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방송·신문·재벌의 미디어렙 투자 막아라
  • 김승수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 ()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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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민영 방송광고사 만들고 허가제 도입해야

사진설명 혼선 : 당국·방송사·신문사가 각기 자기 주장을 펴 방송광고법안을 둘러싼 혼란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미디어렙 때문에새해벽두부터 소란하다. 왜 이토록 분란이 심한 것일까?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이란 간단히 말해 방송광고 영업을 대행하는곳이다. 지금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KO·광고공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광고공사는광고 단가가 폭등하는 것을 방지하고 방송사와 광고주의 직거래를 막아 방송의 상업주의 및 광고주에 의한 방송 통제를 차단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광고공사는 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 데다 광고 영업을 독점한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그리하여 방송개혁위원회는 민영 미디어렙을 신설해제한적인 경쟁 체제 도입을 제안하고, 방송사의 직접 투자를 금지하도록 했다.


문화부·규제개혁위가 분란 부채질

문제는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방송광고 판매법안'을 만들면서 불거졌다. 방송사와외국 자본이 미디어렙에 직접 투자할 수있도록 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문화부의방송광고법안을 심사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방송사의 직접 투자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민영 미디어렙을 복수로 만들라고 제시했기 때문이다. 시민·언론단체와 학계는 이에 완강히 반대했다. 방송 광고를 완전 경쟁에 맡겨 버리면 광고 단가가 천정부지로 뛸 것이 분명하고, 이는 국민과기업의 부담을 키운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신문사도 논쟁에뛰어들었다.이들은 완전 경쟁 반대 여론을 업고 일제히 방송광고법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가뜩이나광고 시장이 얼어붙어 재정이 어려운 신문사는 방송광고 시장에 완전 경쟁 체제가 들어서면방송사의 광고 수입이 최소 4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까지 늘어나고, 이 돈의대부분이 신문광고 시장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자 처지에 따라 다른주장을 폄으로써 방송광고법안을 둘러싼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우선MBC가 생존차원에서 반발했다. MBC는 공공 소유이지만 운영 재원은 상업 광고이기 때문에 별도의미디어렙을 갖고있지 않으면 연간5천억원의 수신료 수입을 가진 KBS나 연간 수천억원의 추가 수입을 갖게될 SBS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MBC가 따로민영 미디어렙을 운영할 경우, 다음 단계는 MBC 사영화일수밖에 없다. 재원도 상업 광고요,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사기업인미디어렙에 투자하는 MBC를 굳이 공영 방송으로 남길 필요가있느냐는 주장이 대두할 것이다. 어쨌든 문화부 법안이 사실상 SBS만 미디어렙에 투자할 수있도록 함으로써 특혜를 준다는 인상을 준 것은 큰 실책이다.

방송사들이 미디어렙에 목숨을 거는속내는 따로 있다. 디지털 방송 비용, 위성방송과 인터넷 방송 그리고 CATV 등뉴미디어 투자비 등에 각각 수천억원을조달해야 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처지에서는 방송 광고 시장 개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첫째, 방송사·외국 자본·신문사·재벌이 미디어렙에 투자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이는 광고비 인상에 따른 국민과 기업 부담 증가를 피할 수없고 광고주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직접 투자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직접 투자가 아니더라도 방송사는 매년 수백억원 이상 광고 수입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외국 자본 진입 허용은 연간매출액이 20조원이 넘는 거대한 글로벌 매체로 하여금 미디어렙에 투자하도록 허용해 방송 시장을 이들손에 넘길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더구나 신문사·재벌 등은 불허하고거대한 매체 복합체인 글로벌 매체 자본의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반론이 있다. 따라서 당국은 완전 경쟁이라는 망상을버리고 제한 경쟁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둘째, 민영 미디어렙은반드시 허가제를 통해 설립하고, 공공성을위반하면 허가를 취소하는 장치를 두어야 한다.


언론 개혁 차원에서 방송광고법 제정해야

셋째, 공영 미디어렙과민영 미디어렙은 각각 하나씩 만들되, 공영 방송은 공영 미디어렙과, 사영 방송은민영 미디어렙과 거래하도록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다만 이렇게 분리할 때 MBC가 최대 피해자가되고 SBS는 최대 수혜자가 되어, 공영 방송은 억압하고 사영 방송은 육성하는 비정상적인결과가 나올수 있다. 따라서 KBS와 EBS는공영 미디어렙과 거래하도록 하되, 다른방송사는 자유롭게 미디어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것을 대안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넷째, 일단 민영 미디어렙이 생기면 방송 광고 단가가 폭등할것이 명백하고,이에 따른 수입이 막대할 것인 만큼 상응하는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대책으로 방송광고요금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미디어렙이 거둔 수익금의 일부를 방송 컨텐츠 제작 및 디지털 방송 비용에 투자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방송·산업·문화에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고 국민의 재정 부담을 전제로 하는 미디어렙 신설을 포함한 방송광고법 제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방송광고법 제정은 정기간행물법 개정과 방송법 재개정을 포함한언론 개혁 차원에서 엄정하게 다룰문제이지,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는가 하는 문제로초점이 흐려져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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