집중화가 진행되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만의 특수 상황은 아니다. 내 조국인 스웨덴도 한국보다 훨씬 더 중앙 집중화되어 있으며,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적이다. 많은 나라가 비슷한 처지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 사람이 이라크전쟁에 반대하지만, 대다수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부분적으로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다. 어쩌면 인류는 매우 어리석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역화와 탈중심화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지역화를 기반으로 국제적인 협동을 할 수 있다. 유엔을 통할 수도 있고,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움직임은 다양한 비정부기구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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