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 귄터 그라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의미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9.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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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치와 독일에 보내는 선물
‘시의와 무관하게 상을 준 것이 더 시의적절하다.’ 40년 전에 발표된 소설 <양철북>(1959년)이 ‘20세기 마지막 노벨 문학상’을 차지한 것은 이런 역설을 실감케 한다. 노벨 문학상은 발표 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올해도 예외가 아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나치즘이 불러들인 공포로 얼룩졌던 만큼 20세기의 문을 닫는 데 독일의 반나치 작가 귄터 그라스(71)가 적임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양철북>은 그라스의 처녀작으로, 성장을 거부한 소년 오스카를 주인공으로 하여 나치즘의 광기와, 광기를 불러들인 소시민의 심리를 환상 기법으로 묘사한 작품. 발표 당시 신성 모독·외설 혐의에 시달렸지만 전후 나치즘에 대한 체계적이고 풍부한 비판서로 자리잡았다. 우리에게는 튀어나온 눈과 앙다문 입, 유리창을 박살내고 괴성을 내지르는 소년 오스카가 등장하는 영화 <양철북>(폴커 쉴렌도르프 감독·1979년)이 한층 친숙하다.

첫 반응은, 60년대 이후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린 만큼 때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다. 27년 전 독일 작가로는 처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이 남긴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수상 소식을 들은 뵐이 “내가? 그라스가 아니고?”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40년 만의 수상이 오히려 시의적절하다’는 말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독일 현지 반응에서 드러난다. 독일 언론은 이번 결정에 대해 ‘통일 독일이 유럽의 성숙한 구성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도 좌파 일간지는 ‘통일 독일이 유럽이라는 집에 한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적었다.

더 적극적인 촌평도 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는 ‘하인리히 뵐이 수상한 것이 연방공화국(서독)의 민주주의를 위한 위한 장려상과 같은 것이었다면, 그라스가 수상한 것은 통일된 독일을 위한 졸업장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보수적인 <디 벨트>의 비아냥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맙다. 어쨌든 이 상에는 용서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정황론의 극단은, 이번 결정에 스웨덴의 국내 사정이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AFP 통신은 ‘반나치 작가, 스웨덴이 벌이는 전쟁의 일환으로 상을 수상하다’라는 제목 아래 ‘정황’을 상술했다. 최근 스웨덴은 학생의 66%가 ‘죽음의 수용소가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여론조사 결과에 충격을 받아 역사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 중에 중립을 지켰다고 알려진 스웨덴이 실제로는 나치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알리바이’가 필요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국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으므로 마지 못해 덕담을 하고 있지만, 귄터 그라스와 독일 평단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설전이 벌어지곤 했다. 그 정점에 <광야>(1995년)가 놓여 있다. 통일 독일의 일상을 다룬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한바탕 ‘그라스 죽이기’ 광풍이 불었다.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문학 평론가가 그라스의 책을 찢는 합성 사진을 표지로 실었다. ‘총체적인 실패작’(라이니 라이니츠) ‘궁색하고 생명력 없는 소설’(이리스 라디쉬)이라는 혹평과 함께 ‘그라스가 문학과 결별했다’는 사망 선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가장 냉혹한 저격수였던 라이니 라이니츠는 최근 <슈피겔>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당시의 판단을 양보하지 않았다. “이번 수상을 정치적인 일로만 치부하는 것은 억측이다. 한림원이 그라스의 문학적 역량을 높이 산 것은 틀림없다. 단, 그의 성취는 초기작에 한한다”라고 못박았다(그의 초기작은 이른바 ‘단치히 3부작으로 불리는 <양철북> <고양이와 개> <개 같은 날들>이다. 단치히는 귄터 그라스의 고향인데 지금은 폴란드 땅이지만 당시 독일 땅이었다). 보수적인 평자들은 그라스의 후기 작품에 대해 ‘빈약한 줄거리와 에피소드를 나열한 데 불과한 구성, 산만한 화술’ 따위 혐의를 걸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한 발짝 떨어진 이들은 이 소동에서 ‘사냥’ 혹은 ‘광기’의 징후를 읽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대학 독문과 박사 과정에서 수학하던 이용숙씨는 그 때의 소란이 문학 논쟁이 아닌 정치 논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라스의 정치적 견해가 혹독한 비판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핵심은 통일론이었다. 60년대 빌리 그란트를 지지하며 사민당에 입당한 이래 92년 탈당할 때까지 줄곧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온 그는, 그 즈음 서독 정부가 주도하는 흡수 통합식 통일에 극력 반대했다.

이용숙씨의 분석에 따르면, 그라스는 <광야>에서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성급한 체제 통합의 폐해를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다. 그 예로 옛 동독을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시키는 과제를 담당해 온 트로이한트(동독 민영화공사)를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기구로 묘사했는데, 이런 관점이 우파의 총공세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라스의 ‘실험과 참여, 환상과 관습 해체’

그라스는 평론가들의 비평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언성을 높이는 이들이 이른바 ‘통일 과업’의 신화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나는 동독의 옛 체제에 향수를 가진 것이 아니라 40년 동안 그들이 살아 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쓰레기더미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승리자의 보좌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패배해 쓰러진 사람들 쪽에 서는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작가 그라스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실험과 참여. 현실에 대한 관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형식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 작가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부족하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정치 의식 부재가 더 문제라고 대꾸할 정도로 사회적인 관점을 중시한다. “모든 작가는 에고이스트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본 태도가 되면, 결국 자족적인 글쓰기로 끝나고 만다.”(노벨상 수상 후 기자 회견)

독문학 강사인 박상화씨는 그라스의 특징으로 ‘환상’과 ‘관습 해체’를 꼽았다. 박씨는 그라스가 <양철북>을 ‘너무 단순하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소년(<양철북>), 말하는 넙치(<넙치>), 1세기 전의 작가(독일 작가 폰타네)와 대화하는 남자(<광야>)를 환상의 예로 꼽았으며, 구성에서도 적극적인 해체 전략이 돋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와 산문이 혼합되고 픽션과 논픽션이 가미되며 역사적 사건과 허구가 자연스럽게 결합해, 관습적인 소설 개념으로 재단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는 <양철북>(민음사·청목) <무당 개구리 울음>(풀빛) 등이 나와 있으며, 신작 <나의 세기>(1권·민음사)도 최근 번역되었다. 20세기 역사를 해마다 각기 다른 화자를 내세워 회고한 <나의 세기>는 온몸으로 현대사를 관통해 온 노작가다운 기획으로 평가되고 있다. 귄터 그라스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표정과 어조를 선보인다. 1900년 의화단 사건이 벌어진 중국에 파견된 독일 병사로, 혹은 새로 나온 라디오에 현혹되는 여자 아이로 등장하는가 하면, 작가 레마르크로부터 1차 세계대전의 전장 이야기를 듣는 여비서로, 히틀러의 연설을 듣는 아버지의 목덜미에 오줌을 싸놓고 고소해 하는 꼬마로 변신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비판적 휴머니즘과 실천적 글쓰기를 대표하는 특출한 지성’이라고 평가했다. <나의 세기>의 독자라면 그의 능청이 더 피부에 와닿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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