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최대 예술 행사 광주 비엔날레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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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최대 예술행사 준비 막바지… 지역 여건 최대 활용, ‘문화 자치’ 새 길 열어
‘단군 이래 한반도에서 열리는 최대의 문화 행사’. 미술 관계자들은 9월20일부터 2개월 동안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를 이렇게 부른다. 문화 행사로는 사상 최대의 예산인 1백82억원이 투입되고, 세계 50개국에서 작가 91명이 광주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가 하면, 특별 전시에는 31개국에서 2백42명이 출품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30개국 예술인 1만2천여 명이 참여하는 무용·음악·영화 등 각 장르의 문화 행사가 전시 기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열리고, 기념전·후원전 형식의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펼쳐진다. 9월20일부터 11월20일까지 광주광역시는 말 그대로 문화 예술의 세계적인 잔치 마당이 되는 것이다.

광주는 지금 내외국인 손님맞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 광주 비엔날레 깃발이 나부끼고, 음식점이나 숙박업소 들도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엔날레’라고 쓰인 도로 안내 표지판이 서는가 하면, 택시를 타면 광주 비엔날레를 소개하는 녹음 테이프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젊은 작가 중심… 제 3세계권에도 문 활짝

잔치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들은 행사의 중심지인 운암동 중외공원을 들어서면 훨씬 숨이 가빠 보인다. 광주 비엔날레의 거점이 될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은 8월31일 준공식에 이어 본격적인 전시 준비에 들어갔고, 공연이 집중될 야외 행사장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대규모 국제 미술 잔치로서는 태평양권에서 처음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내용 면에서 후발 비엔날레로서의 차별성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올해 창설 백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한 세계의 유명 비엔날레들이 국가관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광주 비엔날레의 질과 성격, 그리고 위상을 결정하게 될 ‘국제현대미술전’은 국가관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않고 있다. 아시아, 서유럽, 동유럽, 북미, 남미, 중동·아프리카, 한국·오세아니아 등 세계를 일곱 권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마다 커미셔너를 두어 주제에 걸맞는 작가를 선정한 뒤 작품을 출품하도록 한 것이다.
커미셔너는 장 드 르와지(프랑스 퐁피두센터 큐레이터·서유럽 담당), 안다 로템버그(폴란드 바르샤바 국립현대미술관장·동유럽) , 클라이브 아담스(영국 테이트갤러리 전시자문위원·중동 및 아프리카), 캐시 할브라이시(미국 워커아트센터 관장·북미) 등 세계의 유명 큐레이터와 오광수(환기미술관장·아시아), 성완경(인하대 교수·남미), 유홍준(영남대 교수·한국 및 오세아니아) 씨 등 한국의 미술 평론가들이 맡았다.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이 주제가 ‘이념·국가·종교·인종·문화·인간·예술 사이의 복잡다단한 경계를 넘어 세계 속의 시민 정신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작품을 통해 이 주제를 구현할 작가 가운데는 조지 라파스(그리스), 척 클로즈, 제프 월(미국), 팡리준(중국), 조피아 쿨리크(폴란드)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참여자 대부분은 지금 막 발돋움하고 있는 30,40대 젊은 작가들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세계의 유망주들을 따로 초대하는 ‘아페르토전’을 없애는 바람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는 광주 비엔날레는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른바 대가들의 그늘에 가려 비엔날레의 본전시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젊은 작가, 다시 말해 21세기의 세계 미술을 이끌어갈 젊은 세력이 광주 비엔날레의 본전시장을 채우는 것이다.

‘21세기를 예감하자’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기획과 더불어 광주 비엔날레가 갖는 독창성은 제3세계 미술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명 비엔날레들은 제3 세계 또는 약소 국가들을 상대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문을 연 지난 6월 한국 미술계는 물론 언론들이 얼마나 흥분했는가를 떠올린다면, 국가관이라는 형식이 그동안 제3 세계에 얼마나 높은 장벽으로 작용해 왔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광주 비엔날레는 각종 비엔날레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온 동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남미 등 제3 세계 작가들에게도 참여할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한 제3 세계권의 작가들은 각 지역의 미술 경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를 이야기체로 이어가는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오세아니아는 구미 문화와 원주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 탄생을 지향하고 있다. 아시아는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의 대립 양상을 작품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동유럽 작품은 탈인간화를 조장하는 정치 단체와 정통적인 아카데미즘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며, 남미는 특유의 심오한 상상력과 문명·정치·철학·성·육체·신화를 작품에 담고 있다. 한국은 김정헌 임옥상 신경호 홍성담 씨 등 민중 미술 계열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현실과 문명 상황에 대응하는 한국의 독특한 예술 경향을 보여준다.

광주 비엔날레는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젊은 작가들의 경연장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내놓은 대부분의 작품이 비디오·입체·설치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평면 작품은 10% 정도여서 현대 미술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설치 미술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가 현대 미술의 경향을 포괄하고 21세기의 미술 경향을 예감하게 하는 대규모 국제 미술제라는 대외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면, 대내적으로는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문화 행사를 통해 지방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10개월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과 1백82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 투입, 관이 행사를 주도한다는 점에 대한 미술계의 비판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한 이후 자치단체가 주도해 처음으로 여는 대규모 문화 행사인 광주 비엔날레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 다른 지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송언종 광주광역시장이 지역 방송에 나와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성원을 부탁하면서 “10년만 잘 운영하면 광주는 비엔날레로 먹고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백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의 탄생 동기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동서양 교역의 중심지이던 베니스는 19세기 후반 들어 교역이 뜸해지자 3류 도시로 전락할 위기를 맞았다. 베니스의 재산은 관광 명소뿐이었고, 베니스는 이 재산을 전세계에 내다 팔기 위한 한 방법으로 비엔날레라는 문화 상품을 개발해 국제 시장에 내놓았다.

