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문화]전세계 휩쓰는 테크노 문화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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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러브 퍼레이드’에 X세대 백만여 명 참가… ‘사랑·평화·공동체’ 내세워
이른바 테크노(Techno) 문화가 90년대 구미 청소년들의 지배 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열기를 더해 가는 베를린 ‘러브 퍼레이드’는 테크노 파티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참여 대상은 10대 후반~20대 중반 젊은이들. 이들은 시내 한복판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빠른 음악에 맞추어 온종일 춤을 춘다. 작년에는 약 60만명, 올해(7월12일)에는 무려 백만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독일은 물론 유럽·아시아·북미 등에서 몰려들었다. 독일 각 도시에서 몰려드는 테크노 팬들을 수송하기 위해 올해는 특별 열차 63편과 버스 수백 대가 동원되었다. 행사 당일 베를린 중심가의 대중 교통은 온종일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타 없이 모두가 주인공

올해로 아홉번째를 맞은 러브 퍼레이드는 애초에 베를린 번화가 쿠담에서 연례 행사로 시작되었으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참가자들을 수용하지 못해 지난해부터는 더 넓은 장소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부란덴부르크 문 서쪽으로 뻗어 있는 ‘6·17 거리’의 6㎞가 공식 지정 장소였지만, 올해 몰려든 팬들의 숫자는 이곳을 꽉 채우고도 넘쳐 주변에 있는 티어가르텐 공원 수백만 평까지 점거해 버렸다.

대형 화물차를 개조해 스피커 수십 개를 장치한 화려한 차량 39대가 테크노 춤을 추는 팬들을 가득 태우고 열광하는 군중 속을 헤치고 다니면서 진두 지휘했다. 초미니 스커트, 수영복, 팬티만 걸친 복장 등 극도로 다양한 의상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갖가지 머리 모양 등 테크노 팬들의 모습은 다채로웠다. 심지어 벌거벗은 몸에 온통 페인트를 칠하고 춤을 추는 극성 팬도 종종 눈에 띄었다. 완만히 이동하는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신들린 듯 춤추는 모습은 점심 때부터 늦은 밤까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세계 최대의 X세대 파티로 자리잡은 러브 퍼레이드는 8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90년대를 휩쓸고 있는 테크노 선풍을 타고 시작되었다. 분당 1백60비트의 빠른 템포를 주무기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가 테크노 음악의 특성이다. 스타가 없고 관중 모두가 동등하게 주체 의식을 갖고 즐긴다는 점도 기존 대중 음악과 다른 점이다. 테크노는 섹스 대신 끝없는 율동을 통해 극도의 엑스타시를 스스로 만끽하는 육체 문화로 불리고 있다. 흥분을 유도하는 술·환각제·마약 등도 테크노 팬들에게는 필수 요소이다. 또 혼자보다는 함께 모여 즐겨야 흥이 나는 집단성도 테크노 현상의 특징이다.

포스트모던, 여가 시대, 정보화 시대 등 일정한 방향성을 규정하기 어렵고 극도로 다양한 상품·소비·정보가 지배하는 90년대 분위기에 스피드·엑스타시·코카인으로 대변되는 테크노 문화는 일종의 숭배 의식을 내포하면서 ‘대체 종교’ 구실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 등 최신 테크놀로지와의 연결, 다양한 유행 및 마약 복용에 대한 관용, 그리고 탈정치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통합적인 경향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테크노 문화는 개개인의 개성적인 면을 중시하고 획일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테크노 문화는 ‘사랑·평화·공동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절망적인 미래(No Future)라는 부정적인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히피·펑크 문화와 달리 테크노 문화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기존 청소년 문화에 차가운 눈길을 보내곤 했던 기성 세대도 90년대를 이끄는 테크노 문화에는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업화로 치닫는 테크노 문화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남은 90년대에 테크노 문화가 청소년의 대중 문화로 더욱 성장할 것임에는 이론이 없다. 내년 7월에 있을 러브 퍼레이드에 청소년들이 얼마나 모여들지 벌써부터 관심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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