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노해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출간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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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인 박노해 시인,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펴내
‘세발까마귀(三足烏)’의 세 번째 발. 국가보안법 위반 죄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7년째 수감되어 있는 박노해 시인이 요즘 온몸으로 붙들고 있는 상징이다. 최근 그가 펴낸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해냄)에 드러나 있는 사유의 변모는 낮고 작은 목소리이지만, 매우 분명하다. 노동운동가·시인·혁명가에서 사상가·영성가·문화혁명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그의 이같은 변화는 70년대와 정면으로 맞섰던 김지하 시인의 시적·사상적 변화를 연상시킨다).

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낸 이후 한국 문학사는 물론 지식인 사회, 그리고 노동 현장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그는 현재 가슴에 777번을 새긴 수의를 입고 경주 남산교도소에서 ‘세발까마귀’를 품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변화는 이미 4년 전에 나온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에서 ‘겨울나무’로 은유된 바 있는데, 그의 사유는 사람과 몸, 다시 말해 생명을 거쳐 <세발까마귀>에서 한 절정을 이루고 있다. 단순하고 큰 깨달음이다.

육필이 아니라 육성으로 쓴 원고

세발까마귀는 고구려 신화에서 하늘을 날던 새이지만, 박노해에게 와서 미래의 새로 태어나고 있다. 그에게 세발까마귀의 세 번째 발은 ‘두 발의 긴장으로 새로운 하나를 낳는/다시 시작하는 발, 미래의 발, 창조의 발, 없음으로 있는 발’이다. ‘두 발 속에 저리 분명한 또 하나의 발이 있어 내일은 여는 것’이며 ‘치열한 두 발의 맞섬과 교차 속에 참된 진보의 발이 나오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감옥 속에서 박노해 시인은,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에 따르면, 고백하는 겸손한 작은 사람에서 희망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박노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그 입장에 따라 커다란 편차를 보인다. 문학 평론가 도정일 교수(경희대·영문학)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인 차원에서도 우리는 모두 내부적으로 제각각 몇 퍼센트씩은 그를 유배한 자이고 동시에 그의 지지자이며, 비판자이고 동조자이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집단적 운명을 이처럼 자기 개인의 운명에 붙들어맨 존재가 일찍이 있었던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책은 박노해의 육필이 아니다. 그의 육성을 복원한 것이다. 옥바라지를 해온 그의 아내 김진주씨와 박노해 시인의 형 박기평 신부, 그리고 그동안 박노해 시인을 면회한 종교계 인사와 문인 들의 기억이 초고였다. 이 ‘사상 유례가 없는 초고’를 부인 김씨가 다시 경주로 들고가 박노해 시인으로부터 ‘교정·교열’을 받았다.

감옥은 시인에게 엄정한 도량이었다. 시인은 감옥 생활을 ‘삭발 정진’이라 표현했거니와, 감옥 생활 초기의 자기 부정과 외부에 대한 비판 등 분열증적 단계를 벗어나 ‘내부’로 눈을 돌렸다. 그 전환점이 이번 책의 서(序)에 나오는 ‘그 여자’였다. 무기 징역을 선고받던 날. 창 밖에는 그 해 첫눈이 펑펑내리고, 서행하는 마지막 호송차. 만원이어서 그랬는지 그 여자가 박노해 시인의 옆에 앉혀졌다. 아이를 둘 가진 노동자, 박노해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죄송함을 느꼈다는 그 여자, ‘좋은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 몫의 행복을 훔치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살아온 겁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던 그 여자는 박노해를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7년. 박노해 시인은 감옥 안에서 ‘죽음을 살았다’. 그리하여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 여자를 하늘이 보낸 사람으로 여긴다. 박노해 시인에게 이번에 나온 에세이는 그 여자 앞에서 자신있게 다시 서기 위한 기다림이다. 미래를 위한 기다림, 세발까마귀의 세 번째 발로 비유되는 기다림, 즉 제3의 길을 열어나가는 그 기다림의 내용은 ‘비사회주의·탈자본주의·친생태주의·친여성주의’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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