미술뿐 아니라 영화·건축 등 각 분야에서 진행된 이 국제적인 문화 잔치는 2년마다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계기로 작용했고, 베니스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부수 상품으로 내놓아 백년 동안 그 상품을 팔며 살아 왔다.

광주광역시가 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할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전국에서 유일한 ‘문화 벨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광주 서북쪽의 71만평에 이르는 중외공원은 각종 문화 시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국립광주박물관·광주시립미술관·광주시립민속박물관·문화예술회관이 집결되어 있고, 어린이대공원이라는 푸른 공간도 문화 벨트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비엔날레를 개최하기 위해 본전시장인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과 야외 공연장만 신축하면 그만이었다. 가까이 있는 기존 문화 공간들을 모두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 비엔날레 사무처 이호준 관리본부장은 “광주가 비엔날레를 과감하게 거머쥐었다”고 말했다. 비엔날레를 열 만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 문화적 토양이 성숙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홍성담씨는 “광주 시민 10명 가운데 3명이 문인·화가·음악가로 자처하리만큼 광주는 이른바 ‘예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그 문화 역량이 정체성을 보일 정도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면서 새로 들어선 첨단 산업단지와, 비엔날레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 예술이 앞으로 광주 지역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자치단체에도 파급 효과 클 듯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 광주가 갖춘 유리한 입지 조건의 하나로 때묻지 않은 전통 문화 유적들이 꼽힌다. 70년대 개발 회오리의 ‘혜택’을 입지 못해 살아 남은 유명 사찰들과 가사 문화권 안에 있는 정자들, 그리고 3천여 섬으로 이루어진 다도해가 광주광역시로 하여금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게 한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광주 비엔날레를 찾는 외지인들은 세계 미술의 주요 흐름과 더불어 산업 공해를 피해 결과적으로 살아 남은 전통 미술과 자연 경관이라는 또 다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1회 대회에서는 지역적 배경들을 모두 활용할 여력을 갖추지 못했으나, 광주 비엔날레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각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본격적인 문화 행사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서울공화국’ 문화가 집중되는 현상을 깨뜨리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성공 여부는 전국의 다양한 문화권이 지역성에 바탕을 둔 각종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도록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5월 그날’ 미술로 돌아본다

비엔날레와 병행, 망월동에서 민간 주최 <통일미술제>

광주 비엔날레 개막 다음날인 9월21일부터 10월10일까지 ‘5월 광주’의 상징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인 망월동에서 광주 비엔날레와는 별도로 대규모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광주미술인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5·18 광주 정신을 통일 정신으로 승화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통일미술제>이다.

“광주에 오는 외국인을 포함한 타지인들로 하여금 스산한 바람이 부는 망월동을 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화가 강연균씨(민예총 공동의장)는 말했다. 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재단법인 광주 비엔날레’의 이사로 위촉되었으면서도 ‘역량을 분산할 수가 없어’ <통일미술제>에만 전념하게 되었다는 강씨는, 비엔날레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조촐하게 5월 광주 정신을 담아내겠다는 의도를 밝혔는데, 그 내용이 조촐하지만은 않다.

우선 광주에서 망월동 가는 길 입구에 ‘천하민족통일대장군’ ‘지하5월정신여장군’을 새긴 6m 높이의 장승 2개와 솟대가 세워지고, 망월동 묘지에 이르는 10릿길 양 켠에는 6m50cm의 대나무에 길이 3m50cm, 너비 55cm 만장 1천2백개가 꽂힌다. 만장에는 전봉준·안중근·김 구 등 근·현대사의 지사들이 남긴 글들과 그들의 초상, 그리고 5·18 관련자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의와 통일을 염원하는 천여 시민의 글들이 적혀 있다. 80년 당시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발표한 김준태 시인도 참여해 만장 12도 지날 수 있는 높이에 옛 꽃상여가 놓이게 된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너비 6백m의 대형 전시판이 마련되어 3백여 작가의 2백50여 작품이 걸리고, 80년대의 명작으로 꼽히는 걸개 그림들이 나온다.

5·18 유관 단체와 전국 12개 지역 미술연합단체가 모두 참여하고, 시민 성금 6천만원을 모아 마련되는 이 전시에 대해 강연균씨는 “성금 모금뿐 아니라 만장 제작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해 글을 썼고, 따라서 광주 시민의 정서를 제대로 담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통일미술제>를 준비하는 측이 경계하는 것은 이 전시가 광주 비엔날레와 대립한 것처럼 외부에 비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광주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립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더 이상 광주 비엔날레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통일미술제> 준비위원회측 설명이다.

강연균씨는 “<통일미술제>가 광주 비엔날레와 상충하거나 대립하는 개념은 분명히 아니다. 두 전시가 함께 진행되면서 광주의 문화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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