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탄신 600주년 빛과 그림자
  • 宋 俊 기자 ()
  • 승인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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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대중화·현대화 노력 미흡…기념 행사, 국민 관심 적어 ‘풍요 속 빈곤’
5월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1세기 문화·과학을 위한 세종대왕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어문·과학·음악·국방 등 모두 7개 분야의 업적을 집중 탐구한 학술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회가 끝날 무렵에는 뜻깊은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올해 신설된 ‘세종대왕 600돌 대상’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뚜렷한 문화적 성과를 이룩했거나 세종대왕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 가운데서 해마다 한 사람을 뽑아 상패와 상금(천만원)을 시상할 계획인데, 그 첫 수상자로 중요무형문화재 1호(종묘제례악) 기·예능 보유자인 성경린씨(87)가 선정되었다.

탄신 기념일에는 본격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거행된 탄신 하례 행사는 그 백미로 꼽힐 만했다. 오전 10시 탄신 600돌 기념식에 이어 진행된 하례식에서는 왕과 왕세자, 문무백관, 그리고 국악연주단·고전무용단 등 모두 4백명이 장관을 펼쳐 보였다. 기념탑 규모(소요 예산 2억2천2백만원)도 만만치 않다. 세종대왕기념관 앞뜰에 건립될 기념탑은 건축과 조각이 어우러진 현대적 조형물로, 오는 한글날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기념사업회측은 이밖에도 전국 초·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를 열고, 한글로 쓴 여러 문헌을 모아 전시회를 갖는 한편, 한글을 주제로 다룬 외국 논문의 합본집도 발간할 작정이다. 영종도에 새로 건설되는 신공항의 이름을 ‘세종공항’으로 명명하겠다는 것도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다. 또 한글날에 즈음해서는 <훈민정음> 원본을 복원하고 영인본을 제작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5년간 편찬 작업에 들어가는 <세종문화사 대계>는 여러 학자로부터 또 하나의 문화 자산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세종대왕이 남긴 여러 업적을 총망라하여, 한글·과학·의학·국방 등 7개 부문으로 분류·정리하는 사업으로, 앞으로 국학 연구의 기초가 될 것은 물론 해외 홍보의 바탕으로 널리 사용될 전망이다.

“스승의 날이 세종대왕 탄신일과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글을 창제하여 문맹을 퇴치하고 과학·의학을 부흥시켜 백성의 눈을 뜨게 하신 세종대왕은 ‘민족의 스승’이다. 이를 기려, 63년 대한적십자사가 주도해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이다. 스승의 날이기 이전에 세종 탄신일임을 상기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라고 기념사업회 박종국 회장은 밝혔다.

이처럼 와전되었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세종의 업적을 선명히 밝혀내려는 작업이, 지난 5월9일 열렸던 ‘21세기 문화·과학을 위한 세종대왕 재조명’ 학술 강연회에 집약되어 나타났다. 특히 전상운 교수(전 성신여대 총장)는 논문 <세종의 과학 정책>을 통해 “과학의 역사에서 15세기는 세종의 시대였다”라고 규정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중세가 끝나가던 15세기는 서방 라틴 세계의 경우 아직 근대 과학의 여명기였고, 아랍 문명의 영광은 시들어가고 있었으며,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의 과학 기술은 명(明)대에 이르러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세종은 송·원 시대의 중국 과학을 적극 수용했는데, 특히 원나라의 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원나라는 아랍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아랍은 당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터였으며, 그 속에는 이집트·그리스·로마 시대에 축적한 문명의 정수가 녹아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이슬람 과학과 그 속에 녹아든 라틴 문명, 그리고 중국 등 동아시아의 오랜 지혜를 집대성하고 더욱 발전시켜 당대 최고의 과학 문명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현전의 활동을 재해석한 부분도 의의가 자못 크다. 집현전이 한글 창제 등 각종 정책 연구의 구심점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형태가 오늘날의 국가 프로젝트 추진 방식에 버금가리만큼 선진적이었다는 점이 이 날 집중 논의된 것이다. “집현전 기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세종의 정책적 얼개였다”라고 손보기 교수(단국대 석좌 교수)는 밝혔다(기조 강연 ‘세종대왕의 민본 정신과 국제 사회’).

