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명성황후> 브로드웨이 공연 평가
  • 뉴욕·신성희 (자유 기고가) ()
  • 승인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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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 뉴욕 공연/연습·홍보 부족, 기억에 남는 선율 없어
뉴욕의 주말 밤은 볼 만한 공연을 찾아나서는 뉴요커들로 들뜬 분위기이다. 한국의 뮤지컬 <명성황후>가 공연되던(8월15~24일) 링컨센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비율은 8 대 2 정도. 마지막 날 공연은 매진이었고, 극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백여 년 전 비명에 간 국모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 신문에서는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 교민들이 <명성황후>와 더불어 오랜만에‘화려한 외출’을 한 곳은 엄격하게 말해 브로드웨이가 아니다. 링컨센터는 브로드웨이 62번가와 66번가 사이에 있지만, 주류 쇼비지니스의 집결지인 뮤지컬 극장 지대에서는 벗어나 있다.

링컨센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에버리피셔 홀, 뉴욕스테이트 시어터 등 크게 세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명성황후>가 공연된 뉴욕스테이트 시어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보다는 대중적인 뉴욕 시립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2천7백37석인 이 극장은 오페라 극장이지 뮤지컬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이다. 음향 시설도 일렉트릭이 아니라 클래식을 위한 어쿠스틱이다. <명성황후>가 세미 오페라 같다는 평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보는 느낌

<명성황후> 뉴욕 공연의 총 코디네이터를 맡은 한동신씨는 이번 공연이 “처음부터 어리석고 무모한 게임이었다”라고 평한다. 뮤지컬 공연은 최소한 2~3년 준비 기간을 가지는 것이 상례인데, 이 작품은 실제 준비 기간이 한 달이었다고 한다. 기본 조건이 부실한 상황에서 시작된 이번 공연은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만들어지는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끝난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라고 한씨는 말했다.

급조된 오케스트라, 빠듯한 일정에 쫓기며 연속 출연으로 지친 배우들까지 감안한다면 이 공연의 성과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린 것은 탓할 수 없지만, 준비 부족으로 인한 공백은 연출자의 말대로 ‘게릴라전’으로 메워야 했다.

<명성황후> 총제작비는 2백만달러(18억원). 그러나 제작사 에이콤이 이번 공연을 위해 마련한 돈은 문화체육부 지원금 1억원과 삼성이 지원한 1억원 등 2억원이 전부였다. 공연 수익을 60만달러(5억4천만원)로 잡더라도 링컨센터 대관료 20만달러(1억8천만원), 미국인 스태프 임금 35만달러(3억1천5백만원), 출연진 호텔비 7만5천달러(6천7백50만원), 오케스트라 출연료 13만달러(1억1천7백만원) 등을 내고 나면 결국 8억원 가량 빚을 지는 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1년 관람객은 천만명에 육박하며, 해마다 새로 막을 올리는 작품은 40여 편이나 된다. 물론 장기 공연에 들어가는 작품은 극소수이다. 링컨센터에서의 열흘간 공연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이를 10년간 장기 공연 하며 그 성과를 평가받는 다른 브로드웨이 쇼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명성황후>는 말하자면 특별 공연인 셈이다.
8월4일자 <뉴욕 타임스>는‘15만달러(1억3천 5백만원)의 광고 예산으로 한국어 뮤지컬을 미국에 팔려는 도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대규모 뮤지컬에는 대규모 광고 캠페인이 필요한 법인데, 다른 브로드웨이 쇼와 비교해 ‘새발의 피’ 정도밖에 안되는 광고비로 도전장을 내민 <명성황후> 제작사는 대단한 용기를 보인 셈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명성황후>가 하나의 큰 볼거리, 스펙터클을 연출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눈부시게 화려한 의상, 경복궁 축소 모형, 서울의 옛 저자 풍경 등, 그야말로 동양의 이색적인 빛깔들은 넓은 오페라 극장을 환상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다양한 문화적 볼거리들을 찾아다니는 뉴요커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 이번 공연은, 한국 고전 의상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였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링컨센터 행차는 조금씩 조금씩 실력을 쌓아나가는 뉴욕 예술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에는 너무나 화려했다.

“브라보 외치는 관객이 놀랍다” 비아냥 나오기도

‘주인공들의 성격과 심리 묘사가 충분치 못했다’(<뉴스데이> 평)는 점과 더불어, <명성황후>에 대한 뉴욕 현지의 전반적인 평은 인상적인 듀엣이나 기억에 남는 테마곡이 없었다는 것이다. 개성이 다른 오페라 가수와 뮤지컬 배우와 연극 배우가 함께 선 무대에서 조화로운 선율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뉴욕 문화 가이드인 <시티 서치>에 공연평을 쓴 앨버트 리는 “죽은 황후가 부활해 귀신들과 함께 합창하는 장면은 뜻밖의 결말이었다. 전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선율이 없어 곧 잊힐 작품인데도 마지막에 브라보를 외치는 관객들의 모습이 놀라웠다”라고 평했다.

비행 시간이 13시간으로 줄었다고는 하지만 예술 문화 경영에 대한 서울과 뉴욕 간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미국, 특히 뉴욕의 예술계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을미사변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이 극을 제작한 동기라면, 문화 예술의 세계화에 대한 그릇된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명성황후> 바람을 타고 밀어닥칠지도 모르는 뮤지컬 공연의 세계화 바람이 반갑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언제까지 출연진의 희생을 요구하며 ‘성수대교’와 같은 아슬아슬한 날림 무대 위에 <명성황후>를 올릴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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