특히 국가 차원의 대사업을 추진한 ‘도감’은 매우 효율적인 임시 기구로서, 오늘날 널리 쓰이는 ‘태스크 포스’(대책 본부, 혹은 프로젝트 팀)와 다를 바 없었다. 집현전의 핵심 두뇌들이 이 태스크 포스를 이끌고 다양한 국가 사업을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세종은 당대에 이미 고도의 테크노크라시를 펼쳤던 것이다.

이밖에도 어문(허 웅 한글학회 회장)·음악(송방송 영남대 교수)·법학(박병호 서울대 명예 교수)·국방(차문섭 단국대 명예 교수)·의약(허 정 서울대 교수) 등 7개 분야에서 세종의 업적과 애민 규휼 정신이 심층적으로 재조명되었다. 강연 뒤 토론 시간에 질의자로 나선 나일성 교수(연세대)는 “세종은 세계 역사를 빛낸 분이다. ‘민족의 긍지’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인류의 자랑’이라는 큰 의미에서 재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명이 빠져버린 600주년 큰잔치들

이 열띤 논의들과 다채로운 행사는, 그동안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간과해온 망각의 세월에 대한 자성과 보은의 성격이 짙다. 그렇지만 탄신 600주년이 온통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는 동안, 우리는 정작 세종대왕을 ‘현재’와 ‘미래’로 모시는 데에는 인색했다. 현대의 문화 속으로, 현대인의 생활 속으로 세종대왕을 영접하고 함께 어울릴 마당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600주년 큰잔치에 신명이 빠져 버렸다. 신명이 빠진 잔치에 사람이 모일 리 없다.

서양의 과거 기리기는 우리가 보기에 지나치다 싶으리만큼 현란하다. 모차르트·고흐·슈베르트 등 예술가 탄생 기념일은 물론이고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400주년을 맞았을 때도, 미국·유럽 대륙이 온통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우리는 세종 탄신 600주년을 맞고도 조용하기만 하다. 이 문화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위인을 대하는 자세와 양식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가 위인을 신성의 영역에 가두어 놓는 데 견주어, 서양은 위인들을 적극 현대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이에 대해 배병삼 교수(성심외국어전문대)는 “성인들을 액자 속에, 혹은 동상으로 박제화하여 멀리 모셔두는 것은 제대로 된 대접이 아니다. 옛 분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것은 오늘과 내일의 삶을 풍요하게 하자는 뜻이며, 삶의 주인은 항상 당대를 살아내는 당사자들인 것이다. 성인을 신성시·성역화하려는 권위적인 작업은, 신명 대신 무관심을 부르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지폐 속의 초상으로 존재하는 세종대왕

늘 새롭게 해석되지 못한다면 그 위인은 큰 위인이 아니다. 새로운 해석이라고 해서 늘 학술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일 까닭은 없다. 학계의 엄정한 재조명 작업과 더불어 위인들을 대중화하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연구든 분석이든, 설사 불손한 시각이라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넉넉한 분위기가 보장돼야 한다. 영웅은 그 불손한 시도를 너끈히 이겨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친밀도가 생겨난다. 위인전이 아니라, 성현의 인간적인 삶을 조명하는 사실적인 전기 문학도 유력한 방식이 될 수 있다”라고 배교수는 설명했다.

‘온고’에 치우쳐 ‘지신’을 소홀히한 탓에 세종은 교과서로, 영정으로, 동상으로, 지폐 속의 초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충무공 이순신도, 퇴계 이 황 선생도, 율곡 이 이 선생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현대와 함께 어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잔치는 살아날 것이고, 잔치와 더불어 역사도 끊임없이 갱신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5월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학술 강연회 풍경은 시사하는 바 크다. 행사장을 메운 교수·문화계 인사·시민 등 백여 명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같은 시각, 건물 밖에서는 ‘97 봄 분수대 광장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오마다 간이 잔치가 열리는 분수대 광장은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에 맞춰 배꼽·어깨·다리의 맨살을 드러낸 채 격렬하게 춤을 추는 선남선녀와 이를 둘러싼 10~30대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노년층의 잔치’와 ‘신세대들의 잔치’는 불과 수십m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그 문화적 거리는 여간 먼 것이 아니었다. 그 문화적 거리는, 세종대왕이 현대를 향하여 부활하려 할 때 단축하기 어려운 먼 거리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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